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 길이를 재는 데 쓰는 도구'. 자의 사전상 의미이다. 하지만 ‘잴 수 없는 자’, 측정 도구로서의 기능이 배제된 자는 리듬체조 선수의 리본처럼 전시장에서 예술품으로 탄생했다.
김승주는 20여 년 간 자를 모티브로 실험적인 작품들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작가다. 그는 촘촘한 눈금 표시와 엄격한 직선으로 대표되는 자 그 자체의 조형성에 주목했다. 그가 이번에는 기존에 주로 해온 직선 작업에서 벗어나 비논리적으로 확대되고 뒤틀린 곡선 작업을 선보인다.
갤러리에서 만난 김 작가는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숫자를 되뇌고 카운팅 하다가 우연히 숫자를 쓰는 작업을 하게 됐고 지금의 작품으로 이어지게 됐다고 한다.
그는 “자는 규칙과 정확성과 획일성을 갖고 있는데 그것을 왜곡하고 싶었다. 확대시키거나 곡선으로 표현해 자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고 이번 전시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아이러니하게도 잴 수 없는 자 작업을 위해 하나하나 눈금을 붙이는 작업을 한다”면서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잣대를 갖고 있고 그 눈금의 크기가 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 작업은 제 마음 속의 기준을 시각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 공간을 채운 10점의 설치작품들을 마주보고 있으면 마치 공간을 캔버스 삼아 드로잉을 한 회화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작가는 우연성과 율동감 있는 곡선을 표현하기 위한 소재로는 의도적으로 스틸이나 알루미늄 같이 단단하고 강한 소재를 사용했다.
김승주의 ‘온 더 라인 On the Line’전은 서울 종로구 리안갤러리에서 4월 28일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