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情이란 무엇일까? 우리 동양에서 사람 관계에 가장 중요한 게 정이다. 그 복잡한 모든 감정을 정이라는 한 마디로 아우른다. 그래 어려운 게 정이다.
그런데 이 정을 "항상 마음이 푸르른 것"이라고 해석하면 어떤가? 와닿지 않는가.
한자 정은 마음 심(心)에 푸를 청(靑) 자를 쓴다. 회의 자다. "마음이 항상 푸르다"라는 게다. 역시 한자를 만든 선인들의 생각이 명쾌하고 사사로움이 없다. 현재 갑골 자형은 보이지 않고 금문의 자형만 보인다.
금문에서 정 자는 앞에 설명한 그대로 갑골문자의 상형자인 심(心) 자 옆에 푸를 청(靑)를 쓴다. 그럼 푸르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학자들은 푸르다는 것은 푸른색 염료의 탄광에서 나왔다고 본다. 위 모양은 날 생 生 자의 원형이고 아래 모양은 광산의 갱도를 의미한다고 본 것이다. 아래 모양은 붉을 단(丹) 자의 원형으로 봤다. 결국 푸를 청자는 붉을 단(丹) 자위에 날 생(生) 자의 자형인 셈이다. 우습게도 붉은 것에서 다시 붉어져 나오는 게 푸른 것이다. 결국 "붉디붉은 게" 푸른 것이다
일본의 시라카와 시즈카 교수는 농경 제례의식에 푸를 청(靑) 자가 붉고 푸른색으로 농경 기구를 칠한 뒤 정화시키는 의식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쨌든 붉은 단 위에 푸르다는 뜻의 생(生) 자가 있다는 분석에는 큰 이견이 없다.
개인적인 상상력을 덧붙인다면 푸를 청은 물이 풍부한 우물에 자라는 나무를 가리킨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물론 이후 자형의 발전과정에서 단(丹) 자의 자형을 비슷하게 유지하는 지금의 월(月) 자를 볼 때 연결고리가 약한 상상이다. 그러나 푸르다는 의미나, 맑을 청(淸)의 의미 등에서 볼 때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싶다.
푸른 청자의 자형이 어떻든 정이란 "마음이 푸르다"라는 의미는 변함이 없다. 날 생자가 보여주듯 푸르다는 것은 생기가 넘친다는 의미다. 청송(靑松)이란 단어에서 보듯 항상 푸를 때 정은 빛이 나는 것이다.
이 정은 우리 동양에서는 바로 사랑이었다. 요즘이야 사랑하는 사람을 애인(愛人)이라고 하지, 과거에는 모두 정인(情人)이라 했다. 사실 정은 사랑보다 깊은 감성이다. 사랑은 순간적인 마음이지만, 정은 변치 않는 마음이다. 한자 본래 의미에서 그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연인도, 가족도, 이웃도 오랜 아끼는 마음이 누적이 되면 "정을 쌓았다"하는 것이다.
복잡한 듯하지만 정말 단순한 게 정이다. 항상 그리는 마음이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한결같이 생각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나는 사람에게 나의 정이 있는 것이다. 그게 연인이면 연인의 정이요, 가족이면 가족의 정이고, 이웃이면 이웃의 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