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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의 시작 – 호암 이병철(15)

청년의 실패야말로 그 자신의 성공의 척도다

 

 도로 제자리! 한참을 노력해 나갔다고 생각했으나 돌아보니 제자리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주저 앉는다. 다시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힘 쓰면 뭐하나?’ 하는 게 일반인들의 생각이다.

 

 

 특히 이병철의 실패는 당대 조선 최고의 부자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만큼 충격이 남달랐다는 의미다.

 

 

 

 쌀 도정사업과 함께 운송사업을 하면서 돈을 모으고, 은행 자금을 이용해 29살의 젊은 나이에 200만 석 대지주가 됐던 이병철이었다. 이병철이 밤마다 요정에서 술과 연회로 시간을 보내도 전문 관리인들이 알아서 이병철의 은행계좌에 쓴 돈보다 몇 배 많은 돈을 채워 넣었다.

 

 

 그런 재산이 일장춘몽이라더니, 하루 아침에 모두 날아간 것이다. 이런 실패를 경험한 보통 사람이라면 그 좌절에서 벗어나기 힘든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병철은 달랐다.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나는 항상 청년의 실패를 흥미롭게 지켜본다. 청년의 실패야말로 그 자신의 성공의 척도다. 그는 실패를 어떻게 생각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거기에 대처했는가, 낙담했는가, 물러섰는가, 아니면 더욱 용기를 북돋아 전진했는가, 이것으로 그의 생애는 결정되는 것이다.”

 

 

 

 

 

 사실 이 말은 이병철의 말이 아니다. 이병철은 자서전에서 이 말은 비스마르크 시대의 프로이센 군의 원수, 몰트케가 남긴 실패에 대한 명언이라고 적고 있다.

 

 

 몰트케의 말에 따르면 이병철은 성공이 예정된 청년이었다. 실패를 철저히 분석했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다. 실패로 인해 그의 계획은 더욱 단단해진다.

 

 

 먼저 이병철은 사업 실패에 대해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역시 이병철을 당시의 교훈을 자서전에 자세히 썼다. 이병철의 교훈은 요즘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에게도 정확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충격 속에서도 그래도 다행스러웠던 것은, 그 엄청난 부채를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정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때 비로소 경영의 어려운 의미를 깨닫게 되었고, 이 실패는 그 후의 사업경영에 다시 없는 교훈이 되었다.

 

 

사업은 반드시 시기와 정세에 맞춰야 한다. 이것부터 우선 인식하고 나서 사업을 운영할 때는 첫째 국내외 정세의 변동을 적확하게 통찰해야 하며, 둘째 무모한 과욕을 버리고 자기 능력과 그 한계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고, 셋째 요행을 바라는 투기는 절대로 피해야 하며, 넷째 직관력의 연마를 중시하는 한편, 2, 3선의 대비책을 미리 강구함으로써, 대세가 기울어 이미 실패라고 판단이 서면 깨끗이 미련을 청산하고 차선의 길을 택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던 것이다.”

 

 

이병철은 모든 것을 바로 다시 시작했다.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을 토대로 새로운 사업을 궁리했다. 먼저 같이 사업을 했던 이가 서울로 떠나면서 마지막 주연을 베풀어 준다. 그리고 그 길로 마산을 떠나 사업을 찾는 여행길에 오른다. 국내 정세와 국제 정세라는 게 당대처럼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 지방에 앉아서 파악되는 게 아니었다. 이병철은 부산에서 시작하여 서울, 평양, 신의주, 원산, 흥남 등 북쪽 여러 도시를 두루 돌아보고, 이어 중국에 들어간다. 중국에서는 장춘, 선양 등 만주 일대를 돌아본 뒤 베이징, 칭다오, 상하이까지 간다.

 

 

이병철은 여행을 통해 대륙 경제 규모에 놀란다. “마산에서의 경험으로는 고액 어음이라는 게 고작 20만 원 정도였다. 그러나 대륙에서는 2백만~4백만 원의 어음이 예사로 교환되었다. 그리고 자본금만 하더라도 1백만 원이 적은 편이라는 것이다.” 이병철이 자서전에 기록한 내용이다.

 

 

그랬다. 당시 만주는 물론 베이징, 칭다오의 주요 상권은 모두 일본인들이 좌우하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소규모 상점을 운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병철 눈에는 중국인들의 소규모 상가도 대단하게 비쳤다. 이병철은 얼핏 보아 점포의 규모가 대수롭지 않은 중국 상인들의 점포마저도 하루 수백 대 트럭이 오가는 규모였다고 밝혔다.

 

 

 

 

삼성그룹의 모체 삼성상회. (1938. 3. 1) 호암재단   
 

 

 이병철이 주목한 것은 건어물과 청과물이었다. 꼭 필요한 먹거리였지만, 당시 조선에는 이 건어물과 청과물을 전문으로 수출, 수입하는 상인이 없었다.

 

 

 이병철은 그 길로 조선에 돌아와 경북 대구시 서문시장에 250평 남짓한 점포를 사서 무역상점을 연다. 이름은 삼성상회’, 바로 오늘날 삼성의 모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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