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그대로 겨울에 먹는 김치인 동치미는 기나 긴 겨울밤에 없어서는 안될 최고의 야식이다. 살얼음 동동 떠있는 시원한 동치미는 겨울철 입맛 없을 때 아삭아삭한 밥반찬으로 손색이 없고, 짭쪼롬한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아서 먹는 동치미국수는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이다.
동치미는 겨울 건강식품인 무를 사용해 만드는 우리나라 대표 음식이다. 겨울 김장철에 자그마하고 예쁜 무를 소금에 굴려서 파, 마늘, 생강, 고추, 청각 등의 양념과 함께 땅에 묻은 항아리에 넣고 소금물을 부어 익힌 시원한 김치로, 무를 썰어 그 국물과 같이 먹는 대표적인 김장김치이다.
서양에는 ‘토마토가 빨갛게 익을 무렵이면 의사의 얼굴이 파랗게 변해버린다’는 속담이 있다. 토마토를 많이 먹으면 의사도 필요 없을 정도로 건강이 좋아진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인데 동양에도 비슷한 속설이 있다. ‘늦가을 시장에 무가 나올 때가 되면 의원들이 문을 닫는다’고 했다. 서양의 토마토와 마찬가지로 무의 효능 때문에 의사들이 아예 문을 닫고 휴업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겨울철에 먹는 무가 그만큼 좋다는 것인데 그저 속설로 전해지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명나라 때 의학서인 <본초강목>에서도 ‘가장 몸에 이로운 채소가 무’라고 했다.
겨울철 저장 음식으로 무를 먹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는 듯하다. 우리 조상들 역시 동치미를 담가 겨울 음식으로 삼았다. 물기 많은 무를 골라서 껍질을 그대로 둔 채 깨끗하게 씻어 소금과 함께 항아리에 넣어두면 무에 소금이 배면서 무의 수용성 성분이 빠져나와 청량음료처럼 톡 쏘는 맛을 낸다.
고려 중엽의 시인 이규보는 무를 장에다 넣어 먹으면 여름철에 먹기 좋고, 소금물에 절이면 겨울 내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동치미는 최소한 고려시대 이전부터 겨울철 음식으로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동치미는 글자 그대로 ‘겨울에 먹는 김치’라는 뜻이다. 순수 우리말을 한자로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한자에서 비롯된 우리말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 세시풍속을 적은 <동국세시기> 11월조에 작은 무로 김치를 담그는데 이것을 동침(冬沈)이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겨울 동(冬)에 김치를 나타내는 침(沈) 자를 써서 동침으로 표기했다가 동치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천연 소화제
동치미의 맛은 재료 사용의 변화, 기후와 보관장소에 따라, 담그는 소금 농도에 차이가 있다. 보통 동치미국물의 소금 농도는 4~6% 정도가 많지만 보관장소가 그늘이고 찬 곳이면 3~4%로 하는 것이 좋다. 겨울철에 땅에 묻은 동치미는 한 달 이상 되어야 제 맛이 나고 실내에 두면 열흘 정도 지나면 익는다. 파, 마늘, 생강 등을 무 사이에 끼워 두어 맛을 내기도 하며, 소금물에 삭힌 고추를 띄우거나 배, 유자, 청각, 갓 등을 넣어 향을 돋우기도 한다. 동치미국물이 짜면 물을 더 넣고 설탕을 조금 넣어 간을 맞추기도 하는데 국물이 너무 싱거우면 무가 물러지고 맛이 변하기 쉽다. 하지만 무짠지와 같이 너무 짜면 동치미 고유의 맛이 없어 즐겨 먹지 못한다.
김치의 일종인 동치미는 전통 발효식품으로, 식이섬유가 풍부해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 단 나트륨의 함유가 조금 높은 편에 속해 많은 섭취는 가급적 피해야 한다. 특히 동치미는 그 자체가 소화제라고 할 수 있다. 무에는 디아스타아제라는 효소가 있는데 소금에 절이면 동치미 국물에 녹아 나와 소화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속이 더부룩할 때 동치미는 소화기능을 북돋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다시 없는 음료이며 좋은 반찬이다. 게다가 시원한 탄산 맛과 함께 무기질, 비타민, 유기산 등이 있어 천연 이온 음료 역할까지 했으니 겨울을 대표하는 김치가 될 만했다. 요즘은 동치미를 계절에 관계없이 먹을 수 있지만 뭐니 뭐니해도 동치미는 추운 겨울날 살얼음 동동 띄운 것이 최고가 아닐까 싶다.
동치미와 역할이 비슷한 김치로 나박김치가 있다. 나박김치와 동치미는 모두 무를 이용해 만든 물김치다. 동치미는 무만으로 만들 수도 있고 오래오래 두고 먹는 저장용 김치다. 그에 비해 나박김치는 무와 쪽파, 사과와 배를 넣어서 국물을 다소 달게 만들고, 바로 먹는다는 점이 동치미와 다르다. 또한 나박김치는 국물에 고춧가루를 풀어 색이 붉고 좀 더 칼칼한 맛을 낸다. 식품역사학자들은 동치미를 나박김치의 원류로 보기도 한다.
동치미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음식이지만, 이 동치미를 기반으로 해 만들어 먹는 요리도 많다. 강원도 고성 지방에 가면 흔히 먹는 육수로 맛을 낸 막국수가 아닌 동치미 국물로 만든 막국수가 있다. 동치미 막국수는 금강산 지역의 사찰에서 유래된 음식이라도 알려져 있다. 고기를 고아 만든 육수를 사용할 수 없기에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대신 사용하면서 탄생한 음식이라고 한다. 냉면 또한 동치미와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평안도에서는 동치미국에 냉면을 말아 먹기도 했는데 조선의 26대 왕인 고종은 동치미국에 배를 썰어 넣고 만든 평양식 냉면을 좋아했다고 한다.
집에서 동치미 맛있게 만드는 법
요리 재료
무 10개, 마늘 40g, 배 1개, 갓 700g, 천일염, 대파 1개, 생강 20g, 사과 1개, 쪽파 1줌, 물
만드는 법
1 무는 잘고 연하며 매끈한 것으로 골라 깨끗이 씻어 놓는다.
2 비닐 봉지나 쟁판에 천일염을 넣고 무를 돌돌 굴려준다.
3 소금에 돌돌 굴린 무는 6시간 정도 절인다.
4 파, 마늘, 생강, 배, 사과를 준비해 깨끗이 씻어 놓는다. 배와 사과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사용하기 때문에 냄비나 큰 그릇에 물을 붓고 식초 1~2방울 떨어뜨린 후 5~10분 정도 담궜다가 씻어준다.
5 배와 사과는 4등분으로 썰어주고 파, 마늘, 생강은 면주머니에 넣어준다.
6 절인 무와 배, 사과 그리고 면주머니를 김치통에 넣어준다.
7 그 위에 갓, 쪽파를 넣고 소금물을 넣어준다. 그리고 재료들이 동동 뜨지 않도록 접시나 돌을 얹어준다. 냉장고에 넣어서 2~4주 숙성시킨다.
8 무가 다 익으면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국물을 곁들여 낸다.
서울에서 찾은 동치미국수 맛있는 집
메밀헌
강릉 맛집으로 유명한 삼교리 동치미 막국수를 본점으로 한 메밀음식 전문점이다. 대표 메뉴인 메밀동치미막국수는 메밀면의 건강하고 담백한 맛과 가을무로 1년간 숙성시켜 만든 개운한 동치미 육수가 일품이다. 사각거리는 살얼음이 올려져서 나오는 동치미 국물을 메밀면에 그대로 부은 후 취향에 따라 겨자와 식초, 달걀노른자를 섞어 먹는 것이 특징이다. 비빔 소스와 시원한 동치미 육수를 떠서 함께 비벼 먹는 비빔막국수도 추운 겨울 입맛을 돋워주는 별미이다. 막국수와 함께 수육, 문어숙회, 메밀만두, 메밀전병 등 사이드메뉴도 함께 주문하면 든든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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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윤진희 자료제공 한식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