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려운 이야기다. 모든 욕망이 문제가 되는 순간이 필요한 것을 넘어서는 순간이다. 만족을 하지 못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아예 욕망을 억누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만족할 순간을 알면 인생사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다.
참 말이 쉽지 결코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랬으면 진작에 세상이 천국이 됐다.
순수했던 선인들, 한자를 만든 선인들의 생각은 이때 항상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족은 한자로 '滿足'다. 발이 가득한 게 만족이라는 의미다. 물론 여기서 족은 명사로 발을 뜻하지만, 형용사로 충만하다, 채우다는 뜻이다.
언제 발족은 이렇게 명사와 형용사의 뜻이 달랐을까? 고대 발 족 자가 의미하던 것을 알면 의문이 풀린다.
다음은 갑골문자의 발 족과 그 후의 변화다.
어린아이 그림 같은 글자를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아이에게 로봇이 앉아 있다고 설명을 해주면 금방 알아듣는다. 그렇게 쉽다. 그런데 혹 기억하는 이가 있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정면의 정, 바를 정 자와 갑골문의 형태가 같기 때문이다.
다음은 바를 정 자의 갑골문자 형태다.
모양이 똑같다. 당연히 바르다는 뜻과 발 족, 충분하다는 뜻은 모두 하나의 원형에서 나왔다. 과거 갑골문자의 모양을 보면, 발이 한마을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모양이다. 발을 이용해 한마을에 도달하는 모양 전체가 발 족에 원형에 담긴 뜻이다.
발로 갔으니 발이라는 의미도 있고, 원했던 마을에 도착했으니 이제 충분하다는 의미도 있다. 앞으로 향했으니 정면이라는 의미도 있을 수 있다. 정면의 정은 마을 보다 앞으로 가는 자세가 더 중요했기에 마을의 모양이 선 하나로 단순화되지 않았을까?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연구자들의 연구를 좀 더 살펴야 하겠지만, 일단 발 족의 갑골문자 원형이 가지고 있던 의미들은 이제 대략 이해가 된다. 결국 '발이 가득하다'는 만족은 발걸음이 다했다는 의미다. "이제 만니 묵었다"는 의미다. 그만 그쳐도 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의 개념 군을 정리하면 자연스럽게 발이라는 상징물로 대변된다.
다시 정리하면, 바르다는 것, 만족이라는 것, 충분이라는 것, 이 모두가 움직이는 발과 연관이 돼 있다. 간단히 발로 뛰어야 바른 것, 만족이라는 것, 충족이라는 것이 이 모든 것들이 이뤄지는 것이다. 바르다는 것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니고 발로 하는 것이다. 실천해야 바른 것이고 만족이 있는 것이다. 이 말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만족은 발로 하는 것이다.
말이 아니라 실천에 있는 것이다.
그래 만족은 욕망이 알맞게 채워져 그치는 것이다.
만족은 바른 것이다.
바른 것은 말이 아니라 발로 실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