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보는 ‘1억 관객’ 배우의 저력
송강호 vs 황정민
인구 5000만 대한민국에서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모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흥행을 보증하는 배우들에게 ‘천만 관객 배우’라는 호칭을 붙인다. 그를 넘어선 ‘1억 관객 배우’는 한국에 단 세 명. 그 중 두 명의 영화가 최근 개봉하며 그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택시운전사>의 송강호와 <군함도>의 황정민이 그 주인공이다.
둘은 명실공히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남자배우다. 감독과 제작자는 앞다퉈 이들을 캐스팅하고, 관객들은 그 이름을 믿고 영화표를 구매한다. 두 배우의 장점은 역시나 연기력. 그리고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다. 두 배우는 어느덧 한 국사회의 특정한 남성상을 대표하는 배우가 됐다.
시대의 격랑에 휘말리는 소시민 역할을 하는데 있어 송강호를 넘어설 배우가 있을까. ‘평범하다’라는 형용사는 송강호라는 연기자를 만나 ‘시대를 대표하는’이라는 뜻으로 변한다.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하면서도 부정한 세상과 마주할 때에는 분노한다. 수많은 소시민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
8월 개봉한 <택시운전사>에서 송강호는 시국에는 큰 관심이 없는 평범한 남자이다. 홀로 외동딸을 키우는 아버지인 그는 월세라는 세속적이고 보편적인 이유로 광주 민주화 운동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송강호의 첫 ‘천만 영화’인 <괴물>이나 봉준호 감독과의 첫 만남이었던 <살인의 추억>에서도 역시나 송강호는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의형제> <택시운전사>로 송강호와 함께한 장훈 감독은 송강호의 강점에 대해 “전형적인 보편성을 넘어선, 관객 이 새롭고 재미있게 느낄 수 있는 보편성” 이라고 꼽았다.
반면 황정민은 유능하고 끈질긴 직업인 캐릭터에 최적화 되어 있다. 류승완 감독의 전작 <베테랑>과 <부당거래>에서 경찰 역으로 등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베테랑>에선 타락한 재벌 2세의 범죄를 밝혀 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부당거래>에선 검사와 조폭 사이에 끼어 살 길을 도모했다. 때로 그의 배역은 윤리적 일탈의 경계를 넘나든다. 황정민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호소력 있게 연기한다.
송강호가 주로 선량한 주연으로 활약해온 것과 달리, 황정민은 악한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곡성>에서 황정민은 영화 중반부에 접어들어서야 처음 등장한다. <달콤한 인생>에선 이병헌을 괴롭히는 비열한 조폭 역을, <아수라>에선 온갖 범죄의 배후에 자리한 시장 역을 연기했다. <군함도>의 류승완 감독은 “황정민만 있으면 뭐든 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극찬한 바 있다.
두 배우의 이미지는 다르나 이들이 연기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같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들이 연기하는 것은 하나로 고착화 된 배역이 아니라 당대 한국 영화가 필요한 얼굴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고, 그들의 연기와 그들이 선택한 작품을 믿고 볼 수 있다. ‘1억 관객 배우’들이 ‘2억 관객 배우’가 되는 일도 머지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