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되다'라는 건 뭘까? 어린애 같은 질문이지만 답은 어렵다. 인간이 사고, 철학이란 걸 한 뒤 가장 많이 한 질문일 것이다. 과연 참되다는 게 어떤 것일까?”
새벽안개 자욱한 성곽, 아침 햇살에 높다란 성 누각의 기와가 빛을 쏟아 낸다. 잠시 눈을 가린 햇살 사이로 조금씩 검은 그림자가 그 형체를 드러낸다. 먼지로 떡 진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린다. 반쯤 뼈를 드러낸 인두(人頭)다. 좀 더 자세히 보려는 데 갑자기 휑하니 뚫린 눈구멍 안에서 두 눈동자가 반짝인다.
화들짝 놀라 깨면 꿈이다. 어린 시절 자주 가위에 눌렸다. 탐험 소설을 읽기 좋아했는데 읽고 나면 여지없이 시체를 보는 악몽을 꿨다. 꿈이지만 깨고 나면 한동안 가슴을 쓸어야 했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기에 어렸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죽음이 주는 공포가 있었다. 인생의 마지막 그 무엇도 숨길 수 없는, 아니 그 무엇도 숨길 필요가 없는 그 순간에 대한 ‘경건한 공포’라 할까.
한자 참 진(眞) 자는 이런 경건한 공포와 연관이 깊다. 참 진 자를 포함한 대표적인 단어가 ‘진실’(眞實)이다. '참되다'라는 진 자만으로 모자라 '실할' 실 자를 보탰다. "참되고 실하다"하는 뜻이다. 영어의 ‘truth’다.
진실’은 개인적으로 평생의 화두다. 기자라는 직업병이다. 기자는 ‘진실’이란 상품을 만든다고 생각해 왔다. 취재하며 항상 진실은 무엇인가, 내가 전하는 것이 과연 진실인가 하는 것을 고민해 왔다. 고민이 깊을수록 글쓰기가 두려웠다. 한 가지 사건에 관련된 사실들을 모두 알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건을 이야기해야만 하는 게 기자의 한계이고 숙명이다.
부족한 취재 뒤에 출고한 기사는 어린 시절 읽었던 탐험 소설 같았다. 그런 기사를 출고한 날 밤이면 술 취해 잠든 경찰서 기자실에서 가위에 눌려 깨곤 했다. ‘혹 내가 쓴 기사가 진실을 왜곡한 것은 아닐까.’하는 두려움에 가슴을 쓸어야 했다.
“참 진은 시체를 형상화한 글자다. 죽음을 마주하라는 게 참 진 자의 본래 의미인 것이다.”
참 진은 시체를 효수해 그 머리를 거꾸로 매단 것을 형상화한 글자다. 서두에서 설명했지만 성곽 밖에 내걸린 시체다. 이웃한 적들에게, 성내 백성들에게 일벌백계(一罰百戒)의 의미로 내건 시체를 추상화한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참 진 자는 화(化의 오른편 자)와 교(교;진 자의 아랫부분)의 회의자다. 중국 최초의 사전 설문해자는 ‘화’ 자는"변(變)이다. 쓰러진 사람이란 뜻을 따른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중국 동한 시대 허신(許愼)이 쓴 설문해자는 가장 존중 받는 저서이기는 하지만 아쉽게도 자형의 설명에서 오류가 적지 않다. 당대에 아직 한자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갑골문자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골문자 연구에 세계적인 권위자인 일본의 시라카와 시즈카 교수는 진 하부의 교자를 머리수(首)를 거꾸로 한 것으로, 시체의 머리를 거꾸로 한 채 제사를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풀이한다. 실제 거꾸로 걸어놓은 시체의 자른 머리를 가리키는 것이 진의 본래 뜻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시즈카 교수는 그 머리가 떨어져 땅에 있는 것이 엎드릴 전(顚)라고 풀이하고 있다. 혈(頁) 자는 인체를 뜻하는 문자로 항(項), 경(頸), 령(領), 제(題) 등이 그런 형식의 한자들이 있다.
거꾸로 매단 머리를 흙으로 덮는 것은 ‘묻다, 채우다, 오래되다’는 뜻의 전(塡) 자다. 옛 제례 풍속에 의거 갑골문자의 해석하는 게 시즈카 교수의 특징이다. 과거 갑골 문자를 만든 은(殷) 나라에는 단수제효(斷首祭梟; 머리를 잘라 제사를 지내다)의 풍속이 있었다. 실제 은나라 때 지은 성곽 문 주변에는 효수돼 묻힌 인두들이 발견된다. 스즈카 교수는 이 같은 풍속이 한자에 그대로 낙인 됐다고 본다. 참 진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참 진의 본의는 "거꾸로 매단 시체"다. 참 무시무시한 뜻이 바로 진(眞) 자다. 그럼 왜, 언제 ‘참되다’는 뜻이 됐을까. 중국 상무인 세관이 발행한 ‘고대 한어사전’(1998년)에는 진 자의 첫 쓰임을 장자(莊子)의 글에서 찾고 있다. 장자는 ‘추수’(秋水)에서 "무이인멸천, 무이고멸명, 무이득순명, 근수이물실, 시위반기진"(无以人滅天, 无以故滅命, 无以得殉名, 謹守爾勿失, 是謂反其眞; 천리를 따르고, 명을 어기지 아니하며, 허명을 쫓지 말라, 이를 지켜 단속하고 잃지 않으면, 이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느니라.)고 하며 진 자를 본래의 모습, 참된 것이라는 뜻으로 썼다.
“无以人滅天, 无以故滅命, 无以得殉名, 謹守爾勿失, 是謂反其眞”
천리를 따르고, 명을 어기지 아니하며, 허명을 쫓지 말라, 이를 지켜 단속하고 잃지 않으면, 이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