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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现代集团与创始人郑周永4】命运的第四次离家出走,终于改变了一生从农的宿命


       少年郑周永从第一次到第二次、到第三次,每次都被父亲抓回家。郑周永深感绝望,并决定“从今开始好好做农活。”上次离家的时候,他偷偷拿走了家里卖牛的钱,在首尔都花光了,空手回到家里,他实在没有脸面再坚持自己的想法。事到如今,只好接受从农的宿命。
郑周永终于放弃了,但命运之神却没有放过他。郑周永竭尽全力种田,但庄稼的收成总是不好。更严重的是,偶尔丰收之年,付完租地费之后,也就不剩什么了。“庄稼丰收,收成这么多,我们家人却还是吃不上饭,这是怎么回事呢?这样的情况不断反复,到底怎么样才能改变这样的情况啊。”郑周永左思右想,好几个晚上都没合眼。

现代集团名誉主席郑周永正在用耕田机插秧。小时候的郑周永为了摆脱种田的宿命,离家出走了好几次。据说,取得大成功,成为大企业家的郑周永,经常把“想耕田种地啊”这句话挂在嘴上。

 


       “想要改变命运,只能离开这个地方,找出新的生路。”郑周永苦思冥想,还是觉得“离开乡村到城市”,是唯一能够摆脱一生从农的宿命的方法。郑周永决定再试一次。受到前三次失败的启发,这次他准备得更加充分。“吴仁铺”是村里富豪家的儿子,也是郑周永小学同学,这次帮了大忙。当时,吴仁铺正好要去首尔学习,顺便载了郑周永,一同前往。郑周永就这样,再一次离开了家。那是1933年,他18岁。
       到了首尔,郑周永发现首尔的生活并非想象中的那么好打拼。在一个陌生的城市,郑周永感到无比孤独。忙碌的城市人不像淳朴的乡下人,没有人会管年幼的流浪者。所谓“吃一垫,长一智”,已经来过城市三次的郑周永,很快就找到了新的机遇。“啊,在首尔很难找工作啊。那去仁川吧。仁川有港口,一定很好找工作。”郑周永匆匆离开汉城奔向仁川。果然,郑周永的猜测是正确的。他一到仁川,就找到了码头的工作。在仁川码头的一个月里,郑周永拼死拼活地干活,但也只能勉强糊口,根本就没法攒钱,实在看不到一丝希望。于是,干了整整一个月以后,郑周永就徒步去了汉城。到了首尔,郑周永找到了一所大学(如今的高丽大学)建设的工地,开始做建造石造建筑的活。在那里,青少年郑周永流着汗水搬石头、木材。后来,成为大企业会长的郑周永,每次谈到高丽大学,都笑着说:“那个学校的建筑,都是用我双手搬的石头建成的呢。”

 

80年代初期,郑周永会长主导了瑞山围海造田工程,在西海浅水湾一带设置防波堤后,形成了人工淡水湖和田地。瑞山围海造田工程代表着郑周永会长永不放弃的挑战精神。


       时隔几十年,韩国现代集团董事长郑周永,回想当时的情景,谈到了他通过那段经历得到的两个人生教训:一是“臭虫的教训”;二是“青蛙的教训”。他在工地睡觉,常有臭虫在晚上爬过来吸血。由于当时洗漱设备落后,加上工地上的活非常累,打完工的工人常常不洗漱就睡觉,所以他们的床边挤满了闻着汗水味赶来的臭虫,令人难以入睡。为了躲臭虫,郑周永干脆就睡在桌子上,把桌子的四条腿放在搪瓷盆里,又在盆里放上水,不让臭虫爬上来。郑周永开心地睡了,但没过多久,就被臭虫吸血的痛感惊醒。吓了一跳的郑周永起身看了看桌子的四条腿,但盆里的水还在,臭虫没法爬上来。
       “这些臭虫到底怎么到桌子上的呢?”仔细环顾周围,他惊奇地发现这些臭虫不是从地上爬上来,而是从天花板上掉下来的。臭虫从墙上爬到天花板,然后对着人的身体掉下来吸血。“啊,这样小小的虫子,为了生存也会施谋用计啊。”他当时想,一只臭虫为了达到目的,能够如此费心费力,作为万物之灵的人,只要尽了最大的努力,还有什么事情办不到呢?
       “青蛙的教训”与“臭虫的教训”相似。有一天,郑周永看到一只青蛙掉进了工地的土坑里。那只青蛙正在试着跳出土坑。青蛙一蹦一跳,不断地跳,但土坑太深,实在没法跳出坑。

 

经过除盐工程之后,于1987年第一次在瑞山人工田地种稻。如今,瑞山人工田地已成为收获量高达50万石以上的“粮食之宝库”。


       “试到这个时候,可以放弃了吧……”郑周永看到青蛙跳了十次还是失败的情形,心里不禁觉得,青蛙愚钝,不懂得放弃。青蛙突然停下来了,坐在那里顺气。郑周永看了一会儿,心想着青蛙终于学会放弃了,正准备离开。突然,青蛙又跳了一次,这次还是失败了。但青蛙利用刚才休息的时候积蓄的力量,接连跳了好几次,前脚挂到土坑的边缘,终于跳出了土坑。“啊,原来对于青蛙而言,放弃等同于死亡啊。”郑周永想到了他自己的情况,他就像是那只青蛙,如果停下挑战的脚步,他的人生就没有了希望。对于郑周永而言,挑战就是生存。这就是“青蛙的教训”。尘土飞扬的工地诞下了韩国现代产业发展史上“永远的挑战家”。


笔者 淸露 图片摘自 现代集团

 

 

现代集团与创始人郑周永(4)

 

운명의 네번째 가출, 드디어 농사꾼 집안의 숙명을 바꾸다

 

잇따른 가출 실패, 특히 마지막 가출의 실패는 어린 정주영에게는 절망이었다. ‘이제 농사나 지어야지.’ 어린 정주영의 생각이었다. 집안에 목돈이 필요해 소를 팔아 장만한 돈까지 몰래 훔쳐 달아났던 탓에 집안 사람 볼 면목도 없었다. 이제는 농사꾼 집안 장손의 숙명을 받아 들여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운명이 그냥 두지 않았다. 정주영은 모든 노력을 기울여 농사를 지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드물게 풍년이 나도 소작을 떼고 나면 정작 남는 것이 없었다. ‘어떻게 풍년이 나도 가족이 먹을 것조차 부족하단 말인가? 어떻게 같은 되풀이 해서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정주영은 이런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운명을 바꾸려면, 이 곳을 벗어나야 한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역시 정주영에게 가난한 농사꾼 집안의 숙명을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하나, 바로 가출을 해 도시로 가는 것이었다. 정주영은 다시 한번 운명을 시험해보기로 한다. 이미 3번의 실패가 있었던 만큼, 이번에는 더욱 철저히 준비를 했다. 마침 마을 유지 집안 아들이었던 소학교 동창 친구가 나서 도와줬다. 그의 이름은 오인보(吳仁輔)였다. 서울로 공부를 하러 가면서 친구인 정주영을 데려가 주기로 한 것이다. 정주영은 그렇게 기차에 몸을 실었다. 때는 1933년 그의 나이 18세였다.

서울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아는 이 한 명 없는 정말 낯선 타향이었다. 도회지 서울은 시골과 달리 누구도 나이 어린 방랑자의 배고픔을 신경 쓰지 않았다. 급함이 지혜를 낳는다고, 어린 정주영에게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 서울은 일자리 찾기도 힘들구나. 그럼 항구가 있어 부두 일을 찾기 쉬운 인천으로 가자’ 역시 정주영의 생각대로 인천에서는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하루 밥벌이나 겨우 될 뿐 돈을 모으기에 너무도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한달여의 고생 끝에 정주영은 다시 서울행을 택한다. 서울에서 정주영은 지금의 고려대학교 건축을 짓는 막노동일을 한다. 지금도 고려대학교에 유명한 커다란 석조 건물을 짓는 일이었다. 공사장에서 어린 정주영은 그 돌을 하나씩 날라야 했다. 훗날 성공한 정주영은 고대 이야기만 나오면 웃으며 “그 거 내가 돌을 날라 지은 건물이야” 했다고 한다.

훗날 정주영은 이때 가지 교훈을 얻었다고 토론한다. 하나는 ‘빈대의 교훈’, 다른 하나는 청개구리의 교훈’이다. 빈대의 교훈은 막노동 현장에서 정주영이 잠자리의 불편함 때문에 깨달은 것이었다. 막노동을 하는 이들의 침식처는 빈대가 득실거려 잠을 자기 힘들었다. 정주영은 하루 꾀를 내 큰 밥상을 침대로 이용하는 꾀를 냈다. 특히 밥상 네 다리에는 양재기를 대고 물을 채워 빈대가 상 다리를 타고 오르지 못하도록 했다. 정주영은 기분 좋게 잠들었으나 조금 뒤 역시 빈대에 물려 잠을 깨야 했다. 깜짝 놀란 정주영이 살펴보니 상다리에는 여전히 양재기 물이 있어 빈대가 오르지 못했다. ‘어떻게 빈대가 상위에 올라왔을까?’ 자세히 살펴보니 빈대들은 천정에서 툭툭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빈대 역시 꾀를 내 벽을 타고 올라 천정에서 정주영이 자는 이불 위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아 이런 미물도 살기 위해 꾀를 내는구나.” 정주영은 그때 사람은 최소한 빈대보다는 더 살기 위해 꾀를 내고 노력해야 한다고 깨달았다고 .

청개구리 교훈 역시 비슷하다. 어느 날 하루 정주영은 공사판 웅덩이에 빠진 청개구리가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본다. 폴짝 폴짝 뛰지만 개구리는 언제나 다시 웅덩이로 빠졌다. ‘이만하면 포기할 만도 한데….’ 한 참을 보던 정주영이 생각했다. 그게 청개구리가 10번쯤 웅덩이를 벗어나려 뛰었을 때였다. 정말 이제 포기했나 보다 싶을 정도로 갑자기 청개구리가 폴짝 뛰기를 멈췄다. 정주영도 그리 생각하고 자리 뜨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청개구리가 다시 한번 폴짝 뛰었다. 아쉽게도 역시나 실패였다. 그런데 한동안 축적했던 힘을 모아 청개구리가 연달아 폴짝 뛰기 시작했다. 결국 앞발이 웅덩이 가장자리에 닿았고, 버둥거리던 청개구리는 마침내 웅덩이를 벗어난다. ‘아 청개구리에게 포기는 죽음이었구나.’ 정주영은 생각했다. 자신의 처지가 청개구리 같다고 여겼다. 정주영에게 도전은 살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바로 청개구리의 교훈이었다. 소위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의 기초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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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드라마 막장형 늘어나며 사회 속에 여성혐오 싹 키워
동영상 홍수의 시대다. 현실을 보다 극적인 현실로 묘사하는 과거와 달리 최근 드라마는 극적인 비현실이 특징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비현실을 통해 현실의 불만을 대리 만족시켜주는 것이다. 마약이 주는 환상과 다를 게 없다. 아쉽게도 이 쾌감은 역시 극적이어서, 쉽게 중독되고 만다. 더욱 문제는 이 비현실을 현실로 착각하는 착란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이 같은 드라마의 ‘비현실’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비현실적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묘사는 현실 중국사회에 여성 혐오증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미니 드라마를 본 후, 우리 엄마는 주변에 악독한 며느리가 있다고 확신했다.” 최근 한 중국 매체는 이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비현실 드라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보도에 따르면, 허난성 난양시에 사는 리 씨는 어머니가 **《○○ 시어머니, 모두를 놀라게 하다》**라는 미니 드라마를 보고 나서 태도가 변했다고 밝혔다. 해당 드라마는 강인한 시어머니가 악독한 며느리와 맞서 싸우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이를 본 후 어머니는 “그동안 며느리가 보였던 정상적인 태도는 다 연기였고, 악독한 며느리 주변에는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