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은 물질적인 것이 하나도 없어. 낭만적인 것만, 똑같은 것만 그린다. 또 서양은 물질만 그리니까 정신이 하나도 안 들어가 있어. 그래서 그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이성자 화백(1918~2009)은 작고하기 3년 전인 2006년 프랑스 남부 투레트에 있는 작업실 ‘은하수’에서 한 인터뷰에서 60여 년에 걸친 작품 세계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한국전쟁 발발, 결혼 12년 만에 남편과의 이혼, 세 아들과의 생이별, 부산으로 피난, 도불(渡佛)… 작가 이성자가 어머니와 자식들을 두고, 지구 반대편 프랑스에서 삶을 지탱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그림이었다.
15년간 이국땅에서 그림 그리는 데만 열중했던 이성자 작가가 남긴 작품 수는 어마어마하다. 유화가 1300여 점, 판화 1만2000여 점 등 총 1만4000여 점에 이른다. 작가는 평생 ‘동양과 서양’, ‘정신과 물질’, ‘자연과 인공’, ‘자연과 기계’ 등 대립적인 요소들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며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이 같은 독특한 작품세계는 당시 프랑스에서 영향력 있는 비평가 조르주 부다이유George Boudaille의 관심을 끌었고 1962년 그린 <내가 아는 어머니>를 에콜 드 파리에 출품해 프랑스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라라뱅시 Lara-Vincy, 샤르팡티에 Charpentier 같이 유명한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만큼 프랑스 화단에서 일찌감치 인정을 받았다.
이성자의 60년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오는 22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 이성자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성자 :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전시를 열고 회화와 판화 등 127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아온 한국 여성미술가들을 연구하고 조망하기 위해 기획됐으며 이성자의 행적과 작품세계를 한눈에 만나볼 수 있다.
아카데미에서 기초를 배우고 추상에 대한 시도를 보여주는 ‘조형탐색기’, 여성으로서 세 아이의 어머니로서 대지를 경작하는 마음으로 그린 ‘여성과 대지’ 시기, 중첩된 건물의 도시를 표현한 ‘음양’시기, 자연과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내려다 본 극지와 자연, 우주를 나타낸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등 4개의 주제로 나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7월29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