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香細而幽(lán xiāng xì ér yōu), 난향이 은은히 깊다. 송 시인 서기(徐璣)의 말이다. 사람의 향은 난향과 같다. 깊고 은은하다.”
수양한 사람의 향을 흔히 난향에 비유한다. 그 특성이 같기 때문이다. 코를 자극하지 않지만 은은히 오래간다.
위인과 주인의 노력으로 크게 쓰인 사람의 향이다. 초두 변에 사람 인자를 쓴 한자를 상상해 본다. 꽃다울 방(芳) 자의 변형인 셈이다. 향기 나는 사람 인이다. 욕망에 지지 않고 열심히 산 사람이다.
블루, 레드, 화이트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1993년 이후 폴란드 출신의 감독 키에슬로프스키가 내놓은 영화다. 프랑스 국기가 상징하는 색으로 자유, 평등, 박애를 주제로 했다. 개인적으로 인간들이 관계를 세 가지 색으로 강조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근 20년이 넘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장면이 있다. 세 영화 모두에 길거리 쓰레기통에 병을 버리는 노인네의 모습이 등장한다. 할머니였다 싶다. 길을 가던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쓰레기통에 애써 병을 버린다. 손이 닿지 않아 겨우 애써 병을 버린다. 그냥 길에 두고 갈 법도 한 데 꼭 쓰레기통에 넣는다. 너무 애쓰는 모습에 보는 이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도대체 저 노인은 무엇 때문에 그리 애를 쓰는가? 답은 하나다. 늙어 보니 아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 보니 아는 것이다. 애정이다. 세상을 위해 병 하나라도 쓰레기를 치우려는 마음이다.
영화의 스토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 장면은 3가지 색의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되풀이되면서 묘한 감동을 준다.
향기 나는 인생이란 꼭 큰 성과를 내야 하는 게 아니다. 하나의 가치관을 잃지 않고 산 인생이다. 힘들게 길에서 주은 빈 병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이름 없는 할머니의 모습에 바로 인생의 향기가 묻어난다.
한 중국 학자가 있었다. 평생 죽는 순간까지 한 가지에 연구에만 몰두했다. 홍루몽의 대가 저우니창(周汝昌) 선생이다. 지난 2012년 5월 31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저우 선생에 대한 추모 기사로 중국의 한 잡지는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원고를 읽고 쓰기 위해 원고에 얼굴을 원고에 묻고 만년필을 잡고 있는 모습의 사진을 게재했다. 정말 최후의 순간까지 책 읽기를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평생을 해온 하나의 실천이 인생을 향기롭게 한다. 난 얼마나 향기로운 삶을 살았을까? 답은 이 세상 다 살고 나면 나올 것이다. 그게 그냥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