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하는 삶'은 예부터 인간의 최대 고민거리 중 하나다.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욕망이고 삶이 바로 그 욕망을 채워가는 과정이 아니던가. 무엇을 어떻게 욕망하느냐는 문제나, 어떻게 만족하느냐는 문제의 답을 찾는 과정이 바로 삶이다.
사실 욕망이 있고서야 만족이 있으니, 둘은 분명 동전의 양면이다. 하지만 다르기 때문에 동전의 앞뒤가 되듯 욕망과 만족, 둘 사이 차이도 분명히 있다.
만족의 가장 쉬운 방법은 욕망을 조절하는 것이다. 욕망의 총량을 줄이는 것이다. 자학(?) 형 방법이다. 성인聖人들이 취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면벽이다.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것이다. 보지도 않은 샤넬 백을 사고 싶은 여자는 없다.
말은 제일 쉬운 데 실천하기에 가장 어렵다. 그래서 역대 '성인'이 그리 적지 않나 싶다.
한자의 세계 사고방식은 다른다. 한자는 인간적이다. 한자는 "사는 것은 욕망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만족은 발로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만족을 발로 한다니? 좀 표현이 이상하다. 그러나 배고프면 참고 굶는 것이 아니라 먹어 배를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그럼 욕망 층위의 변화는 어떤가? 맛에 대한 욕망은 배고픈 욕망의 상위 욕망이다. 이런 욕망 층위의 상승은 어떻게 해야 하나?
사실 욕망의 층위가 높아지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다. 욕망의 층위가 높아지는 것은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좋고 나쁜 것을 떠나 인간이 살아 있어 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고려되는 게 욕망의 다양성이다. 다양한 욕망이 서로 층위를 높이려 다툰다. 절대 한 욕망만 절대적 층위로 올라가도록 가만두지 않는다. 모순적인 욕망들이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배고픔이 있고 배부르면 쉬고 싶은 욕망도 있다. 생리적으로 인간은 모순적 존재고 그래서 균형을 찾게 된다. 혈당, 혈압 어느 것 하나가 낮아도 높아도 나쁘다.
한자 살 활活가 이 진리를 전하고 있다. 혀에 고인 침이 많아도 적어도 나쁜 것이다. 인간에게 모순은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욕망과 만족의 사이에 시간 개념도 중요하다. 욕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지만 만족은 시간이 지날수록 엷어진다.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욕망의 차이도 있다. 그만큼 만족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이런 복잡한 생각 속에 가장 기본이 무엇인지 한자 족足이 보여준다. 욕망은 발로하라는 것이다. 욕망은 채워서 다스리는 것이지, 비워서 다스리는 게 아니다. 모든 욕망에 충실하라고 알려준다. 그래야 한 욕망에 얽매이지 않고 중용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 신체 생리적 건강의 비밀이 바로 중요의 도리라고 한자 족足이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