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타인의 시작이요, 혈연의 시작이다. 사회를 만들어가는 세포다.
가끔 한자를 만든 선인들은 참 이성적이다 싶다. 어쩌면 그렇게 냉혹하게 불필요한 개념의 가지를 쳐내고, 단순화 추상화를 할 수 있을까 싶다. 집 가 자 역시 마찬가지다.
갑골문자를 만든 선인들에게 가족은 어떤 개념이었을까?
갑골문 집 가 자 자형만 봐도 그 이유는 대단히 명확하다. 누가 봐도 지붕 아래 동물, 돼지가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돼지인 것을 알까?
여기에 재미있는 팁이 하나 있다. 갑골문자는 몇 개의 선만으로도 동물들을 정확하기 구분해 냈다. 예컨대 코끼리, 토끼, 호랑이, 거북이 등은 세 살배기 영아가 봐도 코끼리요, 토끼요, 거북이다. 또 새도 그렇다.
그런데 개와 돼지는 어떻게 구분을 했을까? 물론 오늘날에 와서는 쉽게 구분되는 자도 있다. 돼지 시(豕) 자와 개 견(犬) 자이다. 그런데 과거 갑골문자 시절 둘은 어떻게 구분했을까? 모두 네발 달린 집 짐승이다. 꼬리가 비밀이다. 갑골사에서 돼지는 꼬리가 내려가고, 개는 꼬리를 올려 표시했다. '꼬리 내려간 개도 있는데?' 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 건 계란 속에 뼈를 찾는 짓이다.
어쨌든 집 가 속의 동물은 갑골사에서 분명히 개가 아니라 돼지다.
무슨 의미일까? 지붕 아래 사람이 사는 게 집이 아니라, 돼지가 사는 게 집이라니? 가볍게 생각해도 지붕 아래 사람인(人) 자를 쓰면 사람 사는 집이요, 돼지를 쓰면 되지 우리다. 양을 쓰면 축사다. 얼마나 집에 대한 표현이 다양하고 좋은가?
정말 그럴까? 개인적으로 볼 때 갑골자 집 가의 의미에는 돼지 한 마리를 키울 수 있는 집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즉 한 지붕 아래에서 서로 먹고 살 거리를 해결한 집단이라는 의미다. 한 무리가 몇인지는 몰라도 되지 한 마리를 키우며 먹고 살 능력을 갖춘 것이다. 어떤 무리는 잘 살고, 어떤 무리는 못 살지만, 어쨌든 경제적으로 자립한 첫 독립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묘하게 동서양의 사고가 비슷한 면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