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나라의 전통 복장에서 유래한 치파오(旗袍)는 세계 각국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복식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데요, 5월 5일 중국 안휘성(安徽省) 호주시(豪州市)에서 2018 년 국제 치파오 축제가 개최됐습니다. 세계 각국과 중국 각지에서 온 여성들이 치파오를 입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는데요, 그 모습을 多维新闻에서 전합니다. http://news.dwnews.com/china/photo/2018-05-07/60056291.html#p=1
중국인을 보고 핏줄에서 돈 냄새가 난다고 한다. 좋은 뜻도 있고, 나쁜 뜻도 있다. 그런데 사실 중국어 한자 가족과 식구에는 본래 경제적 의미가 크다는 사실은 놀랍다. © jenn_azraimages, 출처 Unsplash아이가 '당신은 나의 태양'(You are my sunshine)이란 노래를 좋아한다. "당신의 나의 햇볕, 나의 유일한 햇볕. .."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 노래를 들으면 사랑하는 연인, 아내가 생각났겠지만 이젠 아이 얼굴이 떠오른다. 햇빛 쏟아지는 지붕 아래 잔디 위에서 아이를 안고 딩구는 모습만큼 정겨운 정경이 있을까? 가뭄에 콩 나듯 가끔 아이와 외출을 하지만 그때마다 이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하고 바라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말 그대로 아이는 나의 유일한 햇볕이다. 아내와 아이, 가족이란 게 그렇다. 생각만 해도 절로 사람을 포근하게 만든다. 내게 있어 집이란 별다른 게 아니다. 가족이 있는 곳이 바로 집이다. 한 집에 사는 족(族)이 바로 가족이다. 그러고 보니 가족이란 게 참 묘하다. 혈연관계와 비혈연 관계의 묘한 경계에서 둘을 이어준다. 최근 2대의 가족사를 보면, 어머니와 아버지의 가족에서 내가 나왔고, 나와 아내가 가
5월 1일은 국제 노동자의 날로 중국에서는 노동절로 불리며 법정 공휴일로 지정돼있습니다. 5월 1일 노동절을 맞이한 베이징은 각지에서 온 여행객, 현지의 시민들로 북적였는데요, 그 인산인해의 광경을 凤凰网에서 전해드립니다. http://news.ifeng.com/a/20180430/57995456_0.shtml#p=1
민은 복수인가? 단수인가? 개인주의인가? 전체주의인가? © suju, 출처 Pixabay1900년 대 초 일본은 아시아를 대표해 서구 문물을 받아들였다. 특히 서구의 책을 번역하면서 다양한 새로운 개념들을 중국과 우리나라 등 한자 문화권으로 들여온다. 경제(經濟), 사회(社會), 자유(自由), 연애(戀愛) 같은 단어가 그때 생겼다. 연애란 단어가 없으면 연애를 못할까?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그랬다. 단어가 없으면 그런 행동도 없는 것이다. 돌이켜 당대의 동양 사회를 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결혼은 부모가 정해주는 이와 했다. 운이 좋아 서로 사랑하게 되면 좋은 것이고, 서로 사랑을 하지 않아도 남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첩을 들이면 됐기 때문이다. 소위 정실부인은 집안과 집안끼리 하는 것이고, 첩실은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와 하는 것이었던 셈이다. 그런 사회에서 무슨 연애가 있을까? 어찌 보면 당시 일본인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자유연애를 꿈도 꾸지 못했을지 모른다. 물론 연애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기 전에 연(戀)과 애(愛)라는 단어는 쓰였다. 연은 기생과 노는 좀 더 육감(?) 적인 단어였고 애는 애국(愛國)처럼 좀 더 숭고(?) 한
출처 : 웨이보微博 우리나라에 파워블로거, 개인방송 BJ, 유튜버 등이 있다면 중국에는 왕홍网红이 있다고 합니다. 유명 왕홍은 중국에서 연예인 그 이상의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하는데요. 저장浙江성에는 쌍둥이 왕홍과 그 부모님까지, 온 가족이 전부 왕홍이라고 합니다! 이 가족이 벌어들이는 수입만 해도 연간 약 1천만 위안(한화 약 16억 원)이라고 하는데요. 과연 중국 네티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함께살펴보겠습니다! - 일이 가치 있어도 적정한 수입은 아닐 수 있어. 모든 사회 여론의 경향에는 문제가 있지. 타오바오 생방송으로 연수입이 천만 가량인 게 정말 의사나 과학자들처럼 죽도록 피곤하게 지내는 것보다 가치가 있을까, 웃기고도 탄식이 절로나온다! - 쭉 궁금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생방송을 본단 말이야? 내가 한번 생방송 중이던 방송에 글 남겨봤는데, 별로였던 BJ가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다시는 보고 싶지않았어ㅠ - 무슨 내용이 나올 때마다 돈을 버는 것 같은데, 내가 하는 건 돈이안돼..ㅠ -난 BJ 될 수 없어... 영원히 될 수 없어... 못생겼고, 말하는 것도 듣기거북해... 유명 왕홍들
요즘 베이징의 공기가 많이 좋아졌다는 소식이 종종 보입니다. 어제였던 5월 2일 베이징에 비가 조금 내렸었는데 비온 뒤 공기가 좋아 야경과 어우러져 맑은 풍경을 자아냈습니다. 둬웨이에서 베이징올림픽공원의 야경을담았습니다. 글=김상태 http://news.dwnews.com/china/photo/2018-05-02/60055560.html#p=3 출처 : 둬웨이多维 출처 : 둬웨이多维 출처 : 둬웨이 多维
백성 민은 노동계층이었다. 다스림의 대상이었지, 다스림의 주체가 아니었다. © Couleur, 출처 Pixabay 우리 동양의 민주주의는 애초부터 철인정치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철인은 스스로 나기도 하지만, 백성이 믿고 따를 때 만들어진다. 그런 믿음을 쌓아가는 게 우리 동양에서 '덕치'요, '선정'이었다. 이런 점에서 동양의 민주는 서양의 ‘democracy’와 차이가 있다. democracy를 ‘민주주의(民主主義)’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두 단어 어근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영어의 ‘democracy’는 민중을 뜻하는 ‘demos’와 지배를 뜻하는 ‘kratos’가 결합된 단어다. 즉 대중, 다수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현대적 의미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폈듯 동양의 ‘민주’는 그렇지 않다. 옛 중국에서 ‘민주’는 ‘민의 주인’, 즉 군주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동양의 역사에서 백성 민은 스스로 군주를 저버리는 게 유일한 대안이었다. 산속에서 숨어 살거나, 산 속에서 뭉쳐 도적이 될 뿐이었다. 앞서 보았듯 백성 민은 노동자를 의미했다. 노동하지 않는 민은 더이상 민이 아니었다. 화적, 중국에서는 流氓liúmáng이라 불렸다. 결국 동양
시력을 잃은 노예, 백성 민은 노동이 무기였다. 점차 민은 직업을 가진 노동력을 의미하게 됐고, 귀족들은 민의 주인 됨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자각하게 됐다. 그렇게 민은 조금씩 역사의 굴곡을 기어 나왔다. © CoolPubilcDomains, 출처OGQ 학자들은 ‘민’이 백성이란 의미를 갖게 된 것을 주(周) 나라 때로 보고 있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그 의미가 확고해졌다는 게 학자들의 견해다. 주나라 이전의 풍속을 노래한 시경 소아(小雅)의 ‘어떤 풀이 시들지 않느냐(何草不黃)’라는 시에 "부역 간 장부들만 불쌍하네, 그들만 홀로 백성(民)이 아니란 말인가 (哀我征夫, 獨爲匪民:애아정부, 독위비민)"라고 노래했다. 즉 부역 간 장부가 ‘민’의 대접을 못 받고 있다고 한탄한 것이다. 노예가 아니라, 이제 대접을 받는 백성이 된 것이다. 정말 시력을 잃은 노예에서 상상도 못하던 변화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민의 의미는 아직 아니다. 이때만 해도 지금 흔히 쓰는 '민주'民主라는 말은 그 의미가 달랐다. 춘추전국시대 민주는 민이 주인됨이 아니라, 민의 주인 즉 군주를 의미했다. 주나라 이전 왕조 역사를 다룬 상서(尙書)에서 ‘민주’ 란 단어가 군주란 뜻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