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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斗山02]离家出走的佃农之子

       斗山集团的创始人朴承稷会长,1864年出生于一户贫困的佃农家里。佃农,指封建地主制经济下租种地主土地的农民。朝鲜王朝末期,贵族阶层的地主们垄断了全国土地,导致绝大多数的平民沦为佃农或地主的奴仆。不管是佃农还是奴仆,都很低贱,但朝鲜王朝末期的佃农常常会缺吃少穿,其生活质量连奴仆都不及。朴承稷出生于那样贫困的家庭,从小从事体力劳动,过着吃不饱、穿不暖的生活。整天忙于耕地,连思考的时间都没有,更别说是规划未来或追求梦想了。没有未来,没有梦想。

 

 

 

斗山集团的DOTTA免税店开启了东大门免税店时代。

 

 

       有一天,年幼的朴承稷扛着锄头上山去了。当时,佃农得定期向地主上交一定的粮食或收获物,所以光靠租种,无法养活一家人,所以他们都会上山采用刀耕火种的方法耕种畬田。刀耕火种是较为原始的耕作方法,先砍伐地面上的树木等枯根朽茎,待草木晒干后用火焚烧土地,再利用地表草木灰作肥料,播种粮食,但用这样的方法得到的土地,一开始都会有很多石头,所以大人们在田地里耕作时,小孩子们得上山挑出畬田里的这些石头。

 

       “嗨哟,嗨哟!”从早上持续到下午的农活,让年幼的朴承稷汗流浃背,灰土与汗水混在一起变成一片黑溜溜的污水,但他一点都没在意,只想着尽快挑好石头,种下大豆或蔬菜,填饱肚子。这时,“哎哟!哎呀!”朴承稷抓住小腿,开始在地上打滚。年幼的朴承稷不小心把锄头打在了一块大石头上,锄头当场就断了,折断的锄头飞了出去,狠狠地打在他的小腿上,他疼得抓着小腿满地打滚。不知道过了多久,小腿不疼了,但朴承稷无法止住自己的眼泪。他的哭声越来越大。即使身体上的疼痛已消失,心里的创伤也抹不去。

 

 

斗山集团创始人朴承稷。 

 

 

       “啊!这是什么样的人生啊!”朴承稷的内心开始翻涌。“(我的人生)比牛还糟糕。我比牛干活都认真,但我挨饿,牛不挨饿呀!我到底要做农活到何时?若以这样的努力和毅力做其他的事,我肯定会成功。对啊,离开这里,到新的世界去吧。去找找有没有其他活可以做!”此时,年幼的朴承稷做了人生中最大的决定。

 

 

1896年开业的朴承稷商店。 

 

 

       后来,斗山集团的创始人朴承稷回想当时的情景说道:“从那天开始,我每天都琢磨要怎么离家出走。”机会不负有心人。根据朴承稷会长的《回忆录》,他在光州市附近的松坡场偶遇金万凤。“叔叔,您是从首尔来的吧?能给我介绍工作吗?”金万凤被年幼的朴承稷散发出的热情所感动,让朴承稷去位于首尔市梨岘的一家商店工作。

 

       其实,当时首尔的经济情况与其他地区没有什么不同,但对于刚进京的朴承稷而言,首尔是一个非常繁华的地方。首先,居住人数比其他地方多。城市与农村呈现的两种不同景色,让年幼的朴承稷兴奋不已。“我在这里拼一拼吧!”店主赞赏朴承稷天真又诚实的性格,让他做卖煤油的活计。

 

       直到1883年,韩国全国各地一直都在用煤油灯。被派遣到美国的“报聘使节团”,在波士顿展览会上看到白炽灯泡,回国后向高宗报告,在亚洲首次使用了最高功能的蒸汽机,在景福宫香远亭的莲池上接入了电气。韩国民间直到90年代才有了照明灯。1990年4月10日,韩国首次推出了民间用电灯。因此,韩国人每逢4月10日都会纪念韩国的“电气之日”。

 

 

 

就职于梨岘的商店的创始人朴承稷第一个任务就是销售煤油灯的煤油。

 

 

       朝鲜王朝末期,电灯非常罕见,连贵族阶层都没有看到过几盏,更别说是普通老百姓了。当时,景福宫香远亭设置了电灯,老百姓以为是鬼火,一开始,只要看到景福宫那边的灯火,都忙着逃跑喊救命。在朝鲜王朝的民间,电灯长期被称为“鬼火”或“怪火”。后来,民间电灯开始普及,但技术还不够发达,电费很高,灯泡经常烧坏,像极了不正经的流氓,所以民间把电灯叫做“流氓灯”。

 

       比起这“流氓灯”,朝鲜老百姓更加熟悉煤油灯,煤油灯也是普通老百姓照亮他们房屋的唯一工具。一整天的体力劳动后,一家人聚在隐隐发光的灯笼下,说话谈笑,便忘记了劳动的辛苦。虽然煤油灯是以煤油作为燃料的简易灯火,但对于普通老百姓而言,比昂贵的电灯重要多了。朴承稷的第一份工作就是销售这煤油灯的煤油。

 

 

笔者 淸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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