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공간의 변화다. 공간이 있어 시간은 시작된다. 공간이 시간이며 시간이 공간이다. 한 공간의 변화, 공간 한 부분의 변화가 바로 시간이며 일이다. 일의 단위다. 일은 하나의 변화이다. 변화가 시간이니, 결국 일은 시간이다. 시간은 모두 세 종류가 있다. 하늘의 시간 땅의 시간 사람의 시간이다. 하늘의 시간은 항상 그렇다. 해는 항상 하루 만에 떠서 지고 달은 항상 한 달에 차고 기운다. 땅의 시간은 반대다. 항상 그렇지 않다. 하루살이는 하루를 일생으로 살고 일년생 풀은 열두 달을 일생으로 산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이는 50세를 못넘기고 어떤 이는 90세를 누린다. 같은 나무라도 어느 나무는 수십년을 살고 어느 나무는 수백년을 산다. 땅의 모든 것의 한 생은 제각기지만, 각기 누군가가 정하여준 듯 그렇게 각자의 일생을 산다. 운명이라고 부른다. 한 나무는 한 나무의 운명을 따르고, 한 사슴은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다. 다만 이 땅의 모든 시간 이 땅 모든 객체의 운명은 하늘의 시간에 하늘의 운명에 수렴한다. 하늘의 따라 결국 하늘의 시간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하늘의 시간을 항상 그렇다고 해 항(恒)이라고 하고 땅의 시간을
블루, 레드, 화이트 1994년 나온 프랑스 영화다. 자유(블루), 박애(레드), 평등(화이트)을 주제로 했다는 뭔가 철학적인 수수께끼 같은 영화였다. 사실 영화 내용을 보면서 왜 자유이고, 박애이며, 평등이 주제였는지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오래돼 내용도 잊었지만, 사색적인 도전을 던진 탓에 영화의 편린들이 아주 오래 남았다. 무엇보다 세 영화 중 백미는 첫 개봉된 블루다 싶다. 영화 전반적인 색감과 음악적 감성, 누가보다도 예술적이다 싶은 몽환이 서려있다. 특히 이지적인 줄리엣 비노슈의 고급 진 매력이 풀풀 넘친다. 동양의 우아함의 서구적 표현이다. 세 영화는 독특한 인생을 경험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각기의 주제를 풀어간다. 그러면서도 영화 속 인물들은 한 시대를 살아 한 영화 속에서 모두가 동시에 등장하기도 한다. 더욱 재미있는 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병을 버리는 노인’이다. 영화를 보다 그냥 스쳐 지나가기 딱 좋은 아주 짧은 순간에 등장한다. 안 그래도 작은데 허리가 굽어 더욱 작아 보이는 노인이 어렵게 손을 뻗어 병을 분리 수거통에 버린다. 정확히 버리기 위해 허리 굽은 노인은 한동안 애를 쓴다. 겨우 병이 버려지는 순간 장면은 바뀐다.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