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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의 윤곽, 차 車 2

요즘 자동차도 그렇지만, 동양에서 마차는 오랜 전부터 여러 상징적 의미가 있다. 우선 신분의 상징이었다. 또 보병전이 대부분이었던 과거 적의 병력 규모를 파악하는 가장 좋은 기초 자료였다.

© Gellinger, 출처 Pixabay

중국 시안(西安) 병마총엔 황제의 마차가 있다.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산(傘)이 사람이 타는 마차 가운데 있고, 황제가 앉을 곳과 시종이 서 있을 곳만 있는 단순한 구조였다. 그래서 더욱 고상해 보였다.
 
요즘도 그렇지만 차는 동양에서 오랜 전부터 신분의 상징이었다. 한(漢) 대까지 황제는 4두마차, 장상 제후는 3두마차, 사대부는 2두마차, 필부는 1두마차를 탔다. 시대가 변하면서 신분을 상징하는 차량도 다양해졌다. 명(明) 나라 대신인 장거정(1525~1582)은 개혁적인 사고방식을 지녔지만 거실은 물론 화장실과 욕실까지 갖춘 초대형 마차를 타고 다녔다. 마차꾼만 30명에 달했다고 한다.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 때는 귀족을 친왕(親王), 군왕(君王), 패륵(貝勒), 패자(貝子), 공(公) 등 5등급으로 나눠다. 공은 다시 진국공(鎭國公)과 보국공(輔國公) 등으로 나눈 뒤 보국공을 다시 팔분(八分) 대접을 받는 보국공과 그렇지 않은 보국공으로 나눴다고 한다. 팔분은 신분을 상징할 수 있는 장식을 의미했는데 첫째가 마차와 관련된 것이다. 마차의 바퀴를 붉은색으로 칠할 수 있는 권한이 하나요, 말의 고삐를 붉은색으로 쓸 수 있는 권리가 다음이었다. 나머지들은 의류, 집의 장식과 연관된 것들이다. 

과거 시황제의 마차가 단순한 것은 당대 진의 통치 이념인 법가 사상과 연관이 크다 싶다. 한비자는 상아 젓가락을 선물 받은 은나라 주왕의 사례를 들어 군왕의 낭비를 경계했다. 주왕은 상아 젓가락을 이용하기 시작한 뒤 기존 검약한 생활을 버렸다. 우선 단순했던 식탁을 화려한 것으로 바꿨다. 식탁이 화려하니, 자연히 놓는 음식이 달라졌다. 음식이 많아지니, 주왕은 대신과 이웃나라 인사들까지 초청해 매일 화려한 연회를 베풀기 시작했다. 
연회가 열리니 매일 예쁜 여인들이 시중을 들기 시작했다. 결국 주왕은 주지육림에 빠져 방탕하게 변해 나라를 망치게 된다. 

윤곽輪廓이라는 말은 마차 바퀴 넓이라는 뜻이다. 전쟁과 대단히 밀접한 연관이 있어 보인다. 
과거 전쟁에서는 이동하는 적병의 규모를 알기 힘들었다. 말굽과 사람의 발자국은 100명만 이동을 해도 땅바닥에 복잡하게 찍힌다. 숲속에 흩어져 이동을 하거나 적의 척후병 눈속임을 위해 밀집 인형으로 자신들의 병력을 부풀려 보이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때 가장 유효한 방법이 마차 바퀴의 넓이를 파악하는 것이다. 마차 바퀴는 대단히 일정하게 움직이고, 그 바퀴의 넓이로 마차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또 같은 폭의 바퀴를 쉬면 마차 대수도 대략 알 수 있다. 과거 기마병과 보병은 각 나라마다 일정 규모로 편성을 했다. 적국의 군 편성 사전 지식만 있어도 대략적인 병력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소동파로 유명한 소식蘇軾과 소철蘇轍 형제의 일화도 있다. 소동파의 부친 소순蘇洵도 당대 유명한 문인이자, 명인이었다. 소순은 두 아들의 이름을 차와 연관된 한자로 이름을 지었다. 가장 이름을 떨친 소동파의 이름 식은 마차의 앞 손잡이를 말한다. 흔히 마차를 타고 인사를 할 때 자세를 편히 하기 위해 앞의 손잡이를 잡는 데 이 손잡이를 한자로 식이라고 한다. 소식의 동생 이름인 철은 바큇자국 이란 뜻이다. 
소식 형제는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났다. 이에 부친은 소식의 재능이 남이 필요할 때 그 가치가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마차 손잡이라는 이름을 지어줬고 그 동생에게는 마차가 지나야 비로소 나타나는 마차 바퀴 자궁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아쉽게도 소동파는 부친의 바람을 지키지 못하고 평생 재능으로 세상 사람의 존경과 질시를 받았다.

차 자 하나에 이렇게 많은 스토리가 담겨 있다.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법'을 배우고 나면 주변의 많은 것들이 새로워진다. 

© werner22brigitte,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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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취안저우, 문화유산 보호와 관광객 유치 위한 투 트랙 전략 추진
중국 남동부 푸젠성에 위치한 취안저우(泉州)는 지난 202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역사도시다. 송나라, 원나라 시대 중국의 세계 해양무역 중심지였다. 푸젠성은 타이완을 마주 보고 있는 대륙 지역으로 중국에서 해양 산업이 가장 발전한 곳이기도 하다. 취안저우는 이 푸젠성에서 독특한 문화유산을 보유해 푸젠성 3대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2일 푸젠성 문화유산국에 따르면 취안저우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문화유산 보호와 관광산업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추진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더욱 적극적인 문화유산 보호와 복원을 위해 관련 법과 규정을 제정하고 전문가를 채용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 문화유산 보호를 강화하는 동시에 관광산업 증대를 위해 중국내는 물론 해외 관광객 대상의 다양한 홍보 정책을 추진했다. 푸젠성 최초의 도시 커뮤니케이션 센터를 설립하여 언론 매체와 SNS 플랫폼에서 관광 상품을 홍보하는 등 관광 활성화를 위해 온오프라인 관광 마케팅을 펼쳤다. 특히 지역 주민들이 문화유산과 함께 생활하고 교류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유적지의 대부분을 지역 주민과 관광객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급증하는 관광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