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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 속의 유한? 영永

eternity

불변의 존재, 영원이라고 번역된다. 유한한 인간에게 묘한 유혹을 던지는 말이다. 누구나 변치 않는 가치를 추구하고 가지고 싶어 한다. 과연 그 영원하다는 게 무엇일까? 

© bryangoffphoto, 출처 Unsplas

네이버 사전에서 검색한 '영원'이라는 개념은 참으로 복잡하고 사변적인다. 

영원회귀(永遠回歸), 영원한 진리, 영원한 생명 등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예를 주의해서 생각해 보면 그 의미가 각각 다른 경우가 많다. 가령 F.W. 니체의 ‘영겁회귀’에서의 영원한 것은 그 자신 시간 속에 있으면서 자신을 한없이 유지해 나가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영원은 항상성(恒常性)을 뜻한다. 또한 영원을 말할 때 흔히 인용되는 수학이나 도덕률 등의 ‘영원한 진리’에서 영원은 시간과 전혀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특히 종교적 신앙의 입장에서 ‘영혼의 불멸’과 같은 뜻으로 다루어지는 영원은 영원하다고 하는 바로 그것이 초시간적(超時問的) 실재(實在)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영원이 강조적으로 거론될 때는 단순한 이론적 화제가 아니라 신앙이나 인격적 결단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을 고백할 때 “당신을 영원히 사랑한다”고 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도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영원을 수학적으로 ‘영원한 진리’라는 측면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플라톤이나 R. 데카르트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일면적인 것이다. 또한 인간의 인격적 실천 장면인 역사와의 관련에서, 그리고 역사적 시간성의 관점에서 영원성의 의미도 새로이 해석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영원이라는 사상의 원천은 넓은 의미에서 신앙이지만, 역사적으로 형성된 여러 종교의 하나하나에 따라, 그리고 그 종교를 바탕으로 형성된 여러 문화에서의 인간을 이해하는 태도에 따라, 앞서 말한 차이와는 다른 방향으로 분화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어지만, 한 번에 읽히지 않는다. 서너 번 곱씹어 읽어야 한다. 수학적으로만 봐서도 안되며, 역사적 시간성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솔직히 설명이 아니라, 문제를 새롭게 던지고 있다 싶다. 
우리 동양에서 영원의 영永, 길 영은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너무 엉뚱해 '피식' 웃음이 나온다. 

갑골자에서 영은 대단히 단순하다. '물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영원할 영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수영하는 사람이 영원한 것이라니? 단순하지만 그래서 더 현묘한 게 한자의 사고다.

우선 학자들은 본래 영원할 영은 수영할 영泳이었다고 본다. 영원하다는 뜻을 가지게 되면서 삼 수변을 더해 본래의 뜻인 수영할 영자를 새롭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학자들의 정통적인 분석이다. 갑골자 발견 이후에 한자의 변천을 좀 더 알게 되면서 나온 분석이다. 이에 앞서 설문해자에서는 물에 물방울을 더한 것, 그래서 물이 영원히 흐르는 것을 뜻했다고 봤다. 
이 해석은 영원하다는 뜻을 잘 설명하기 때문인지, 지금도 중국 바이두에서 영원할 영永을 설명하는 데 인용되고 있다. 사실 중국의 사상에 '동쪽으로 흐르는 강'은 영원에 대한 최고의 상징이다.  

滾滾長江東逝水 
gǔn gǔn zhǎng jiāng dōng shì shuǐ
浪花淘盡英雄 
lànghuā táo jìn yīng xióng
是非成敗轉頭空
shì fēi chéng bài zhuǎn tóu kōng
굽이굽이 장강 
동으로 동으로
뭇 영웅 꽃처럼 
강가 피고 지고
한순간 성공은
헛되고 헛되다

명나라의 양신(楊愼)의 임강선(臨江仙)이다. 우주와 사람을 강과 강가의 꽃에 비유했다. 무한 속의 유한에 대한 자각이다. 좀 더 영원할 영의 개념에 닿아 있다. 
사실 동양에서 세상은 모순이라는 개념으로 포괄된다. 예컨대, 상하, 좌우, 음양 등 모순된 양극단 속에 있는 게 현실이다. 현실 속에 양극단의 존재가 발현되지는 않지만 양극단의 작용은 분명히 느껴진다. 현실의 존재를 중심으로 한 방향에는 따뜻한 기운이, 다른 한 방향에는 찬기운이 분명히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한번 이야기한듯싶다. 이는 서양의 세계관과는 큰 차이가 있다. 현실에서 존재해 확인되는 것을 중심으로 세계를 파악하려는 서양과 달리 작용이 느껴지는 양극단을 설정해 그 사이의 세계를 파악하는 게 동양이다. 언어 자체가 그렇다는 의미다.
그런 생각을 하면 영원할 영은 참 묘한 글자다. 무한 속에 유한한 존재를 함께 넣어 영원이라고 했다. 사실 영원은 유한이 있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영원할 영은 글자 속에 진정한 영원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게 아닐까? 

© juskteez,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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