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 복수인가? 단수인가? 개인주의인가? 전체주의인가?

1900년 대 초 일본은 아시아를 대표해 서구 문물을 받아들였다. 특히 서구의 책을 번역하면서 다양한 새로운 개념들을 중국과 우리나라 등 한자 문화권으로 들여온다. 경제(經濟), 사회(社會), 자유(自由), 연애(戀愛) 같은 단어가 그때 생겼다.
연애란 단어가 없으면 연애를 못할까?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그랬다. 단어가 없으면 그런 행동도 없는 것이다. 돌이켜 당대의 동양 사회를 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결혼은 부모가 정해주는 이와 했다. 운이 좋아 서로 사랑하게 되면 좋은 것이고, 서로 사랑을 하지 않아도 남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첩을 들이면 됐기 때문이다. 소위 정실부인은 집안과 집안끼리 하는 것이고, 첩실은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와 하는 것이었던 셈이다.
그런 사회에서 무슨 연애가 있을까? 어찌 보면 당시 일본인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자유연애를 꿈도 꾸지 못했을지 모른다. 물론 연애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기 전에 연(戀)과 애(愛)라는 단어는 쓰였다. 연은 기생과 노는 좀 더 육감(?) 적인 단어였고 애는 애국(愛國)처럼 좀 더 숭고(?) 한 단어였다. 둘을 엮어 만든 게 좀 더 숭고한 사랑의 감정이다. 덕분에 기생과 사랑도 한 단계 반열이 높아졌다고 할까?
경제만 해도 그렇다. 동양에서 상인은 사회적 지위가 낮았다. 이를 단번에 높여준 것이 경제라는 단어다. 일본인들이 경제라는 단어를 만들고 나서야 경제인은 상인과 달리 고상한 선비가 해야 하는 일이 된 것이다.
이야기가 많이 벗어났다. 다시 민이다. 민이란 개념이 복수인지, 단수인지 하는 게 일본 지식인들도 번역을 하면서 헷갈렸다. 그래서 출현한 단어가 민권(民權; People’s Right)이란 단어다. 일본 번역사 초기 인권과 참정권을 구분하지 못해 나온 단어다. 결국 일본 초기 지식인들이 만든 참정권, 민권이라는 개념이 다시 영어로 번역되면서 People’s Right으로 쓰이게 됐다고 한다.
노예에서 민권을 지닌 시민으로, 동양에서 백성 민은 참 슬픈 역사를 지녔다. '민주'는 피눈물로 일궈낸 역사의 결실이다. 역시 피눈물로 지켜나갈 우리의 결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