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홍찬선의 시와 경제 29 - 한산대첩 이순신에게 배우는 리더십

대한민국은 이순신 보유국이다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전쟁은 인간성을 파멸시키고 삶의 터전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전쟁을 부정할 수도, 피할 수도 없다. 자기 나라의 잘못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은 절대 불가다. 하지만 외적이 쳐들어올 때는 맞서 싸워야 한다. 어쩔 수 없는 방어 전쟁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것이 좋은 예다.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되지만 침략에 맞서 싸워야 할 때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래야 나도 살고, 가족도 살며, 나라도 생존할 수 있다. 싸우는 게 무섭다고 도망치면, 도망갈 곳도 없을뿐더러 죽음이 먼저 달려와 목숨을 낚아채 간다. 방어전쟁에서는 도망가서 비겁하게 죽어 영원히 죽느냐, 분연히 일어나 싸우다 죽어 영원히 사느냐의 선택만 있을 뿐이다.

 

 

한산/ 如心 홍찬선

 

뚫어야 하는 운명과

지켜야 하는 운명이

 

그 어느 쪽도 물러설 수 없는

절체절명의 운명이 맞붙었다

 

옳음과 옳지 못함,

의(義)와 불의(不義)를 가르는 한판

 

좀 더 겸손하고

좀 더 준비하고

좀 더 고민하고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절실했던

여해(汝諧)가 운명의 끈을 당겼다

 

최후의 순간까지 보안을 유지하고

최후의 순간까지 노군(櫓軍)을 훈련하고

최후의 순간까지 거북선의 단점을 개선하고

최후의 순간까지 잃지 않은 믿음으로

 

바다에 성을 쌓아

학이 훨훨 날았다

용이 내뿜은 불길이

왜군의 오만을 불살랐다

 

옳음이 불의를 응징했고

옳음을 지키려는 불꽃에 방아쇠 당겼다

 

 

1592년 7월8일(음, 2022년은 8월5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자는 여해)의 조선 수군과 와키자카야스하루(脇坂安治)의 왜 수군이 격전을 벌였다. 조선 수군은 56척, 왜 수군은 73척. 객관적 전력은 왜 수군이 앞섰다. 하지만 이순신은 왜 함선 47척을 격파하고, 왜 수군 1만여명을 수장시키는 대승을 거뒀다. 한산대첩은 조선수군이 남해와 서해의 제해권을 확보함으로써, 왜군이 바다를 통해 육군에게 전쟁물자를 공급하는 보급로를 차단하고, 곡창지대인 호남평야를 보호함으로써 임진왜란의 양상을 바꿔놓았다.

7월27일에 개봉돼 8일 만에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한산: 용의 출현>(감독 김한민, 주연 박해일 변요한)이 이순신의 승리비결을 알려준다. 이순신은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는 손자병법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다.

당포와 사천 해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크게 기여한 거북선의 문제점을 고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견내량에 매복하고 조선수군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왜 수군의 허를 찔러,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는 전술을 펼쳤다. 적선을 한곳으로 몰아넣어 사방에서 공격하는 학익진(鶴翼陣)으로 바다 위에 성을 쌓아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작전에 따라 함선을 자유자재로 운항할 수 있도록 노 젓는 노군(櫓軍)들의 중요성을 깨닫고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그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도록 마음을 얻는 데 노력했다.

 

 

지도자/ 如心 홍찬선

 

이순신은 참된 지도자였다

주어진 여건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다 하며

다가올 큰 전쟁을 준비했다

 

이순신은 변명하지 않았다

거북선의 단점이 드러났을 때

부하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함께 개선책을 마련해 시행했다

 

이순신은 오만하지 않았다

작은 승리에 만족하거나 우쭐대지 않고

더 크게 이기기 위한 방법을 찾았고

더 적은 피해를 입도록 고민했다

 

이순신은 겸손하고 겸손했다

말을 아껴 불필요한 논쟁을 막았고

말을 하도록 해 집단창의력을 이끌어냈다

변명과 오만 대신 겸손으로 싸울 때마다 이겼다

 

 

이순신은 스물세 번 싸워 스물세 번 모두 이겼다. 해전의 신(神)이라 불리는 영국의 넬슨 제독조차도 존경할 정도로 엄청난 승리를 만들었다. 이순신의 승리가 행운에 의해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싸우기 전에 아군의 전력과 적군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그 상황에 맞는 전략을 짠 뒤, 자신에게 유리한 곳으로 적군을 유인해서 싸워 이겼다. 싸우기 전에 이미 승패가 결정돼 있는 셈이었다.

이순신의 승리법은 430년이 지난 지금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자리를 꿰차고 앉아 거들먹거리며 아랫사람들을 볶아대다가 일이 잘못되면 책임을 전가하는 못된 지도자들은 영화 <한산>을 보고 이순신을 배워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순신 보유국이다. 선조의 무능과 질투로 이순신을 노량해전에서 죽게 만든 잘못을 다시 저질러서는 안 된다.




사회

더보기
석탄도시에서 친환경 관광도시로, 산시 다퉁의 성공적 변화에 글로벌 이목 쏠려
석탄도시로 유명했던 산시성(山西省) 다퉁(大同)이 경제 관광 도시로 변신에 성공해 중국에서 화제다. 탄광 도시의 생존은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주요 현안 가운데 하나다. 석탄이 주 연료이던 시절 번화했지만, 에너지원의 변화와 함께 석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고, 그 석탄 생산에 의존해 만들어졌던 몇몇 도시들이 생존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한국은 도박산업을 주면서 관광도시로 변모시켰다. 중국에서는 이런 정책 지원 없이 친환경 도시로 변화로 관광 도시로 변화에 성공한 곳이 있어 주목된다. 주인공은 산시성(山西省) 다퉁(大同)이다. 중국 산시성 다퉁이 과거 ‘석탄 도시’의 이미지를 벗고 친환경 관광지로 변모하고 있다. 한때 전국 최악의 대기질 도시 중 하나로 꼽혔지만 최근에는 ‘다퉁 블루(大同藍)’라는 별칭과 함께 주요 관광 도시로 선정됐다. 다퉁은 오랫동안 석탄 산업에 의존해 왔지만 환경 오염 문제로 큰 타격을 입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전국 대기질 순위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이후 당국은 불법 탄광을 정리하고 대형 탄광에는 자동화 설비를 도입해 분진 배출을 크게 줄였다. 일부 광산은 ‘석탄이 보이지 않는 밀폐형 관리’를 도입해 관리 수준을 높였다. 환경

문화

더보기
[영 베이징] '관광+ 문화' 융합 속에 베이징 곳곳이 반로환동 변신 1.
‘문화유적 속에 열리는 여름 팝음악 콘서트, 젊음이 넘치는 거리마다 즐비한 먹거리와 쇼핑 코너들’ 바로 베이징 시청취와 둥청취의 모습이다. 유적과 새로운 문화활동이 어울리면서 이 두 지역에는 새로운 상권이 형성됐다. 바로 관광과 문화 융합의 결과라는 게 베이징시 당국의 판단이다. 중국 매체들 역시 시의 놀라운 변화를 새롭게 조망하고 나섰다. 베이징완바오 등 중국 매체들은 앞다퉈 두 지역을 찾아 르뽀를 쓰고 있다. “평일에도 베이징 시청구 중해 다지항과 동성구의 룽푸스(隆福寺) 상권은 많은 방문객을 불러모았다. 다지항의 문화재 보호와 재생, 룽푸스의 노포 브랜드 혁신이 시민과 관광객에게 새로운 소비 경험을 제공했다. 그뿐 아니라, 올여름 열풍을 일으킨 콘서트가 여러 지역의 문화·상업·관광 소비를 크게 끌어올렸다.” 베이징완바오 기사의 한 대목이다. 실제 중국 각 지역이 문화 관광 융합을 통해 ‘환골탈퇴’의 변신을 하고 있다. 베이징시 문화관광국 자원개발처장 장징은 올해 상반기 베이징에서 ‘공연+관광’의 파급 효과가 뚜렷했다고 밝혔다. 시에 따르면 대형 공연은 102회 열렸고, 매출은 15억 위안(약 2,934억 6,000만 원)에 달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