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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한국비료와 이병철의 10년의 고난 (11)

일장춘몽의 세계 최대의 단일 비료 공장

이병철이 꿈꿨던 비료공장은 그렇게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을 기억하는가? 자신의 것은 놓아 보아야 안다고. 진짜 자신의 것은 포기를 해보면 안다. 절로 자신에게 돌아온다. 하지만 그 반대는 어떨까? 정말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다. 품에 돌아왔다가도 이내 떠나고 만다. 사랑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다. 특히 품에 들어왔다 떠나는 것은 정말 가슴을 아프게 한다. 역시 사랑도 사업도 마찬가지다.

 

무슨 이야기일까? 이병철과 울산비료공장의 인연을 말함이요, 정치 변동이 심했던 한국에서 세계 제일을 꿈꿨던 이병철, 삼성의 운명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고? 우리의 이야기를 더 알고 나면 무슨 말인지 그제야 안다.

 

박정희 정부의 독촉에서 시작을 했지만 이병철은 그만의 독특한 기지와 일본의 인연을 활용해 거액의 차관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삼성을 위한 차관만 받은 게 아니다. 1965년 6월 한일협상이 이뤄지는 데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

 

한일협상에서 일본의 배상액은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상업차관 1억 달러였다. 그 때 일본만해도 전후 복구 과정에 있었기에 정부가 달러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일본이 한국에 배상에 나서면서 국교를 정상화한 것은 그만큼 당시 일본 입장에서 한국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병철의 자서전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당시 이병철은 일본 배상액에서 상업차관을 더 늘리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1964년 어느 날 이병철은 일본 도쿄에서 일 정부 관료들과 만나 식사를 한다. 배상액 증액을 놓고 일본 정부 관료가 반대 의견을 냈다. 일본의 사정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병철이 묻는다. “일본으로서는 한국, 인도, 파키스탄 중 그 어느 쪽이 소중하냐?” 일본 관료가 한 참을 생각하더니 답한다. “당연히 한국이다.”, 그러자 이병철은 되묻는다. “그런데 왜 인도 파키스탄보다 한국에 상업 차관을 늘려주는 것을 주저하는가.”

 

그랬다. 이병철은 일본 관료들과 만나기 전에 일본의 차관 제공 현황을 꼼꼼히 조사를 했고, 일본 관료가 꼼짝 못할 질문을 던져 차관을 적극 검토하도록 한 것이다. 사실 그 때 이병철이 일본 관료를 통해 얻어낸 사항은 상업 차관을 6억 달러가량으로 증액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독자들은 무엇인가 이상하다 생각할 것이다. 뒤에 한일협상에서 일본은 상업 차관을 1억 달러만 줬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잠시 뒤에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자.

 

삼성에게 준 일본의 상업차관은 1965년 9월 4390만 달러였다. 이병철은 자신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구축한 울산공업단지의 35만평을 사들여 1965년 12월 10일 부지 정지 작업에 착수하면서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간다. 연 33만톤, 세계 최대 규모의 공장이었다. 필요한 기계만 총 30여만 종, 중량만 18만톤에 달했다.

 

공장의 주요 시설인 암모니아 탑은 중량만 200톤에 달했다. 일본에서 제조돼 1만5000톤의 화물선을 전세 내 특별히 수송했다. 당시 한국 울산항에는 이 배를 댈 부두조차 없어 새로 만들어야 했다.

 

이병철은 이런 공장을 총 18개월만에 완공하기로 하고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특히 현장에는 자신이 아끼던 제일제당 공장장 출신을 배치시켜 감독하도록 했다.

 

한국 정부 인사를 비롯해 재계 모두가 이 공장이 정말 한국에 가능하냐고 물어왔다. 그 때마다 이병철은 빙그레 웃었다. 공정이 너무 순조로워 앞당겨질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건설 과정에서 꾀를 내 설비를 살짝 변경하는 방법으로 생산량을 최대 36만톤이 되도록 상향 조정까지 했다. 박정희도 이병철의 아이디어로 생산량이 늘어나자, “너무 좋은 일”이라며 기뻐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정말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이병철은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그날을 결코 잊을 수 없다. 1966년 9월 16일이었다.” 4.19혁명 시절부터 이병철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지 않은 재산을 정부에 헌납해야 했던 상황을 겪었다. 그런 상황에 대해서도 이병철은 자서전에서 억울함을 표시는 했지만, 이렇게 강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바로 울산비료 공장을 정부에 헌납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다른 일도 그렇지만 본래 큰 일은 아니었다.

이날 이병철은 일본 도쿄에 있었다. 울산비료공장의 공정이 빨라지면서 일본의 기계 선적을 독려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 “회장님, 일이 이상하게 커지고 있습니다. 서둘러 귀국을 하셔야겠습니다.”

 

사연인즉, 보세창고에 있던 OTSA란 약품을 시중에 정부 허가없이 매각하여 큰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본래 사건은 이미 6개월전에 발생해 삼성측은 정부에 벌금을 내고 일단락된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언론이 알게 됐는지 각 언론들이 벌떼처럼 “재벌이 밀수를 했다”고 일제히 보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박 정권의 일부 정치인들이 의도적으로 벌인 일이었다. 이병철은 자서전에서 사건 이전에 이미 정부에서 울산비료공장의 지분을 30% 내놓으라고 압박을 했었다고 고백을 한다. 그런데 이병철이 응하지 않자, 정치 공작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병철은 자서전에서 “특정 언론이 사설과 기사로 반년간을 비판했다”고 술회했다. 결국 검찰이 나서 다시 사건을 정밀하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아들과 임원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이병철도 결국 물러섰다. “모든 것을 헌납하겠다.” 1966년 9월 22일 이병철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 같이 밝힌다.

 

10여년의 세월, 가슴에 품었던 꿈이다. 자식같은 공장은 그렇게 다시 이병철의 품을 떠났다. 사실 헌납을 받은 정부가 잘 운영했으면 다행이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원가가 비싼 비료 공장 건설을 난립하면서 단가가 높아져 국제 경쟁력을 잃었다. 가격 높은 비료를 농민들이 사면서 원성도 높아졌다.

 

이병철은 이 일을 두고두고 아쉬워 한다. 특히 이 일로 삼성이 망할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자, 최고 측근들이 이병철을 배신하는 일이 벌어진다. 결국 무사히 해결됐지만 이병철은 정부와 세상인심을 새로 알겠다고 토로한다.

 

사실 어쩌면 이 같은 상황은 한일협상 과정에서 예견됐던 것인지도 모른다. 당초 일본 정부와 한국은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상업차관 1억 달러로 배상액을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눈치를 보니 일본 측이 더 올려줄 듯 보여 우리 정부는 무상지원을 더 늘리고자 욕심을 부리며 이병철에게 의견을 묻는다. 이병철은 “일본 입장에서 그냥 주는 무상 금액을 늘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상업차관을 6억 달러를 달라고 해라.” 당시 6억 달러는 1990년 60억 달러와 비견되는 금액이었다. 막 경제를 회복하는 한국은 달러가 극히 부족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자를 생각해 상업차관 증액을 포기한다. “상업차관이 6억 달러만 됐어도 한국의 경제 재건은 더욱 빨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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