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란 무엇인가? 동양의 수많은 사상가가 이에 답을 했다. 모두가 매달려 노자의 의미를 풀었지만, "말이 많아 거짓이 많다" 결국 노자 말처럼 됐다. 그런데 갑골문자 도의 의미는 대단히 단순하고 명쾌하기만 하다.
"도외무물"(道外無物;도 밖에는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 도가의 대명제다. 도대체 도란 무엇이길래 사물의 존폐를 가르는 것일까.? 살다 보면 때론 '과연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것인가?'는 문제에 빠지기도 한다. 여기서 길은 도다. 결국 '도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이다. 문제가 어려운 이유가 있다. "신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같기 때문이다. 모두가 답보다 문제 자체가 중요한 질문들이다.
삼성그룹 창립자 이병철 회장이 임종을 앞두고 종교인을 찾아 비슷한 질문을 남겼다. 누가 있어 이병철 회장만큼 인생사 잘 살았다고 자부할까? 그런 그가 남긴 질문이니 새삼 남달라 보인다. 하지만 결국 '인간의 질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궁금해야 하는 궁극의 질문인 것이다. 이 궁극의 질문에는 실은 답이 중요하지 않다. 답을 검증할 방법도 없다.
"신은 존재하는가?", 이병철 회장의 질문은 그 뒤 몇몇 신학자, 고승들이 300페이지 안팎의 책으로 답을 했다. 결국 헛돌았다. 모두가 이미 있는 주장을 자기식으로 다시 설명했을 뿐이다. 또다시 노자가 지적한 오류의 고리에 빠진다. "말이 많아 오해가 생긴다". 웃기지만 아직도 이 순간 누군가 이병철 회장 질문에 답을 정리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모두가 맞고, 어쩌면 모두가 틀린 것들이다. 분명한 것은 정답은 검증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이병철 회장의 질문의 답은 오랜 역사 속에 누구도 검증하지 못한다는 것만 검증됐을 뿐이다. 모든 답이 결국 믿거나 말거나 인 것이다.
그럼 다시 우리의 질문이다. "도란 무엇인가?" 최소한 한자의 세계에서 답은 복잡하지 않다. 딱 하나의 한자로 답을 한다. "도는 ‘도’(道)다" 다만 그 속에 담긴 지혜를 어떻게 풀어내 체득하느냐는 것은 마뜩지 않은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다.
갑골문에서는 그 모습을 찾기 힘들고, 금문에서 도 자는 사거리를 표시한 행(行) 자 가운데 사람인(人)를 표시한 것이었다. 쉽게 길을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글자가 춘추전국 시대 금문에 오면서 가운데 사람 머리를 표기하는 자형으로 바뀐다. 머리수 자는 동물의머리가 아니다. 갑골문자는 머리수(首)는 사람의 머리의 상형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대 예서에서 와서는 머리 수(首)에 간다는뜻을 더한 것으로 자형이 완전히 바뀐다. 과연 무슨 의미일까? 사람의 머리를 들고 가는 모습이 도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