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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명상 - 마음의 중심, 그게 있어 마음씀을 다하는 게 바로 충(忠)이다.



 

중심(中心)은 가운데 마음이다.

사전에

중심(中心)은 가운데요,

중심(重心)은 무게의 가운데라 했다.

 

사실

중심(中心)이나

중심(重心)이나

다르지 않다.

 

다만

실제 찍히는 점(点)이

다를 수 있다.

 

평균과 중간이 다른 이치다.

 

길이의 중심(中心)과

무게의 중심(重心)은

개념상 비슷하지만

실제 점(占), 점한 곳이 다른 경우가 많다.

 

길이의 중심(中心)은

그 길이의 반이 중간이다.

하지만

무게의 중심(重心)은

길이의 반이 반드시

그 중심(重心)은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중심(中心)은

길이의 중심(中心)과

무게의 중심(重心)이

더해진 개념이어야 한다.

 

진정한 마음의 중심(中心)이

바로 충(忠)이다.

충은 마음의 중심

그 중심을 세우는 것이다.

 

복잡한 개념 탓에

한자 충(忠)은 갑골자가 아니라

금문에서 나온다.

 

마음에 가운데

중심(中心)이 선 모습이다.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게

바로 충(忠)인 것이다.

 

그래서 치우쳐

편협하지 않고

한 가지 일에

마음 씀씀이를

다하는 것,

그게 충(忠)의 본의(本意)다.

 

중세 봉건왕조가

충(忠)의 대상을

군주(君主)로, 상급자로

고착시키면서 뜻이 변했지만,

본래

충(忠)이란

스스로를 가꾸려는,

즉 수양(修養)하는

개인이 사회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행동 준칙(準則)이었다.

 

그래서 논어에

“공자는 ‘글(文)과 실천(行), 충(忠), 믿음(信)’

4가지로 가르치셨다” 한 것이다.

 

그래서 설문해자에

“충(忠)이란 경(敬)이며,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으며

진심(盡心),

마음을 다해 경(敬)하는 것”이라 한 것이다.

 

그래서 또 맹자는

“선(善)으로 가르치는 게 충(忠)”이라 한 것이다.

 

그 충(忠)의 실천 기본은

자기를 뒤에,

남을 앞에 세우는 것이다.

 

“스스로 서고 싶으면, 남을 먼저 일으켜 세우라”

(己欲立而立人,己欲达而达人)

 

논어가 전하는

충(忠)의 실천(實踐)에 대해

한마디 조언이다.

 

사회가 충(忠)을 되찾으면,

비로서

사람(人)의 말(言)을 나눠

신(信)이 서고,

마음(心)엔 자신(自)만 남게 된다.

 

개인의 안일이,

사회의 평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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