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季是散步的好季节。碧空如洗,凉风骤起,身心愉悦,不管走到哪里,都能享受秋季的浪漫,但想要特别的徒步旅行的话,非联合国教科文组织选择的城堡莫属。来吧!漫步于被列入世界遗产名录的南汉山城与水原山城,尽享古色苍然的古城之韵味,感受徒步旅行的乐趣吧。
笔者 尹真姬 提供图片 文化财厅
韩国多山少平原,国土的三分之二是山地和丘陵。因此,自古以来,为了增强防御效果,利用这天然的地理环境,建造了许多山城。三国时代,在三雄顶立的时局下,具有军事防御功能的山城成为了当时的主要建筑形式。山城主要用来防御,有时建于边境以防外敌入侵。建城技术特别的大山城,南汉山城在现存的众多古老山城中,南汉山城是地理位置最为重要的山城之一,被联合国教科文组织列为世界遗产名录。南汉山城与北汉山城一样,都是朝鲜王朝时期作为防御首都的军事山城,位于距离首尔东南部24km,城南市东北部的南汉山上,横跨京畿道广州市、河南市以及水原市三个城市。
南汉山城西边的风景。茂密的松树森林,使南汉山城的四季景色怡人。
2014年,联合国教科文组织决定将南汉山城列入世界遗产名录。由此,韩国的世界遗产增至11处。有记录显示,南汉山城是新罗文武王修建的昼长城,利用地形的建筑比较特别,不仅备有军事设施,还兼有1千多户老百姓生活的行政设施,是世界少有的山岳军事行政城市。南汉山城又是古代皇帝的行宫,城内有宗祠与社稷,至今还保留着每个时代不同的建城技术。由于南汉山城是具有重要意义的历史遗址,到处都可以看到历史景点。其中,最有代表性的是守御将台,是丙子胡乱时期仁祖亲自指挥军队的地方。守御将台指的是指挥官为了指挥军队登上的在高处建造的建筑物,是南汉山城唯一留下来的将台,也是最为华丽雄伟的建筑物,被列为京畿道第1号物质文化遗产。
金黄色的灯光突出了水原华城雄伟壮观的夜景。
说到南汉山城,必不能错过“丙子胡乱”。朝鲜王朝第16代大王仁祖(1623~1649)亲自指挥寿城郡并与清太宗12万大军对峙,坚持47天抗战。经历47天的抗战后,无法忍受严寒与饥饿的仁祖,在三田渡屈辱地投降。
南汉山城拥有苍郁的松树林。1万2千多棵80~100多年的松树,茂密的森林,让南汉山城的四季景色怡人。在日本殖民统治时期,日军盲目的砍伐,使这松树林渐渐荒废,村民们实在看不下去了,主动设立“禁林(禁止砍伐森林)组织”,积极保护松树林,才保住了如今的美丽。漫步于松树林中,可以回味一下祖先对每一棵松树的爱惜与保护。
L 京畿道广州市南汉山城面南汉山城路 731 T
T +82-31-8008-5164 京畿道南汉山城世界遗产中心
兼显正祖的孝心与野心的“城堡之花”,水原华城
今年是水原华城载入世界文化遗产的第20年。当时,联合国教科文组织评价水原华城为“平衡地结合东西方军事设施理论的独特的城堡,具有很高的防御效果”。
水原华城以传统的筑城方式为基础,使用了大小固定的石头与砖石。
水原华城是由朝鲜王朝第22代大王正祖筑建。正祖把他父亲思悼世子(卷入党派之争,被关在粮食柜子中,悲惨地死去死去)的陵墓迁至当时朝鲜最大的风水宝地,水原华山,并把华山附近的村子迁到八达山之下,建起了如今的水原华城。正祖的孝心不仅是修筑水原华城的根本原因,也让水原华城成为了政治构想的中心地,它的修筑蕴涵着为根除基于派别斗争的派系政治,实现强有力的王道政治的远大抱负,修筑它也是为了把它作为首都南边的军事要塞。
守御将台(京畿道第1号物质文化遗产)是南汉山城唯一留下来的将台,也是最为华丽雄伟的建筑物。
筑城之后,正祖于1801年刊行了纪录华城工程过程的日志《华城城役仪轨》10卷9册,为韩国古代建筑史留下了鲜明又独特的足迹。《华城城役仪轨》中不仅记载着筑城计划、有关制度与法令,还纪录每天的工程进展、投入到建筑物中的物资种类和数量、几千名工匠的全部名单以及物资的单价、支付给工匠的公费等内容,留下了建筑等城廓建筑史的宝贵资料,被认为具有很大的历史记录价值。
周长为5.7km的水原华城,是在中国、日本等地不多见的平山城:西边的城郭依八达山而建,是一个典型的山城;东面地形为丘陵与平地,是平地筑城的城堡形式。因此,水原华城最适合徒步环游。
因具有很高的防御效果,被称为“城堡之花”的水原华城,至今还保留着众多古老的建筑物。东西南北四个方向都设有城门,北门称长安门,南门称八达门,东门称苍龙门,西门称华西门,还有两个水门、三个空心墩、两个将台、两个弩台、五座铺楼、五座炮楼、四座角楼、五个暗门、一个烽墩、四座敌台、九座外城墙、两条阴沟等各种设施。其中,东北角楼的“防华随柳亭(第1709号国宝)”是一定不能错过的景点。建造“防华随柳亭”,不仅仅是为了满足监视水原周边的军事需要,也是为了享受周边的景色,展现了朝鲜王朝后期最有代表性的建筑艺术。
L 京畿道水原市八达区正祖路825
T +82-031-290-3600 水原文化财团
유네스코가 선택한 아름다운 성
남한산성과 수원화성
가을은 걷기 좋은 계절이다. 높고 푸른 하늘과 청량한 가을바람에 몸과 마음이 가볍기만 하다. 이 멋진 계절에는 어디를 걸어도 좋지만, 좀 더 특별한 걷기 여행을 생각한다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품은 걷기 여행길을 권한다. 전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남한산성과 수원화성을 둘러보며 옛 성의 정취와 걷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보자.
글 = 윤진희
우리나라 곳곳에는 산성이 많다. 눈을 어디로 돌려도 높고 낮은 산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으니 타고난 지형지세를 이용하여 방어에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을 살린 때문이다. 산성의 역사는 기록으로도 대개 삼국시대부터 시작된다. 삼국시대에는 삼국이 서로 영토의 확보를 위해서 끊임없이 성을 공략하곤 했으므로 그 어느 때보다 산성을 구축하는 일이 중요했다. 산성은 대개 수도 방위를 위해 세웠으며, 수도 외곽이나 변방에서 외침을 미리 막아 내려고 쌓기도 했다.
축성술이 돋보이는 초대형 산성, 남한산성
지금까지 남아 있는 많은 산성 중 남한산성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유네스코로부터 그 가치를 당당히 인정받은 곳이다.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 한양을 지키던 조선시대의 산성이다.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24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행정구역으로는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에 걸쳐있다.
남한산성은 2014년 한국에서는 11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신라 문무왕 때 쌓아올린 성으로, 지형을 이용한 축성술이 돋보이는 초대형 산성이다. 군사시설과 더불어 1천 여 호의 주민이 함께 생활한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산악 군사 행정도시라고 할 수 있다. 종묘와 사직이 있는 행궁으로 지금까지 시기별로 성곽 쌓는 방법이 그대로 남아 있다.
둘레 11.76km에 이르는 남한산성 탐방 코스는 짧게 1시간에서 길게는 산성 전체를 한 바퀴 도는 3시간 20분 코스까지 5개가 있다. 아이들도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는 편안한 길이라 어떤 코스를 택해도 무방하며, 서울 남산까지 시원하게 펼쳐지는 전망이 압권이다. 그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남한산성의 하이라이트를 감상할 수 있는 1코스이다. 북문으로 올라 서문과 수어장대, 영춘정과 남문을 거쳐 산성로터리로 내려오는 코스로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남한산성에는 역사적인 명소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병자호란 때 인조가 직접 군사를 지휘해 청나라 군대에 맞선 수어장대가 대표적이다. 수어장대는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의 누각으로 남한산성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장대이다. 남한산성 안에 남아 있는 건축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로 선정되기도 했다.
남한산성을 얘기하면서 병자호란을 빼놓을 수는 없다. 조선왕조 16대 왕인 인조(재위 1623~1649년)가 서울로 쳐들어오는 청나라 군사들을 피해서 47일간 머물렀던 곳이 남한산성이다. 이곳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인조는 결국 삼전도까지 내려가 청나라에게 항복을 하게 되며 치욕스러운 역사를 남겼다.
남한산성은 특히 울창한 소나무 숲이 일품이다. 80~100년생 소나무 1만 200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며 사계절 내내 운치있는 풍경을 자아낸다. 이 소나무들은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무분별한 벌목으로 일대가 황폐해지자 마을 사람들이 금림(벌목을 금하다) 조합을 만들어 심고 보호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천천히 걸으며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깃든 조상들의 숨은 노력을 되새겨 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져도 좋으리라.
W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로 731 T +82-31-8008-5164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정조의 효심과 야망이 담긴 ‘성곽의 꽃’, 수원화성
올해는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유네스코는 당시 수원화성을 “동서양 군사시설 이론을 잘 배합한 독특한 성으로 방어적 기능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불운하게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의 화산으로 옮기고 화산 부근에 있던 관아마을을 수원의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이처럼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된 수원화성은 동시에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곳이기도 하다. 정조의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정조는 축성 후 1801년에 화성이 건설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를 10권 9책으로 간행해 건축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이 책에는 축성계획, 제도, 법식뿐 아니라 동원된 인력의 인적사항, 재료의 출처 및 용도, 예산 및 임금계산, 시공기계, 재료가공법, 공사일지 등이 기록되어 역어 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둘레 5.7km에 이르는 수원화성은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산성 형태이다. 서쪽 성곽은 팔달산에 걸쳐 있어 산성처럼 지어졌고 동쪽은 낮은 언덕과 평지를 감싸며 쌓아 올렸다. 성곽길은 대부분 완만하며 걷기에 수월하다. 수원화성의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오후에 방문하는 게 좋다. 해가 있을 때는 성곽길을 천천히 걸어보고, 해가 저물면 고풍스러운 성벽과 도심의 현란한 불빛이 어우러진 야경을 감상해보길 권한다.
방어가능이 뛰어나 ‘성곽의 꽃’이라 불리는 수원화성에는 지금도 수많은 옛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동서남북에 놓인 창룡문, 화서문, 팔달문, 장안문을 비롯해 장대, 포(鋪)루, 공심돈, 수문, 암문 등 다양한 시설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중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보물 제1709호)’은 빠트리지 말고 살펴봐야 할 곳이다. 각루는 원래 주위를 감시하려고 세운 시설이지만 이곳은 주변 경관과 뛰어난 조화를 이루며 조선후기 건축미를 대표한다.
W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 T +82-031-290-3600 수원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