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现代集团与创始人郑周永7】被焚烧的梦想


       年轻的郑周永利用筹集到的资金开的“阿道服务”汽车维修公司,一开业生意就出奇地好。买下汽车修配厂之后,维修汽车的订单就纷至沓来,主要是因为合作伙伴李乙学作为汽车维修师盛有名气。郑周永对未来充满了希望。关掉“京一商会”之后,暗淡无比的事业之路上,仿佛有了一道希冀的光。

 

在新罗酒店举行的“小马(PONY)”新车发布会,郑周永留影。(1985年)


       开业第20天,订单实在太多,郑周永只能从早到晚都在厂里工作,但他似乎看到了成功的到来,内心充满了对未来的希望与期待,都感觉不到时间流逝。然后有一天凌晨,不幸没有任何预兆地降临了。

       一个工人工作到深夜,在值班室睡了一觉。凌晨睡醒想要用稀料点火开灯,迷糊间火种点燃手里拿着的稀料桶。“啊!烫!”被点燃的稀料桶掉在地上,里面的稀料哗啦啦地流了出来,一下子引起了大火。
       无情的大火扑向整个厂房。“啊!这可怎么办啊!”刚好也在工厂里的郑周永和工人们赶紧泼水,火势却越来越大。“啊~啊!”被火熏得黑黑的郑周永,望着被焚烧的厂房,呆住了。
       过了几个小时之后,火终于灭了,但整个工厂都被烧毁了,已成为一片废墟。郑周永的梦想也被烧毁了。买这个工厂的钱才还了一半,现在又要赔偿被烧掉的汽车。“老天爷也太无情了。”泪水在郑周永的眼眶里滴溜溜地打转。

 

1953年,郑周永一家都住在首尔市奖忠洞的时候。推动韩国经济与产业发展的所有现代家族都在里面,是一张具有非凡意义的照片。


       先不说买下工厂的钱,当时一辆汽车的价格比一栋普通的房子还贵,所以赔偿烧掉的几辆汽车的费用,无疑是天文数字。汽车如此珍贵,怎么赔偿好呢?郑周永眼前一时发黑,但他还是不能放弃。无论如何都要偿还这些钱。这时,郑周永想起了赞助工厂资金的吴润根。
“吴先生,请再给我一次机会吧。如果我现在就放弃,就连之前向您贷款的钱也没法偿还了。请再给我融一次资,让我重新开工吧。”
       郑周永找到吴润根,跪下来苦苦哀求。吴润根黑着脸,想了一会儿,从房间里的保险柜中拿出了现金。史料上没有记载具体的金额,但当时,吴润根拿出的是比上一次更多的资金。
       成功筹措到资金的郑周永,本打算在原来的地方重新将工厂修复起来,可市政当局不同意在发生过火灾的地方再建工厂,所以郑周永最后在新设洞的空地上建设了地下工厂。东大门警局的日本人监狱狱长威胁郑周永说,“如果建地下工厂,我立马就把你抓进监狱”,但郑周永接连半个月每天访问狱长的家,尽力说服他,好容易才平息下来。
       “即使有挫折、磨练,也不会彻底失败。”这是郑周永留下的名言。很多韩国人至今也喜欢这句名言。郑周永的工厂再一次开业了,订单如往常般纷至沓来,生意越做越火。后来,撰写郑周永评传《永远的挑战家》的媒体人许永燮,这样分析了郑周永汽车维修工厂的成功秘诀:
“当时,大部分的汽车维修工厂对顾客暗下黑手,谋取不正当的利益。例如,就算是不需要几天的小故障,也说成是大故障,延长维修的时间来骗取更高的维修费。郑周永的‘阿道服务’工厂,运营方式与之正相反。就算是需要好几天的大故障,也会尽早维修好。他们的收费自然要高一些。”

 

在现代汽车蔚山市工厂附近出口装船。郑周永会长年轻的时候经营的“阿道服务”汽车维修公司,为现代汽车的诞生奠定了基础。

 

       郑周永的战略取得了大成功。当时,首尔的汽车数量有限,除了旧日的王室贵族、日本总督府的高官以及做大生意的事业家,没有人养得起车。那些达官显贵们,对修车的要求也是一个字:快。不管维修费是多少,只要能快点维修就好。郑周永亲自拿着工具,与工人们一起熬夜工作。他的父母与兄弟也从乡下搬到首尔,帮着他做生意。郑周永一下子赚下了能够偿还所有借款与赔偿金的大钱,他补上高利息,偿还了所有的债款。
       但老天爷给的磨练怎么会如此简单呢!郑周永还没有正式开始做大事业,磨练他的挫折也还没有正式开始。
       1941年12月,日本偷袭美国夏威夷珍珠港,发动了太平洋战争。全世界都陷入了战火中,韩国土地上的年轻事业家也迎来了新的考验。


笔者 淸露 图片摘自 现代集团

 

 

现代集团与创始人郑周永(7)

 

 타버린

 

젊은 정주영이 여러 사람의 도움을 차린 아도서비스 자동차공업사는 대성공이었다. 계약금을 지불하고 공장을 인수하자 마자 일감이 쏟아졌다. 동업자인 이을학이 워낙 자동차 기술자로 명망이 높았다. 정주영은 희망에 부풀었다. 경일상회 쌀 가게 간판을 내리면서 주춤했던 사업자의 길이 다시 풀려가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20일가량이 지났다. 정주영은 쏟아지는 일감에, 부풀어 오는 희망에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그런 어느 날 새벽이었다. 불행이 찾아왔다. 갑자기, 정말 아무런 생각도 못했던 순간 불행은 그러게 찾아왔다.

정주영이  늦도록 공장에서 일을 하고 숙직실에서 자고 일어나 불을 키려고 시너통을 집어 순간, 갑자기 화로의 불이 시너통으로 옮겨 붙었다. “앗 뜨거워!” 하며 시너통을 놓치는 순간, 다시 불은 바닥에 쏟아지는 시너와 함께 온 공장으로 퍼졌다.

시너통에서 시작한 화마는 순식간에 전체 공장을 잡아 삼켰다. “아 이걸 어째” 빠르게 밖으로 피한 정주영과 공장 사람들은 급히 인근에서 물을 구해 뿌렸지만 불길은 갈수록 커질 뿐이었다. “아~아!” 검게 그을린 정주영 입에서 탄식만 나왔다.

그로부터 몇시간 불은 겨우 꺼졌으나 공장 안은 이미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한 뒤였다. 정주영의 희망도 그렇게 잿빛이 됐다. 공장도 공장이었지만, 수리를 의뢰 받은 차들도 몽땅 타버린 것은 정말 치명적인 손실이었다. “정말 하늘도 무심하시지” 절로 나오는 탄식에 정주영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공장을 여느라 빌린 돈도 돈이지만, 당시 자동차 값은 웬만한 집 한 채보다 비쌌다. 그만큼 차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정주영이 모든 것을 변상해야 했다. 눈 앞이 깜깜해졌지만 정주영은 포기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포기를 했다는 돈을 갚을 길이 없었다. 이 때 정주영의 머리에 떠오른 인물이 쌀가게를 하면서 알게 돼 공장 인수 자금을 빌렸던 오윤근이었다.

“어르신 다시 한번 기회를 주세요. 지금 이렇게 주저 앉아 포기를 한다면 이미 빌린 돈마저 갚을 길이 없습니다. 다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자금을 융통해주세요.”

오윤근을 찾아간 정주영은 이렇게 무릎을 꿇고 통사정을 했다. 굳은 얼굴의 오윤근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방의 금고에서 다시 돈을 내왔다. 당시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는 사료에 나오지 않는다. 다만 처음 빌려준 것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었다고만 알려져 있다.

다시 자금을 마련한 정주영은 공장을 다시 일으키려 했다. 일단 까다로운 공장 운영 허가 조건을 피하기 위해 동대문 신설동의 뒷골목 공터에 무허가 공장을 차렸다. 동대문 경찰서 일본인 보안계장이 “무허가 공장을 열면 잡아넣겠다”고 으름장을 놨지만 정주영이 보름동안 새벽마다 계장의 집을 찾아가 설득을 해 겨우 무마시켰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정주영이 남긴 명언이다. 지금도 많은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말이다. 화재 사고를 딛고 공장이 다시 문을 열자, 일감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정주영의 뒷골목 공장은 구멍가게 수준을 벗어났다. 훗날 ‘영원한 도전자’라는 제목의 정주영 평전을 쓴 언론인 허영섭씨는 그의 성공 비결을 이렇게 분석했다.

“당시 정비업소들은 대부분 약속이나 손님들에게 은근히 애를 먹여 가며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손쉽게 고칠 수 있는 고장인 데도 고치기 어려운 척 수리 기간을 일부러 길게 잡아가며 수리비를 높이 받아가는 식이었다. 이에 비해 정주영의 아도서비스 공장은 반대 방식으로 운영이 됐다. 수리가 오래 걸릴 고장도 전심전력으로 최대한 빨리 고쳐 주는 전략이었다. 그 대신 수리비를 더 비싸게 받는 식이었다.”

정주영의 방식은 대성공이었다. 당시 왕실 귀족이나 큰 사업가들이 아니면 자동차를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이들은 수리비를 좀 더 주더라도 빨리 고쳐주는 곳을 택했다. 정주영은 직접 공구를 들고 직원들과 함께 밤을 지새며 일을 했다. 이미 시골에서 부모님과 형제들이 서울로 상경해 정주영의 일을 돕고 있었다. 정주영은 그렇게 순식간에 돈을 벌어 빌린 돈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그 것도 후한 이자까지 보태서 갚았다.

그러나 어찌 시련이 이리 단순 하랴!. 아직 정주영이 본격적인 큰 사업을 하지 않았듯 정주영을 단련시킬 시련도 아직 본격적인 시작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때는 1941년 12월 바야흐로 일본 제국주의가 마지막 발호를 하고 있었다. 일본은 그해 12월 7일 미국의 진주만을 전격적으로 공격하면서 태평양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전세계가 전쟁으로 출렁거리면서 작고 가난한 한국 땅의 어린 사업가에게도 새로운 시련이 찾아오고 있었다.


사회

더보기

문화

더보기
중 드라마 막장형 늘어나며 사회 속에 여성혐오 싹 키워
동영상 홍수의 시대다. 현실을 보다 극적인 현실로 묘사하는 과거와 달리 최근 드라마는 극적인 비현실이 특징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비현실을 통해 현실의 불만을 대리 만족시켜주는 것이다. 마약이 주는 환상과 다를 게 없다. 아쉽게도 이 쾌감은 역시 극적이어서, 쉽게 중독되고 만다. 더욱 문제는 이 비현실을 현실로 착각하는 착란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이 같은 드라마의 ‘비현실’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비현실적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묘사는 현실 중국사회에 여성 혐오증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미니 드라마를 본 후, 우리 엄마는 주변에 악독한 며느리가 있다고 확신했다.” 최근 한 중국 매체는 이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비현실 드라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보도에 따르면, 허난성 난양시에 사는 리 씨는 어머니가 **《○○ 시어머니, 모두를 놀라게 하다》**라는 미니 드라마를 보고 나서 태도가 변했다고 밝혔다. 해당 드라마는 강인한 시어머니가 악독한 며느리와 맞서 싸우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이를 본 후 어머니는 “그동안 며느리가 보였던 정상적인 태도는 다 연기였고, 악독한 며느리 주변에는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