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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现代集团与创始人郑周永1】带着五百多头牛会见金正日,那轰动世界的故事开始


       “哇~啊!”大众的欢呼声在场内此起彼伏。记者们的聚光灯纷纷亮起,排着长队的50辆大货车启动了引擎。“来,出发!”引擎一声“嘶吼”,大货车慢慢启动了。“哞~哞。”每辆大货车承载了十头大牛。众人的欢呼声越大,受惊的牛发出的叫声也越大。

       这里是板门店,是南北朝鲜军事分界线附近唯一的中立区。如果是平日,板门店一定笼罩着紧张的气氛,但这一日,满载牛群的大货车从韩国阵营出发,开往朝鲜阵营;朝鲜阵营的军人们满手拿着香烟、酒等礼物,迎接大货车的司机们。 

在临津阁的活动场地上,郑周永会长拉着鼻绳牵牛,正在摆姿势。

 


       这是电影里的一个场面吗?不是。比电影更加戏剧化的这一日,是1998年6月16日的上午。历史上,将这次的访问称为“牛群外交”。访问的第二天,也就是6月17日上午,韩国主流媒体之一的《京乡新闻》如此评价:“白手起家,创立大企业的一位事业家,做出了他一生一次的‘大演出’。现代集团名誉主席郑周永亲自策划并执行的‘牛群外交’,是一种让人感动的行为艺术。”

       现代集团的创始人和名誉主席郑周永。这是我们这一期连载故事的主人公。“牛群外交”发生在一个小地方,却在全世界引起了轰动,连续好几周,几乎每日都能看到相关报道。一个私访人员带着牛群通过陆路访问朝鲜的场面,不管是现在还是90年代,都难以想象。

       1994年7月,朝鲜最高领导人金日成去世之后,韩国与朝鲜之间的官方交流被中断,横穿朝鲜半岛的非武装地带上偶尔能听见枪击声。因此,1998年的“牛群外交”是一件轰动全世界的事件。韩媒和外媒都聚集到板门店,采访与观看的人流量简直到了摩肩接踵的程度。 

现代集团名誉主席郑周永。

 


       “牛群外交”事件,尽显了现代集团名誉主席郑周永在韩国现代史上的地位。郑周永,不提这个名字,就无法解说韩国产业的现代化发展。他是韩国最受尊崇的企业家。韩国有不少著名企业家,但没有人像郑周永一样,出生于贫困的农村,从“无”创造出“有”。

       因此,郑周永留下的神话般的故事比其他企业家更多,创造了一般人难以想象的不平凡业绩。1988年的韩国首尔奥运会成功申办,是他的作品;1992年,他创立了“统一国民党”,作为总统候选人参加了总统选举。郑周永的第六个儿子,韩国国会议员的现代重工业会长郑梦准,如此评价自己的父亲:“我的父亲,是为了建设更美好的社会,与传统观念斗争的人物。”虽然郑周永在政治上没有成功,但除了政治之外,他参与的所有领域,都比过去好多了。郑周永确实是一个“成功的金手”。“你试过吗?”这句话是现代集团名誉主席郑周永的口头语。他又是一个热爱文学的企业家,平时很喜欢读诗、写诗。

       郑周永还是一个象征着南北分裂痛苦的代表人物。他出生于朝鲜江原道通川松田面的峨山里。是的,他出生在朝鲜。所以,带着牛群访问朝鲜的事件,对他而言,具有非常重要的意义。因为这相当于他衣锦还乡。 

承载现代集团名誉主席郑周永与500头大牛的大货车,越过统一大桥,开往板门店。图片摘自:联合通讯社

 


       “我走了。”1998年6月6日上午10点,戴着一顶毡帽的郑周永会长出了家门,踏上了访问朝鲜的旅程。这次的访问是共为7天的日程。当日,郑周永送给朝鲜的牛共有500头;后来,他第二次访问朝鲜时,又送了501头牛。总共1001头牛。在韩国,“1000”意为“全世界”的“全”,也就是“完整”的意思;“1001”则意为“一个(事件或事物)完整之后新的开始”。这就是郑周永会长给那批牛群赋予的意义。

       从此,现代集团主动与朝鲜进行大规模经济合作,也受到了不少政治性压迫。郑周永曾被提名为诺贝尔和平奖的候选人,但最终的获奖者是韩国总统金大中。郑周永虽没得奖,但诸多专家都表示,郑周永才是朝韩经济合作的牵头人。其实,急剧的产业发展,让韩国的经济与政治微妙的不同步,进一步引发了韩国社会的一些矛盾。这正是郑周永会长冒着巨大的风险,参加总统选举的理由。他想改变这样的韩国社会。郑周永,他的精彩故事从江原道一个贫苦的农民家庭开始。


笔者 淸露 图片摘自 现代集团

 

 

현대그룹과 정주영 창업자(1)

 

  방북으로 전세계를 놀래킨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그 시작 

 

“와!~아” 군중들의 환호가 순식간에 장내를 뒤덮는다. 기자들의 스포트라이트가 연속으로 터지자, 줄 지어서 서있던 50대의 대형 트럭들이 “드르렁” 시동을 건다. “자 출발!” 호령에 차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음메~메” 트럭 마다 10마리의 소들이 실려 있다. 군중의 환호가 커지고, 놀란 소들의 울음 소리도 커진다.

장소는 판문점, 남북한 군사분계선 위 마련된 유일한 양측의 만남의 장소다. 평소 같으면 긴장이 감돌았을 이 곳, 소를 가득 실은 차들이 남측 진영에서 북측으로 이동을 한다. 북측에서는 담배와 술 등 선물을 가득 들고 나와 운전자들에게 나눠주며 맞는다.

영화의  장면일까? 아니다. 영화보다 더 극적이었던 지난 1998년 6월 16일 오전의 모습이다. 역사는 이 방문을 ‘소 떼 방북’이라고 부른다. 다음날인 17일 오전 한국의 주요 매체 가운데 하나인 경향신문에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맨주먹으로 대기업을 일으킨 실향민 사업가가 일생일대의 ‘퍼포먼스’를 벌였다. 정주영 현대건설 명예회장의 소몰이 방북은 본인이 직접 기획^연출하고 출연까지 한 하나의 감동적인 행위예술이었다.”

정주영 현대건설 명예회장. 이번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소 떼 방북 사건은 1998년 6월 16일 오전 10시 발생했지만, 관련 기사를 사건 이후 두고두고 며칠간 쏟아졌다. 민간인이 육로를 통해 소 떼를 잔뜩 이끌고 북으로 가는 모습은 지금도 상상하기 힘들지만, 당시는 더욱 상상이 되지 않던 장면이었다.

지난 1994년 7월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일성의 사망 이후 남북간 공식대화는 끊어진 겉돌고 있었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비무장 지대에는 간헐적인 총성이 남북간 유일한 접촉이던 시점이었다. 이날 이런 경이적인 사건에 한국 언론은 물론 외신들까지 남북을 가르는 비무장지대 판문점에 몰려 들어 장사진을 이뤘을 정도다.

  방북 사건은 한국사회에 정주영 현대건설 명예회장이 어떤 영향을 미친 인물인지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정주영, 사실 한국 산업 현대화를 그의 이름을 빼고는 하기 힘들다.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업가다. 한국에 적지 않은 사업가가 있지만, 정주영처럼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무()에서 유()를 일군 인물은 없다.

그래서 다른 어떤 기업가보다 신화 같은 이야기를 많이 남겼고, 일반 사람들이 감히 상상도 못할 기적 같은 일들을 성공시켰다. 1988년 한국의 서울올림픽 유치도 바로 그의 작품이다. 1992년에는 통일국민당을 창당하고 스스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그의 아들로 정치인이자, 현대중공업 회장인 정몽준은 “부친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기존 관념과 싸우셨다”고 평했다.

아쉽게도 정치에선 성공하지 못했지만, 한국에서 정치를 빼곤 뭐든 그가 손을 댄 것은 과거보다 나아졌다. 말 그대로 성공의 마이다스 손이었다. “임자 해보긴 해봤어?”라는 말은 정주영 현대건설 명예회장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는 또 가장 문학을 사랑한 기업가로도 꼽힌다. 본인 역시 시 쓰기와 읽기를 즐겼다.

정주영은 남북 분단의 아픔을 대변하는 아이콘이기도 했다. 그는 고향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마을이다. 남북으로 치면, 북한이었다. 소 떼를 몰고 방북한 사건은 정주영 개인적으로 대단한 의미가 있었다. 고향으로의 금의환향이었던 것이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1998년 6월 16일 오전 10시 중절모를 쓴 정주영 현대건설 명예회장은 이렇게 인사를 하고 방북 길에 올랐다. 6박7일간의 일정이었다. 이날 북에 보내진 소는 500마리, 이후 다시 501마리 소가 보내졌다. 총 1001마리, 한국에서는 1000은 온누리의 온의 의미다. 완성의 의미였다. 1001은 하나를 완성하고 또 다른 시작을 한다는 의미였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여기에도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현대그룹은 북한과 대대적인 경제협력에 직접 나섰고, 그로 인해 정치적 압박을 받기도 한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 덕에 노벨평화상 후보로 언급됐지만 정작 상은 당대 한국 대통령이던 김대중 에게 돌아간다. 상복은 없었지만, 남북 화해무드의 가장 큰 공은 여전히 그의 몫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사실 이 같은 정치와 경제의 묘한 어긋남이 급속한 산업 개발 시대를 지나온 한국 사회 부조리의 근원이었다. 바로 정주영 현대건설 명예회장이 대통령에까지 출마하면서 평생을 걸고 바꿔보고자 했던 것이다.

정주영, 그의 도전적 인생은 궁핍했던 한국 강원도 산골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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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드라마 막장형 늘어나며 사회 속에 여성혐오 싹 키워
동영상 홍수의 시대다. 현실을 보다 극적인 현실로 묘사하는 과거와 달리 최근 드라마는 극적인 비현실이 특징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비현실을 통해 현실의 불만을 대리 만족시켜주는 것이다. 마약이 주는 환상과 다를 게 없다. 아쉽게도 이 쾌감은 역시 극적이어서, 쉽게 중독되고 만다. 더욱 문제는 이 비현실을 현실로 착각하는 착란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이 같은 드라마의 ‘비현실’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비현실적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묘사는 현실 중국사회에 여성 혐오증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미니 드라마를 본 후, 우리 엄마는 주변에 악독한 며느리가 있다고 확신했다.” 최근 한 중국 매체는 이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비현실 드라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보도에 따르면, 허난성 난양시에 사는 리 씨는 어머니가 **《○○ 시어머니, 모두를 놀라게 하다》**라는 미니 드라마를 보고 나서 태도가 변했다고 밝혔다. 해당 드라마는 강인한 시어머니가 악독한 며느리와 맞서 싸우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이를 본 후 어머니는 “그동안 며느리가 보였던 정상적인 태도는 다 연기였고, 악독한 며느리 주변에는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