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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现代集团与创始人郑周永23】金刚号的船笛响起

       1998年11月18日的东海港。2万8000万吨的金刚号,伴随着汽笛的长鸣声,慢慢地离开了港口。港口已经聚集了很多人,他们向金刚号与船客们挥手,船上的访朝观光客也以挥手回礼。
       这正是金刚号观光的起点。南北分裂50多年来,韩国老百姓首次踏上朝鲜土地。快到下午5点的时候,虽然冬季傍晚的海风刮得猛烈,但聚集到港口送行的人,直到看不见船舶为止,谁都没有离开,一直朝着船舶方向挥手。当天参加金刚山观光项目的船客,大部分都是失去家乡的“失乡民”。他们的故乡正是朝鲜。所以这次能踏上朝鲜土地,哪怕是片刻,也足以让他们心潮澎湃。

 

在江陵镜浦台夏季新职员培训中,郑周永会长与职员们一起唱歌。

 

       船舶在公海上航行之前,船客们已经沉浸在庆典的气氛之中了,船上还安排了专属的俄罗斯舞蹈团、人气歌手等各种表演。现代汽车集团的郑梦九会长代表现代家族,一把抓住麦克风唱起了歌。
       “含恨的大同江啊/依然还好吗?”郑梦九会长所唱的歌曲,满载着对故乡的怀念。就这样,金刚山观光正式开启,但并不是从一开始就这么顺利。从决定的阶段到事业进行时期,处处都充满着挫折和磨难。挑选游船的在朝停泊港口的过程就非常艰难。张镇港是朝鲜所有港口中唯一能停泊大型游船的港口,但张镇港是朝鲜潜水艇驻军的军事港口。观光项目带来的收入再大,又如何能够与国家安保相比呢?但即便如此,郑周永也加大力度推进了金刚山观光事业。当时的朝鲜国防委员会委员长金正日,也被郑周永的热情打动,最终点头同意了。 

       郑周永对朝鲜的投资也毫不吝啬,其中最为典型的例子就是平壤室内体育馆。1999年9月,在平壤的木兰馆举行了平壤室内体育馆的开动典礼与“南北统一”篮球大赛。平壤室内体育馆位于朝鲜引以为豪的柳京酒店旁边。这是郑周永开启金刚山观光事业之后,对朝投资的主要项目之一。在朝鲜,至今还作为郑周永体育馆保留着平壤室内体育馆。

 

1998年10月30日,在百花园迎宾馆进行第一次面谈的金正日国防委员长与现代集团郑周永会长。


       在开工典礼上,郑周永歌唱了《故乡的春天》。朝鲜政府对郑周永的接待也非常隆重。除了郑周永之外,郑梦宪会长与现代峨山的金润圭会长,也作为韩国代表团参加了典礼。朝鲜的金容淳委员长带领欢迎的团队,作为朝鲜代表团参加了开工典礼。“金正日将军叫我好好照顾各位。”这是金容淳委员长见到郑周永的时候说的第一句话。
       在平壤室内体育馆开工典礼的一幕中,不难看出,朝鲜政府对郑周永的重视与信任。除了体育馆项目以外,郑周永还进行了平壤通讯事业与江原道高城郡的塑料大棚事业。

       不仅如此,郑周永在金刚山进行了现代建设的新职员培训。现代建设是现代集团的母公司,所以郑周永对现代建设的新职员格外上心。现代建设的新职员培训,通常在江陵、镜浦台、西山农场等现代集团当期最重视的事业单位举办。金刚山观光项目是郑周永非常重视的事业,只可惜,如今该事业已被中断。2008年7月11日,访问金刚山的韩国游客被朝鲜巡逻哨兵枪杀,韩国政府暂时中断了该事业。当然,在这样的重大事件爆发之前,也有不少冲突与矛盾。观光开启的第7个月,也就是1999年6月20日,朝鲜政府以一名韩国游客对朝鲜环境监督员进行投诚利诱为由,暂时中断了观光事业。韩国与朝鲜两国经过一番商讨,定下观光细则与游客贴身保护协议之后,于2003年9月,再一次正式开启陆地观光。2005年6月,金刚山观光的韩国游客人数高达100万名。

 

2004年,金刚山陆地观光团正在回国的路上。2004年2月,通过陆地的金刚山观光项目正式开启了。


       但受2008年7月11日枪杀案件的影响,金刚山观光事业再次被暂时中断。朝鲜政府这边也出现了想要把金刚山观光事业交给其他外国企业的动静。每当两国之间出现矛盾,观光事业被中断的时候,所有的损失都由现代集团来承担。不过,每个人都承认金刚山观光事业与开城工业团开发事业,为韩国与朝鲜之间的关系提供了新的发展可能性。
       如果说金刚山观光事业是人际交流型事业,开城工业团事业则是产业交流型事业。继金刚山观光事业,郑周永的热情再一次成就了开城工业团事业。

 

笔者 淸露 图片摘自 现代集团

 

现代集团与创始人郑周永(23)

 

 

금강호 뱃고동을 울리다.

 

 

1998년 11월 18일 동해항. 2만8000톤급 금강호가 뱃고동을 울리며 서서히 정박했던 항구를 벗어난다. 수많은 사람들이 항구에 나와 손을 흔들었다. 배 난간마다 관광객들이 전송 나온 이들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의 출발이었다. 남북 분단 50여  만에 처음으로 한국 민간인들이 북한 땅을 밟는 것이었다. 오후 5시 저녁이 다 된 시간, 초겨울 저녁 바닷바람이 매서웠지만 누구도 배가 출발하는 순간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특히 이날 관광객들은 대부분이 고향이 북이어서 고향을 찾을 없는 실향민들이었다. 모두가 북한 땅을 밟는다는 사실만으로 가슴 벅찬 사람들이었다.

배가 공해상으로 나가기 전부터 이미 안은 축제 분위기였다. 전속 러시아 무용단, 인기 가수들의 공연도 이어졌다. 현대가를 대표해 현재 현대자동차그룹 오너인 정몽구 회장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 고향의 그리움이 물씬 묻어나는 노래였다.

금강산 관광은 이렇게 물꼬를 텄다. 그러나 그 시작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금강산 개발 산업 결정 자체가 그랬지만, 사업이 결정되고 진행되는 과정도 곳곳이 지뢰밭이었다.

유람선 기항 선정부터 그랬다. 북의 장진항이 대형 유람선이 정박할 유일한 항구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 항구가 북의 잠수함 부대가 주둔하는 군사 항구였다는 점이다. 아무리 관광 돈 벌이가 중요해도 어찌 안보 문제와 바꿀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주영은 강하게 밀어붙였고 이를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응낙하면서 겨우 실현됐다.

정주영 역시 북에 아낌 없는 투자를 한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평양실내체육관이다. 1999년 9월 평양 목란관에서 착공식 기념식과 함께 남북통일 농구대회가 열렸다. 평양실내체육관은 북한이 자랑하는 류경호텔 옆에 위치했다. 정주영이 금강산 관광 사업을 진행한 뒤 손댄 다양한 북한 투자 가운데 하나였다. 북에 지금도 정주영 체육관으로 남아있다.

착공식에서 정주영은 ‘고향의 봄’을 노래했다. 북의 대접도 융숭했다. 남측에서는 정주영 외에도 정몽헌 회장과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등이 참석했다. 북에서는 김용순 위원장이 환영단을 인솔해 참석했다. “김정일 장군께서 여러분을 잘 배려하라고 했습니다.” 정주영 일행을 맞은 김용순 위원장의 첫마디였다.

그만큼 정주영에 대한 북의 신뢰를 엿볼 있는 장면이 바로 평양실내체육관 착공 기념식장이엇다. 정주영은 이 뿐만 아니라 평양지역 통신사업, 강원도 고성군에 비닐하우스 농장을 만들어 금강산 관광지에 식자재를 대는 사업 등도 진행하고 있었다.

정주영은 특히 현대건설의 신입사원 수련식을 금강산에서 연다. 현대건설은 당시 정주영을 있게 한 모태였다. 정주영은 현대건설 신입사원을 각별히 챙겼다. 현대건설 신입사원 수련회는 현대그룹 전체가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체에서 진행했다. 강릉 경포대, 서산농장 등이 현대건설 신입사원 수련회가 열린 곳이었다.

금강산 관광개발 사업은 이렇게 정주영 일생일대의 역점을 사업이었다. 그러나 2017년 현재 이 사업은 아쉽지만 중단된 채 방치되고 있다. 2008년 7월 11일 금강산을 여행하던 남의 여행객이 북 경비병의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남쪽이 금강산 여행을 잠정 중단시킨 것이다. 물론 중간에도 고비가 적지 않았다.

관광 시작 7개월 만인 6월 20일 남 관광객이 북 환경감시원에게 귀순 공작을 했다는 이유로 잠정 중단됐다. 양측이 관광세칙과 신변보호 협의를 새롭게 하면서 시작됐다. 2003년 9월부터 육로 관광이 시작됐고, 2005년 6월에는 금강산 관광객이 100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업은 다시 2008년 7월 11일 사건으로 중단되고 만다. 북에서는 해외 기업에게 그 운영권을 맡기려 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매 고비의 순간마다 손실은 현대그룹에서 떠안았다. 모두가 인정하는 것은 금강산 관광사업이 또 다른 사업인 개성공단 개발사업과 함께 남북 분단의 역사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사업이었다는 점이다.

금강산 관광사업이 인적 교류 사업이었다면, 개성공단 사업은 산업체 교류 사업이었다. 그 시작 역시 정주영의 열정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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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드라마 막장형 늘어나며 사회 속에 여성혐오 싹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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