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는 게 무엇인가? 인간의 인식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인식하고 기억하는가? 무엇을 안다고 하는가? 어렵고 복잡한 질문이다. 질문이 삶의 본질에서 사건의 지평선 경계까지 맞닿아 있는 탓이다. 삶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처럼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길게 연구돼 마치 모두가 다 아는 양 여겨지는 그런 질문이다. 그런데 정작 그 답을 하는 이는 드물다. 역시 그 질문이 삶의 본질에서 사건의 지평선 경계까지 맞닿아 있는 탓이다. 동양의 사고는 보다 본질적이다. 욕망을 부인하지 않고, 그 욕망을 본질로 보고 인간이 갖는 모든 질문에 답을 찾는다. 그 동양적 사고에 기초하면 사람의 본질은 동물이다. 동물은 생존과 번식이 본질적 목적이다. 간단히, 살아남는 것이다. 살아남아 전하는 것이다. 자식을 낳아 종족을 자신 속의 DNA를 자신의 삶의 흔적을, 기억을 그 흔적과 기억이 영원히 살아남도록 자자손손 전하는 것이다. 동양에서 안다는 것은 이 같은 삶과 죽음의 순환 고리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 고리 속에 새로운 삶과 새로운 죽음이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처음 안다는 뜻의 지(知)를 보고 스스로 물었다. 화살 시(矢)과 입(口)이 어찌 ‘안
지(志), 마음에 놓인 선비라는 뜻이다. 마음에 선비를 품는다. 다른 게 아니라 뜻이다. 의(意)요, 지(志)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소리요, 내 마음 속 선비다. 본래 선비란 무엇인가? 조선에서 ‘선비’라 했지, 본래는 그냥 ‘사’(士)다. 사실 선비의 사는 상형자다. 도끼의 모습이다. 본래 임금 왕(王)과 같이 쓰이기도 했다. 임금의 도끼가 더 크고 사의 도끼는 적다. 임금을 뜻하는 도끼 위에 한 획을 더하면서 글자의 차이가 생긴다. 사는 고대 가장 지위가 낮은 귀족이었다. 고대 형을 집행하는 관료를 의미했다. 문과 무를 관장해 전쟁을 치르는 계급이기도 했다. 춘추시대까지는 이 사 계급만이 전쟁에 나가 싸울 수 있었다. 전국시대에 들면서 사 계급 아래 병졸이 생기는 전면전 시대가 됐다. 유럽으로 치면 기사 계급이었던 셈이다. 그냥 마음이 아니라, 형벌을 행하는 마음. 바로 지(志)인 것이다. 반드시 지키고 지키지 않으면 스스로를 벌하겠다는 각오인 셈이다. 설문해자 해석은 좀 다르다. 갑골문자는 청나라 말기 발견됐다. 갑골문자에 대한 연구로 한자의 고대 의미들이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많은 문헌의 의미도 새롭게 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설문해자는 당대 한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