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동 족발거리는 장충체육관에서 동대문운동장 방향으로 300m 정도에 걸쳐 족발음식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서울시 중구 장충단로 일대를 일컫는 이 거리는 예전에 장충체육관에서 경기가 있는 날이면 관람객과 선수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지금도 장충동 족발거리에는 족발을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는 식도락가들로 붐비고 있다.
장충동은 한국전쟁 때 북쪽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서울에 터를 잡고 살았던 곳 중의 하나다. 당시 실향민들은 생계를 위해 1950년대 후반 현재의 장충동 족발골목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족발을 파는 식당을 열었다. 이때 두 개의 족발집이 문을 열면서 장충동 족발집의 역사는 시작됐다. 그 두 족발집은 1년 차이로 문을 열었고, 지금까지 족발거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맨 처음 문을 연 식당에서 처음부터 족발을 메뉴에 올린 것은 아니다. 빈대떡과 만두를 주 메뉴로 식사와 술을 팔았다. 그러다 손님들이 든든하면서도 싸게 먹을 수 있는 술 안주를 원하게 되면서 주인 아주머니는 어릴 때 고향인 평안도에서 먹던 족발을 안주에 올리게 됐던 것이다. 옛날에 평안도에서는 음식이 잘 상하지 않는 추운 겨울이면 돼지를 잡아 통째로 걸어놓고 먹고 싶을 때 썰어서 먹었다. 꼬들꼬들한 고기를 요리해서 먹을 때면 씹히는 질감도 좋았다.
족발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자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지나면서 주변에 족발집이 생기기 시작했고 지금의 족발골목을 이루게 됐다. 지금도 큰길과 좁은 골목에 십여 집이 옹기종기 모여 옛 맛을 지켜가고 있다. 이 골목의 족발집들은 적어도 30~40년간 대를 이어 장사를 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장충동 족발’이 유명해진 까닭은 맞은편에 있던 장충체육관 덕분이다. 우리나라의 체육 경기가 대부분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던 시절, 가족 단위 시민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족발집으로 향했다.
족발집마다 족발의 맛이 약간씩 차이가 난다. 족발을 삶는 데 들어가는 재료와 삶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재료와 비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골목의 원조격인 ‘뚱뚱이 할머니’ 집의 주방에는 족발 삶는 솥이 50년째 끊고 있다. 솥의 양념물이 쫄아들면 물을 더 붓기만 할 뿐이라고 하니 50년 묵은 역사적인 양념물인 셈이다. 돼지 다리가 솥에 들어가 2시간 반 정도 삶아지면 탐스럽고 윤기 나는 족발로 탄생한다. 이때 솥에 들어가는 양념은 간장, 마늘, 양파, 생강뿐으로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이 식재료 하나 하나가 대단한 공이 들어간 것들이다. 간장은 물론 장을 담그기 위한 메주도 모두 직접 만들어 수년간 숙성해서 사용하며, 소금은 남해의 청정 해역인 신안에서 공수해 온 천일염만 사용한다.
큰 길과 좁은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식당에 들어가 족발을 주문하면 테이블에 밑반찬부터 차려진다. 집집마다 차이는 있지만 밑반찬으로 부침개와 상추, 깻잎, 입안을 시원하게 가셔 줄 동치미, 김치 등이 차려진다. 부침개를 뜯어 먹으면서 기다리다 보면 접시 위로 수북하게 쌓인 족발이 등장한다. 족발을 먹을 때는 소스로 새우젓을 곁들이는데, 새우젓은 맛을 더해줄 뿐만 아니라 소화도 도와주는 찰떡궁합 양념이기도 하다. 새우젓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효소에 돼지고기의 주성분인 단백질을 분해하는 성분이 있기 때문에 새우젓이 천연 소화제의 역할을 한다.
신비한 활력소로 피부 노화 방지하는 음식
출출한 저녁이면 생각나는 족발은 예로부터 각별한 먹거리로 여겨져 왔으며, 맛과 영양가는 물로 조리방법도 다양하다. 영양식, 간식, 보신 음식으로서도 나무랄 데 없는 음식으로 맛을 아는 사람들은 돼지고기 중에서 제일로 치는 부분이 바로 족발이다. 예로부터 족발에는 신비한 활력소가 있다고 전해진다. 마을에서 돼지를 잡아 잔치를 벌인 뒤, 뼈를 흐트려 놓은 걸 보면 아무리 푹 고아도 족뼈에만은 유난히 개미가 새까맣게 달라붙는다고 한다. 또한 겨울철 날씨가 제아무리 춥더라도 돼지 족에 동상이 걸렸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족발은 살코기와는 다르게 씹히는 맛이 독특한 미식가들의 단골 메뉴이다. 이는 족발의 껍질과 관절내의 연골의 쫄깃쫄깃한 부분이 모두 젤라틴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풍부한 동물성 젤라틴 성분 덕분에 돼지 족을 삶은 뽀얀 물을 식히면 투명한 묵이 된다. 이것을 썰어서 내어놓는 음식을 ‘족편’이라 하여 예전에 궁중에서도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족발은 젤라틴 성분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피부미용과 노화방지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음식이다. 또 임산부의 모유 분비를 촉진하므로 수유를 해야 하는 여성에게도 좋은 음식이다. 뿐만 아니라, 돼지고기에는 메타오닌이라는 아미노산이 함유되어 있어 간을 강하게 하므로 알코올 해독과 숙취 예방에도 효과가 크다.
돼지고기를 가장 풍부하고 다양하게 소비하고 있는 중국에서 특히 족발은 생일상에 장수를 비는 국수와 함께 빠짐없이 차려놓고 건강을 비는 축하음식이다. 이 풍습은 육중한 몸체를 지탱하고 있는 조그마한 다리의 막강한 힘을 얻고자 하는 유강주술의 일부로 여겨진다. 또한 유럽이나 남미에서도 특히 대접을 받고 있는 세계적인 기호식품으로 독일의 족발요리인 슈바인학센(Schweins Haxen)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주소 서울시 중구 장충단로 176
교통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3번 출구→장충동 족발골목(도보 5분 거리)
기자 윤진희
사진자료 한식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