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화가 났다고 군을 일으키지 않고, 장군은 적이 밉다고 전투를 일으키지 않는다.” “主不可以怒而興師, 將不可以慍而致戰” (주불가이노이흥사, 장불가이온이치전) 손자의 조언이다. 전쟁에 임하는 주인과 장군의 태도를 잘 짚었다. 뜻은 간단하다. “왕이 화가 났다고 군을 일으키면 안 되고, 장국은 감정에 휘둘려 전투에 나서지 않는다.” 전쟁은 나라의 존망이 걸린 일이다. 전투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일이다. 이런 일을 국왕이나 장군이 화가 났다고 벌이면 안 되는 것이다. 역시 오늘날 최고경영자나 나랏일을 하는 정치인들이 알았으면 하는 명구다. 나라의 존망이 달린 일을 결코 감정에 치우쳐 결정을 하면 안 된다. 나라의 일은 철저한 계산과 냉철한 판단으로 해야 한다. 감정으로 나라의 일을, 회사의 일을 결정하면 그 순간부터 최악의 결과가 확정이 된다. 설사 운 좋게 최악의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그 것은 일순간의 일일뿐이지 상시적인 것이 아니다. 감정적인 결정은 열의 아홉은 항상 결과가 나쁘다. 어떻게 감정에 치우지 않을 수 있을까? 앞서 손자는 장의 덕목으로 지혜와 인자를 꼽았다. 지혜의 지가 여러 사람의 지식을 구하는 것이고, 인자의 인이 다른 사람을 자신처
“부족하니 지키고, 남으니 공격하는 것이다.” “守則不足, 攻則有餘” (수즉부족, 공즉유여) 손자병법의 한 구절이다. “지킴이라는 부족하다는 것이고, 공격이란 남아돈다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손자병법의 묘미는 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어느 병법이 지는 법을 가르칠까? 그래서 손자병법에도 패라는 것 자체가 언급되지 않는다. 손자에게 패, 물러섬이라는 게 없다. 하지만 손자병법은 여느 병법과 달리 독특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이점이 손자병법을 무적으로 만든다. 바로 ‘패하지 않는 법’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는 법이다. 이기는 것보다 패하지 않는 법을 알려주다 보니 아이러니컬하게 손자는 다른 병법보다 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연구가 많다. 그럼 손자가 알려주는 패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손자가 알려주는 그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는 유일한 법 역시 딱 하나다. “지키는 것”이다. 지기 때문에 위험하기 때문에 지켜야한다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는 손자가 찾아낸 정답은 하나다. 바로 지키는 것이다. 버텨내는 것이다. 손자가 발견한 전쟁의 묘미는 시간이다. 시간은 항상 지켜내는 이의 편이라는 점이다. 간단히 어떤 어려움이든
“전쟁에서 병사를 운영하는 것은 흐르는 물과 같다. 물이 모양이 없듯 병을 운영하는 데 정해진 모델이 없다. 변화에 맞춰 승리를 취하면 되는 것이다.” “故兵無常勢, 水無常形; 能因故變化而取勝者, 謂之神” (고병무상세, 수무상형; 능인고변화열취승자, 위지신) 전쟁의 신 손자의 말이다. 전쟁의 이기는 길을 명쾌하게 풀어냈다. “변화에 맞춰 승리하는 것이다.”고 했다. 전체 의미를 한자 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고로 병은 고정된 모양이 없다. 물이 형태가 없는 것과 같다; 변화에 맞춰 승리를 쟁취하는 자가 바로 신이다.” 그렇다. 승패는 변화 속에 나오는 것이다. 변화에 따라 승리를 취하는 자가 승자요, 변화에 따라 패배를 취하는 자가 패자다. 승자는 왕이되고 패자는 노예가 된다. 간단한 이치다. 모든 것이 변화가 가져다주는 것이다. 변화 속에 나오는 것이다. 그럼 승패를 가르는 변화는 어떻게 따라야 하는 것인가? 물처럼 따라야 하는 것이다. 모양을 가지고 맞서는 게 아니라 그 변화의 모양에 맞춰야 하는 것이다. 본래 물의 특성을 가장 잘 설명한 이가 노자다. 노자는 물의 특성을 몇 가지를 꼽았다. 우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물을 웅덩이가 몇 개가
“싸우려 한다면 적이 아끼는 곳을 공격하라. 그럼 적은 지키길 포기하고 나와 싸우게 된다.” “故我欲戰, 敵雖高壨深溝, 不得不與我戰者, 攻其所必救也” (고아욕전, 적수고뢰심구, 부득불여아전자, 공기소필구야) 적을 이길 수 있고 준비도 돼 있다. 그런데 적은 성벽 뒤에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 성벽은 높고 단단해 쉽게 공략할 수 없다. 어쩔 것인가? 손자는 이 순간 이렇게 조언을 한다. “적이 반드시 나와 구해야 할 것을 공격하라.” 한자 그대로 소개를 하면 다음과 같다.; “적과 싸우려 한다면 적이 설사 성벽을 높이고 있더라도 어쩔 수 없이 나와 싸우도록 해야한다. 바로 적이 구해야할 수밖에 없는 것을 공격하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승리의 길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여준다.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적이 반드시 불리한 지형에 나와 싸우도록 하라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반드시 돈을 벌 곳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이게 지키기 힘들다. 우선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내가 준비가 됐다고 하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다음 판단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적
중국엔 구두쇠와 관련한 많은 우화가 있다.많은 우화들 속의 구두쇠들은 모두 어찌나 인색한지,정말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정말 필자를 감탄시킨 구두쇠가 있다. 평생을 구두쇠로 살아 많은 재산을 모아놓고, 한 푼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죽게 됐다. 그런 그가 아내와 아이들에게 정말 처절한 유언을 남긴다. "여보, 아이들아. 잘 들어라. 내 평생을 가난한 집에 태어나, 온갖 구두쇠 짓으로 돈을 모았다. 한 번도 가족이라고 인정한 적도 없고, 제대로 대접해준 적도 없다. 그러니 너희들도 아끼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내 가죽과 고기를 잘라 팔도록 해라. 내 비록 못 먹어서 피골이 상접하지만 그래도 가죽 값은 어느 정도 나갈 거다." 사실 유언이 여기서 끝났으면, 그냥 대단한 구두쇠 정도였을 것이다. 이 구두쇠 온 가족이 이제 죽었다 싶어 한참을 울었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다시 말을 한다. 마치 죽기 전에 꼭 할 말을 잊은 듯했다. 아 한가지 잊었구나. 절대 외상거래는 안된다. 외상은 절대 안 돼! 여기서 외상을 주다는 말은 중국어로赊shē 혹 赊账shēzhàng이라 한다. 중국 우화 가운데 구두쇠 우화가 참 많다. 서민들의 애환을 보여준다
“전쟁을 잘하는 이는 사람을 쓰지, 쓰임을 당하지 않는다.” “故善戰者, 致人而不致于人” (고선전자, 치인이부치우인) 전쟁은 사람을 쓰는 일이다. 자신의 군대를 수족처럼 부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해 적을 공격해야 한다. 경영도 마찬가지다. 조직원을 지휘해 경영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 쟁취하도록 하는 것이다. 손자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짧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고로 전쟁에 잘하는 이는 사람을 쓴다. 사람에 의해 쓰이지는 않는다.” 사실 이 문장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관건은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전쟁에서 사람은 적도 있지만 나의 병도 있다. 손자는 병사를 이야기 할 때 병(兵)이라 했지 사람 인(人)이라 하지 않았다. 손자는 내 편을 아(我)라 했고, 적을 적(敵)이라 했다. 이 문장에서 사람이라 한 것은 아군과 적군을 아울러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치는 가져다 바친다는 의미다. 치명(致命)은 목숨을 바친다는 의미다. 치인은 사람을 바친다는 의미가 된다. 치우인의 우(于)는 수동태의 의미다. 사람에 의해 바쳐진다는 의미다. 간단히 직역하면 “사람을 희생시키지, 사람에 희생되지 않는다. 고로 전쟁을 잘한다고 한다”가 된다. 중국어 현대번역에는 적을
하늘은 시간일까? 공간일까? 도심 속 우리가 잊고 사는 게 하늘이다. 하늘의 푸르름, 고즈넉한 하얀 구름은 언제나 우리 머리 위에 있지만 하루 한 번 보는 이 드물다. 항상 머리 위에 있어 그저 고개만 들면 되는데…, 그런 여유가 없다. 도심의 우린 1분의 여유가 없다. 푸르고 높고 가없는 하늘은 그렇게 우리 도시인에게 잊혀있다. 대신 우린 매일 쫓고 쫓기며 산다. ‘빵빵’이는 자동차처럼 서로가 서로를 재촉한다. 출퇴근길 버스를 위해 달리고, 식당 줄을 서기 위해 달린다. 쫓기며 사는 우리가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시간이 없어!” 그렇게 하늘을 잊은 우린 시간에 쫓기며 산다. 정확히 하늘의 시간을 빼앗긴 우린 땅의 시간에 쫓기며 산다. “하늘이 공간일까? 시간일까?” 도심 우리에겐 좀 뜬구름 없는 이야기다. 질문이 그렇다. ‘하늘이 공간일까? 시간일까?’라니, 역시 우리가 잊어버린 것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한국인이 잊어버린 이야기다. 한자 하늘 천(天)의 이야기다. 서양에서는 하늘은 sky, 시간은 time이다.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구글링으로 찾아본 영어 sky의 어원은 고대 게르만어 scuwo (region of the clouds) 및 고대 노르만
중국 강서 지역에는 짠돌이가 많다고 한다. 중국 우화 가운데 이 강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몇 개 있다. 그중에 재미있는 게 강서 지역의 과일 보관함 이야기다. 우화에서 과일 보관함을 果榼 guǒkē라 했다.사전을 찾아보면, 榼는 물이나 술을 담는 통을 말한다고 했다. 우화 설명에 따르면 果榼는 작은 격자 모양으로 나누어진 모습이다. 그 격자 사이에 과일을 담거나, 과자를 담아 놓았다고 한다. 우화에 따르면 강서 사람들은 그것을 子孙榼라 부른다. 재미있는 게 강서 사람들의 果榼의 과일 대부분은 사실 가짜다.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 외지 사람들은 일견하곤 직접 과일을 먹으로 손으로 집어 볼 정도다. 만져 보고서야 가짜인 줄 알고 놀란다. 그럼 강서 사람들이 웃으면 말한다. "눈이라도 맛있으라고요!" 우화에서는 더 놀라운 게 그런 과일 상자가 대단히 오래됐다는 점이라고 비꼰다. 수백 년 대대로 수리해 이용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우화는 지역의 특성을 담고 있다. 읽다보면 웃음도 나지만 옛 당대의 지역 민심도 엿볼 수 있다. 물론 외지에서 특정 지역을 폄하하려 지어낸 이야기도 많다. 그런 것 하나하나가 중국의 문화다. 하나하나 알아가면 중국을 보다 더 이해하
지구 종말 영화의 한 장면인 듯 싶다. 신종 코로라가 만연한 우한시의 모습이다. 거리 모퉁이에서 좀비가 하나 둘씩 나올 듯 을씨년스럽다.
“한자란 수천 년 인류의 지혜를 담아 전하는 USB다.” 한자에 대한 생각이다. 간단히 참 진(眞)자를 보자. 참되다는 게 무엇일까? 우리의 먼 선조들은 무엇을 보고 이 글자를 참이라는 뜻을 갖도록 했을까? 갑골문에서 참 진은 시체를 의미한다. 그럼 어떻게 시체가 참되다는 뜻이 됐을까? 언제부터 참되다는 뜻이 됐을까? 자연히 이런 의문들이 든다. 그리고 그 의문들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과연 참 됨이란 무엇인가?’하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참 진을 제대로 알면 ‘무엇이 참됨’인지 절로 알게 되는 것이다. 현대의 수많은 학자들이 수십 수백편의 논문을 써도 정의가 쉽지 않은 ‘참됨’이라는 의미를 한자 한 자가 가르쳐주는 것이다. 무엇이 한자에게 이런 기능을 갖도록 했을까? 한자는 인간 스스로의 ‘딥런닝’ 과정을 극도로 압축했기 때문이다. 한자가 이 땅에 만들어 쓰인지는 대략 5000여 년 전이다. 본래 한자는 고대 주변의 산과 강 등 주변의 사물과 각 종 동물과 기구의 모양을 본 따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글자들이 모여 다시 새로운 한자를 만들어 갔다. 이 과정은 인류의 생활이, 의식이 복잡해지는 과정과 같다. 생활이 복잡해지면서 사용하는 물건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