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가장 약하지만 가장 강하기도 하다. 그래서 물을 다스리기 가장 어렵다. 다스린다는 것은 물의 특성을 법칙으로 안정을 추구하고 소통하게 하는 것이다.”
참 멋드러진 말이다. 이렇게 동양의 통치 철학은 분명한 곳에서 출발해서 아쉽게도 갈수록 모호해졌다. 간단히 물처럼 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남을 이롭게 하고 항상 낮은 곳에 임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바로 요즘 우리가 다시 한번 물을 다스리는 법을 되돌아 봐야하는 이유다. 한자 치(治) 자에 그 답이 있다. 금문 이전의 치는 분명 물 옆에 길을 내 아래 마을을 지키는 모양이다. 고대 우(禹)왕의 치수법이 바로 그랬다. 한자 치는 치수에 바빠 집 앞을 3번 지나치고도 집을 들리지 못했다는 우왕의 치수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다.
우왕의 치수법은 아직도 현존하고 있다. 쓰촨(四川) 두장옌(都江堰)그 그 곳이다. 두장옌은 진나라 촉군의 태수 이빙과 그의 아들 이랑이 기원전 306~251년 사이 건설했다는 수리시설이다. 전설의 우왕이 하왕조의 시조이고, 은, 주왕조를 지나 춘추전국 시대까지 약 2000년의 시공은 넘어 우왕의 치수법을 그대로 실현한 것이다. 역시 한자의 매력이다.
두장옌은 민강의 범람을 막고 쓰촨 농경지에 물을 대는 것인데, 이 수리시설은 지금까지 작동하고 있다. 민강 옆에 외강을 파고 이 외강의 옆구리에 다시 쓰촨으로 흐르는 지류를 판 것이 수리시설의 전부다. 외강의 내강보다 강 바닥이 낮고, 지류는 더욱 낮다. 지형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내강의 강물이 넘치는 것을 외강이 흡수해주는 방식이다.
외강에는 다시 쓰촨 농경지로 흐르는 작은 강을 만들어 다시 외강의 물이 넘치는 것을 흡수해준다. 이 작은 강은 쓰촨의 농경지를 돌고 돌아 항상 일정량의 농수를 공급하게 된다. 이 두번의 충격 흡수 장치로 민강은 강물이 아무리 넘쳐도 강둑을 넘어 밖으로 범람하지 않는다. 또 쓰촨 농경지 농수는 지류의 위치가 가장 낮아 민강의 수위가 웬만큼 떨어져도 물 공급을 멈추지 않는다.
사실 말이 쉽지 당시 이게 얼마나 대단한 공사였는지, 눈으로 봐야만 실감이 난다. 두장옌의 외강은 내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고 깊다. 내외강을 나누고 있는 인공 둑을 따라 10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 민강의 내강을 보면 입이 절로 쩍 벌어진다. 도저히 그 옛날 원시적인 장비로 사람의 손만으로 공사를 마쳤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어쨌든 두장옌은 그 옛날 우왕이 발견한 치수의 원칙을 그대로 구현해 냈다. 물의 특성들, 강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른다. 아무리 작은 구멍도 다 채우고서야 다시 흐른다. 강물은 흐르면서 주변의 모든 것을 이롭게 한다 등의 특성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바로 상선약수의 물의 법칙을 그대로 구현한 것이다.
물론 두장옌의 물은 쓰촨의 농경지를 풍요롭게 하고도 공을 구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여전히 그 공을 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