메뉴



중국인 생각

더보기

한자 명상

더보기

만화중국어

더보기

한시

더보기

기획리포트

더보기

중국 자전거 시장 변천사, 청나라 황제의 자전거에서 MTB까지

100년 전 중국에서 자전거는 부의 상징 자전거는 19세기 중반 1, 2차 아편전쟁을 거치면서 중국에 처음으로 소개됐다. 하지만 도입 이후에도 오랫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 유럽에서 생산되던 자전거의 운송비를 포함한 가격이 워낙 높았을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는 이용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의 도로는 대부분 울퉁불퉁해 자전거를 타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자전거가 중국 상류층의 오락 도구로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 선통제)도 자전거를 애용했는데, 답답한 황실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자전거 질주를 즐겼다고 한다. 푸이는 자금성에서 자유롭게 자전거를 타기 위해 출입문들의 문턱을 톱으로 잘라냈다고 전해진다. 신해혁명(1911) 이후 수립된 쑨원의 중화민국 초기(民国初期, 1912~1927년), 자전거는 베이징 거리에 자주 등장했지만 여전히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사치품 내지는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당시 자전거는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구분되었는데, 여성용은 치파오를 입고 편리하게 타고 내리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당시에는 자전거 손잡이에 반사경을 달거나 방울을 다는 등 자전거를 꾸미는 것이 유행이었다.


오피니언

더보기


경영의 지혜

더보기

경영의 지혜 - 전국시대 동주와 서주의 물싸움

계략은 궁극의 도다. 어려움에 처해야 나온다. 중국에서 계략이 가장 많이 난무했던 게 바로 춘추전국시대다. 온갖 사상과 계략이 난무했다. 그 속에 삶을 향한, 성공을 향한 절실함이 묻어 있다. 인간의 모든 욕망이 탁자에 올리어져 하나의 계략으로 완성됐다. 전국시대 주나라가 서주와 동주로 나뉘었다. 둘은 서로 정통을 주장하며 갈등을 빚었다. 한번은 동주가 벼농사를 지으려 하자 상류 쪽의 서주가 물길을 끊어 버렸다. 동주는 걱정스러웠다. 당시 동주에 있던 책략가인 소자가 동주 황제에게 말했다. “제가 가서 물을 내려보내 주도록 청하겠습니다.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만 해 드리면 됩니까?” 동주 황제를 그렇게만 해주면 큰 상을 주겠다고 했다. 소자는 바로 서주에 갔다. 그리고 서주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 모책이 잘못되었군요! 물을 끊은 것은 동주를 벌하시고 싶은 것이겠지만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물을 끊어 버렸기 때문에 동주는 부유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동주 사람들은 모두 보리만 심고 다른 작물은 아예 심지도 않습니다.” 보리는 논농사와 달리 물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소자는 서주 황제에게 동주 백성들이 물길이 끊기자 벼농사를 포기하고


신중국인물열전

더보기

중국역사100장면

더보기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