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략은 궁극의 도다. 어려움에 처해야 나온다. 중국에서 계략이 가장 많이 난무했던 게 바로 춘추전국시대다. 온갖 사상과 계략이 난무했다. 그 속에 삶을 향한, 성공을 향한 절실함이 묻어 있다. 인간의 모든 욕망이 탁자에 올리어져 하나의 계략으로 완성됐다. 전국시대 주나라가 서주와 동주로 나뉘었다. 둘은 서로 정통을 주장하며 갈등을 빚었다. 한번은 동주가 벼농사를 지으려 하자 상류 쪽의 서주가 물길을 끊어 버렸다. 동주는 걱정스러웠다. 당시 동주에 있던 책략가인 소자가 동주 황제에게 말했다. “제가 가서 물을 내려보내 주도록 청하겠습니다.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만 해 드리면 됩니까?” 동주 황제를 그렇게만 해주면 큰 상을 주겠다고 했다. 소자는 바로 서주에 갔다. 그리고 서주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 모책이 잘못되었군요! 물을 끊은 것은 동주를 벌하시고 싶은 것이겠지만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물을 끊어 버렸기 때문에 동주는 부유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동주 사람들은 모두 보리만 심고 다른 작물은 아예 심지도 않습니다.” 보리는 논농사와 달리 물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소자는 서주 황제에게 동주 백성들이 물길이 끊기자 벼농사를 포기하고
"人即专一(인지전일),勇者不得独进(용자부득독진),怯者不得独退(검자부득독퇴), 众之法也(중지법야)." "모두 하나처럼 움직여야 한다. 용감하다고 먼저 나서지 않으며, 겁이 많다고 먼저 물러서지 않는다. 바로 무리를 움직이는 법칙이다." 손자병법 군정편에 나오는 말이다. 군대를 움직여 싸울 때 군대를 움직이는 법이다. 무릇 무리를 움직여 하는 모든 일이 다 비슷하다. 회사 일도 마찬가지다. 똑똑하다고 공을 탐내 혼자 나서 일을 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반면 일하지 않고 일하는 무리에 편승하도록 그냥 둬서도 안 된다. 둘은 모두 조직에 해가 된다. 전자는 조직의 신뢰를 깨고, 후자는 조직의 활력을 저해한다. 조직은 언제나 하나처럼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조직을 만드는 것을 손자는 규율로 봤다. 규율을 지키는 조직은 열도 하나처럼 움직이고, 백도 하나처럼 움직인다. 그렇게 될 때 조직은 목표를 세울 수 있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으며, 끝내는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목표를 세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조직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 것은 규율이 없으면 불가능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조직이 목표를 달성해내는 것도 불가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는 고래로 동양에서 집안을 일으키고, 나라를 일으킨 이들이 가장 되새긴 명언이다. 반면 ‘조장’(助長)은 마음이 급한 이가 벼가 빨리 자라도록 위에서 잡아당겨 돕는다는 의미로, 무리해 서두르면 결국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해 벼를 죽인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다. 동양의 사업가들이 가장 경계하는 말이다. 본래 진리는 쉽고 단순하다. 뭐 이런 게 지혜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단순한 것을 실천할 때 그 끝에 성공이 있다. 성공은 지난한 실천의 결과일 뿐이다. 사업의 성공이라고 다르지 않다. 중국의 호설암의 고사가 있다. 호설암은 중국 청나라 말기 대상인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전장 점원에서, 음식점 점원에서 큰 기업가가 됐다. 중국 상인들 가운데 청나라 정식 관직을 얻었다. 홍정상인이라고 칭했다. 중국 문호 루쉰도 그를 높게 평가했다. 강남 쌀 거래를 독점하고, 중국 전역에서 전장을 연 근대 중국 금융업의 시조다. 당시만 해도 무역을 하기 위해 상인들을 금덩이를 수많은 경비원을 동원해 들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호설암이 세운 전장을 통해 강남에 금덩이를 맡기고 증명서만 들고 가면 강북에서 금을 찾을 수 있었다. 중국 면화산업을 독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