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칼을 갈면 길(吉)하다. 많은 이들이 점집을 찾아 묻는다. “어떻게 해야 길(吉)합니까?” 마치 운명의 갈림길에서 어느 길을 갈지 선택하듯 길함을 찾는다. 분명 하나의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 하지만 바뀐 미래가 과연 길하지만 한 미래일까? 길함은 선택에 달려 있지 않다. 최소한 한자의 세계에서는 그렇다. 다시 묻자. “어떤 게 길한 것일까?” 갑골자 길(吉)은 간단히 답한다. “싸울 준비가 됐으면 길합니다.” 갑골자 길(吉)은 도끼를 그 받침에 올려놓은 것이다. 전쟁을 막 마친 것일 수도 전쟁준비를 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도끼를 고이 보관하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준비한 도끼가 중요한 게 아니라 도끼를 준비하는 마음이 중요한 때문이다. 도끼를 갖추는 마음, 그런 마음이 있으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길할 수밖에 없다. 어떤 길을 걸어도 후회하지 않는다. 어떤 길이든 길과 흉이 다 있으며, 그 길의 길함을 보고 내가 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길함은 그래서 한 번에 증명되지 않는다. 주역에서 길함을 마치 띠풀을 뽑는듯 하다고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길함은 하나의 운동이 또 다른 운동을 일으키듯 키네틱 운동처럼 그렇게 하나가 또 다른 하나와 맞물
“但去莫复问,白云无尽时。”(단거막복문, 백운무진시) “말없이 그댈 보낼 때 멀리 흰 구름 흐르고” 이별 시다. 당의 가장 인간적인 가장 서정적인, 소리 내 우는 눈물이 아니라, 숨어 삼켜 우는 눈물을 아는 시인 왕유의 시 ‘송별’이다. 761년 숨졌는데, 태어난 해에는 701년과 699년 두 가지 설이 있다. 당대 이백을 ‘시성’(詩聖), 두보를 ‘시선’(詩仙)이라 한다면, 왕유는 시의 부처, ‘시불’(詩佛)이라 불렸다. 송대 가장 걸출한 시인 소동파는 왕유의 시를 높이 평가해 “왕유의 시 속엔 그림이 있다”고 했다. 그만큼 왕유의 시들은 아름다고, 생생한 심미주의가 담겨있다. 그 옛날 이별은 오늘과 달랐다. 한 번 헤어지면 쉽게 다시 보기 힘들었다. 헤어짐은, 그래서 많은 것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었다. 그래서 옛 사람의 이별에는 항상 작은 예식이 있었다. 술과 노래, 작은 선물 꺾어든 버들잎 옛사람 이별식의 필수 품목들이다. 버들나무 류(柳)는 머물다는 류(留)와 발음이 같았다. 만(挽)은 ‘당기다’, ‘꺾다’는 뜻이다. 류(柳)를 꺾는(挽) 건 말없이 강한 만류(挽留)의 뜻이다. 만류는 뜻을 꺾는다는 의미다. 그대 부디 가지 마오.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돈은 사실 허상이다. 사회적 약속이다. 진정한 재물은 돈이 아니라, 실물이다. 밥이요, 그 밥을 먹는 밥상이며, 의자가 재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돈만 본다. 돈이면 밥도 사고, 밥상도, 의자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것은 제도적 보장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다. 제도적 보장이 없다면 지폐는 종이에 불과하고, 동전은 구리 등 광물 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옛날 중국에 한 자리고비 노인이 살았다. 어느 날 비가 쏟아지는 여름에 노인이 개울을 건너다 그만 동전 하나를 빠뜨리고 말았다. 놀란 노인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얼른 개울물로 들어가 동전을 건지려 했다. 하지만 아뿔싸 그 순간 산 위에서 갑자기 불어난 물이 쏟아져 내려왔다. 동전을 집으려던 노인은 그만 개울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말았다. 이틀 뒤 노인은 싸늘한 주검이 돼 발견됐다. 떠내려가다 나무 가지에 끼인 채 개울물이 빠지자 다시 떠오른 것이다. 차가운 손엔 그가 떨어뜨렸던 동전 하나가 꼭 쥐인 채였다. 사람들이 혀 끝을 차며 말했다. “아 이 양반, 정말 재물은 목숨처럼 아꼈구나!”
“약할수록 더 힘든 세상 만사 촛불처럼 흔들리네.” (世情惡衰歇, 萬事隨轉燭.) 세상이 참 그렇다. 약한 이만 찾아서 더 괴롭힌다. 인정이란 게 참 그렇다. 약하고 몰락한 이를 외면하게 된다. 가난해 보고 쇠약해 지면 비로소 세상의 본 얼굴이 보인다. 두보의 시 ‘가인’(佳人)다. 첫 구절만으로 시의 제목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시는 몰락한 가인이 겪는 세상사를 노래하고 있다. 시는 안록사의 난이 발생한 지 5년이 지난 758년 가을에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해 6월 두보는 벼슬이 화주사공참군으로 강등되자, 벼슬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생활터전을 진주로 옮긴다. ‘가인’은 그 때 쓰였다. 어떤 이는 두보가 그냥 자신의 처지를 빗댄 것이라고 어떤 이는 실제 들은 것을 작품화했다고 주장한다. 누구도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당시 세태만은 사실이라는 게 중론이다. 두보는 이렇게 시로 세상을 고발한 저널리스트다. 시로 기사를 썼다. 시는 산 속에서 우연히 만난 가난하지만 귀품 있는 중년 여성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그 중년 부인을 지칭하는 말이 가인이다. 깊은 산 속 계곡에 가인이 살고 있네. “난 귀족이었어요. 이젠 초목에 살죠. 지난번 난리통에 형제를 잃었어요
어디까지 탐할 것인가? 삶에서 가장 큰 고민이다. 어디까지가 욕심이고, 어디까지가 당당한 대가인가? 고전은 대단히 쉬운 답을 준다. “먼저 잃을 것을 살펴라!” 얻을 것에 현혹되지 말고, 잃을 것을 살펴서 잃을 것이 감당이 된다면, 그럼 욕심이 아니고 정당한 대가를 바라는 것이니, 일을 진행하라는 것이다. 옛날 한 돈에 눈이 번 부자가 있었다. 돈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것으로 천하에 소문이 났다. 하루는 소문을 듣고 수도의 귀족이 찾아와 거금을 내놓으며 부탁을 했다. “내 죄를 뒤집어 써주면 이 돈을 줄테니 어떤가?” 눈앞에서 수백만량의 황금에 벌써 눈이 돌아간 부자가 물었다. “어떤 죄요?” “중죄지.” 귀족이 답했다. 놀란 부자가 물었다. “아니 그럼 죽을 수도 있겠소?” 귀족 짐짓 태연한 듯 웃으며 말했다.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건 아니고 아닐 가능성도 있다네. 그리고 돈을 보게 이 돈으로 로비를 하면 목숨은 건지겠지. 그리고도 남을 돈이지 않은가?” 이미 돈에 눈이 먼 부자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좋소. 내 당신 죄를 사겠소.” 그리고 부자는 황금을 가지고 와 식구들과 함께 흥청망청 쓰기 시작했다. 소식을 들은 친구가 찾아왔다.
“바랄 걸 바래라.” 한자로 주어진 이상을 꿈꾸는 것을 기유(觊觎)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참 거시기하다. 시각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에서 대표적으로 이 기유가 나온다. 주는 사람 입장에서 “바랄 걸 바랄 일”인데,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받을 것을 바라는 것”일 수 있다. 또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옛날 중국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마님이 있었다. 대략 10명의 시녀들을 데리고 살았는데, 얼마나 인색한지 시녀들에게 밥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시녀들을 항상 고픈 배를 안고 일을 해야겠다. 하루는 맏언니 격인 시녀가 꾀를 냈다. 퍼포먼스를 해서 자신들이 얼마나 충성을 하며, 얼마나 배고픈지를 알리자고 했다. 그래서 하루는 시녀들이 아침에 서북쪽 하늘을 보고 일렬로 입을 벌리고 섰다. 마님이 그 것을 보고 물었다. “아니 무슨 일인가?” 맏언니 시녀가 답했다. “안녕하십니까? 마님. 다른 게 아니고 옛속담에 ‘서북풍을 먹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희가 서북풍을 마시는 법을 연습 중입니다. 그래서 배가 부를 수 있다면 밥을 축내지 않고 얼마나 좋겠습니까?” 중국 속담에 ‘서북풍을 먹다’는 말은 가난이 찌들었다
두보의 ‘증위팔처사’ “十觞亦不醉, 感子故意长. 明日隔山岳, 世事两茫茫.” (십상이부취, 감자고의장. 명일격산악, 세사량망망)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는 건 그대와 우정이 깊고 깊은 때문. 친구여! 내일 우리 다시 각자 길을 가면 언제 다시 볼까 세파를 그 누가 알리요!” 어린 시절 친구를 20년이 지나 다시 만났다. 그리고 나눈 술 잔, 이 술이 도무지 취하지 않는다. 아니 취하지 않은 게 아니라 취해서 취한 줄 모르는지 모른다. 두보의 감성이다. 두보는 본래 ‘빈잔 술에 취하는’ 시인이다. 그의 감성은 이성 속에 있고, 차분함 속에 깊은 분노도, 격정도 감추고 있다. 제목은 ‘증위팔처사’(赠卫八处士:위팔처사에게 주다)다. 759년 당 숙종 건원 2년에 쓰였다. 두보가 화주 사공참군사로 강등돼 부임할 때다. 758년 겨울 두보는 상소를 잘못 올린 죄로 직을 강등당했다. 두보는 부임전에 낙양의 옛집을 찾는다. 759년 3월 구절도사의 군대가 업성에서 대패를 하면서 두보는 길을 돌아 부임지로 가게 된다. 당시 봉선현의 위팔처사의 집은 이 노정에 있었다. 그렇게 두보는 옛 친구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위팔처사는 위씨 집안 여덟째라는 뜻이다. 처사는
“江碧鳥遊白(강벽조유백) 山靑花欲燃(산청화욕연)” “오늘 하얀 새가 더 하얀 건 저 강물이 더 푸르기 때문 산이 더 푸르니 이제 그 산 속 꽃도 더 피려나.” 당 시인 두보의 시다. 오언절구다. 두보는 이백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양대 시인 중 한 명이다. 이백은 감성으로 썼고, 두보는 이성으로 시를 썼다. 이번 시는 그런 두보가 이백과 같은 감성으로 쓴 몇 안되는 시다. 시는 무르익는 봄을 느끼는 시인은 감성에서 시작된다. 고향을 그리며 매일 강가에 나가 저 하늘 저편의 고향을 그리던 시인의 눈에 갑자기 들어온 하얀 새가 그의 감성을 건드린다. 문득 그 새가 너무나 하얗게 느껴진 것이다. 저 새가 오늘 더 하얗다. 새는 어제 그 새인데, 오늘 그 새가 어찌 더 하얄까? 아 그 건 새가 바뀐 게 아니다. 강물이, 새가 날아다닌 저 강물이 더 푸르러진 탓이다. 강물이 푸르러 새도 더 하얘진 것이다. 저 꽃은 어쩔까? 오늘 저 산이 푸른데 저 푸른 산 속의 빛나는 꽃은 분명 더 빛날 것이다. 그래 봄이다. 봄이라 그렇다. 산은 푸르고 물은 파랗고 그래서 새는 더 하얗고 꽃은 더 빛난다. 그런데 이 봄이 가면, 겨울인데, 새도 꽃도 산도 저 강물도 그렇게 다시 원
시작이 있어 끝이 있고, 끝이 있어 시작이 있다. 끊을 절(絶) “끊는다.” “끝낸다.” 모두가 무엇인가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의미다. 진행되는 게 있어 가능한 일이다. “버린다.” “치운다.” 역시 무엇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있어야 없을 수 있고, 없어야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있도록 하는 법이며, 또 없도록 하는 법이기도 하다. 생이란 있고, 없고의 연속인 것이다. 한자 속에는 일찌감치 이 같은 삶의 진리가 담겨져 있다. 있다는 의미가 있고나서 비로소 끝내다는 의미가 있다. 갑골자 절(絶)에 담긴 생각이다. 묶인 끈을 칼로 끊어 내는 모습이다. 본래 묶인 끈은 거래 관계를 기록한 수다. 그 거래가 끝나 끈을 끊어 내는 게 바로 절이다. 절(絶)은 한 거래의 끝이며, 비로소 새로운 끈에 거래를 맺어야 함을, 새 거래가 시작됨을 의미한다. 마치는 게 나쁜 게 아니요. 새로운 시작이 두렵기만 한 거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끝내며 어떻게 시작하느냐다. 그래서 제일 높은 것을 절정(絶頂)이라 하고 가장 큰 것을 절대(絶大)라 했다. 가장 멋있는 것을 절경(絶景)이라 하고 당대 제일을 절세(絶世)라 했다. 하지만 희망의 끝을 절망(絶望)이라 했고
악덕 기업주에 속는 건 그의 말 때문만이 아니다. 그가 가진 재산, 휘황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고 희한한 게 너무 뻔한 일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속는다는 것이다. 마치 속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처럼 엉뚱한 사람의 말을 그대로 듣고, 그대로 따른다. 사실 그 말이 맞다. 속기로 마음먹은 탓이다. 모두가 나쁜 사람이라고 욕을 해도 믿고 따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가 가진 재산, 배경의 휘황함에 취한 탓이다. 옛날 악덕 자린고비가 있었다. 먼 길을 가는 준비를 하며 잔뜩 배부르게 식사를 했다. 남은 음식을 노비에게 주는 데 반만 그 것도 아까워 반만 먹도록 했다. 노비가 울며 사정했다. “아니 먼 길을 가는 데 배가 고프면 어떻게 마차를 끌겠습니까. 좀만 더 먹게 해주세요.” 악덕 자린고비가 나무 쇄기와 밧줄을 주면서 말했다. “아 걱정 말게.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배고플 일이 없네.” 결국 그렇게 노비는 고픈 배를 안고 길을 나서야 했다. 악덕 자린고비가 말했다. “그런데 자네 길을 가다 배고프면 ‘배고프다’하지 말고, ‘배가 아프다’하게.” 노비가 “왜 그러시냐? 물었다. 자린고비가 말하길: “아 다른 게 아니라,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