何处秋风至? 萧萧送雁群。 秋朝来入庭树,孤客最先闻。 hé chù qiū fēng zhì ?xiāo xiāo sòng yàn qún 。 qiū cháo lái rù tíng shù ,gū kè zuì xiān wén 。 가을바람 머문 그곳, 외기러기 날아드는 곳, 아침마당 나무에 가을바람 머무니, 누굴까? 누가 올까? 외로운 객이 가장 먼저 안다네. 슬픔이 슬픔을 안다. 외로움이 외로움을 안다. 그래서 슬픔만이 진정 슬픔을 위로하고, 외로움만이 외로움을 달랜다. 슬픔을 알고 외로움을 알 때 그제야 비로소 한 줄기 가을바람 머문 곳을 찾는 기러기 마음을 안다. 당나라 시인 유우석(刘禹锡, 772-842)의 '가을바람의 노래'다. 유우석의 자는 몽득이다. 낙양사람으로 유종원과 함께 정치 혁신을 하려다, 20년간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시는 남방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지었다고 한다. 시상은 단순하기만 하다. 가을 녘 외로움이 한줄기 바람과 기러기 떼, 그리고 떨어지는 나뭇잎 등에 녹아 있다. 하지만 그 단순함이 바로 이 시의 매력이다. 복잡하고 애잔한 감성이 담담하게 서술된다. '萧萧' 의성어 활용도 좋다. 읽으면 읽을수록 입에 마음에 착 달라붙는다. 유몽득
“17年”的妹妹 “17nián ”de mèimei 17년 된 여동생 飞歌,听说你有个妹妹? Fēigē ,tīngshuō nǐ yǒu gè mèimei?... 페이거, 여동생이 있다면서요? 是的老师,她在西班牙。 Shìde lǎoshī,tā zài Xībānyá . 네 선생님, 스페인에 있어요. 她多大了? Tā duōdà le ?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她17年了。 Tā 17nián le. 17년 되었어요. *나이를 말할 때는 ‘年’ 을 쓰지 않고 항상 ‘岁(suì)’를 써야 한다. ‘年’은 연도 등을 지칭할 때 쓰인다. >>맞는 문구: 她17岁了。 Tā 17suì le 。 作者:刘志刚 画家:宋海东
마음 약한 이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자신의 부를 자신보다 더 부자에게 나눠주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설마 그럴까’ 싶지만, 주변에서 흔히 일어난다. 특히 회사 경영 과정에서 쉽게 비슷한 사례를 발견하게 된다. 수많은 경우가 있다. 그냥 선의로 돕는다는 게 그만 자신의 경쟁력을 빼앗기는 경우가 흔하고, 지략을 써 적을 강하게 해 더 강한 적을 상대하도록 한다는 게 그만 자신이 너무 약해진다는 사실을 계산에 넣지 못한 경우도 있다. 고래로 지략은 산법이라고 한다. 나뭇가지들을 놓고 서로의 길고 짧음을 대보는 것이다. 여기서 나뭇가지들은 다양한 가능성을 상징한다. 나뭇가지가 많을수록 산법은 복잡해진다. 이 때 가지의 수가 모자라면 계산이 짧아지고, 가지의 장단점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계산을 틀리게 되는 것이다. 어려운 산법 가운데 하나가 남을 돕는 방법이다. 남을 괴롭히거나 공격하는 것보다 산법이 더 복잡하다. 전국책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제나라 이웃인 조나라가 강국인 위나라의 공격을 받았다. 위는 조의 수도인 한단을 포위하고 공격을 했다. 조가 이웃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 제나라 대신들이 모여 논의를 시작했다. 관건은 구원을 보낼 것이냐,
服务员,买单! Fúwùyuán ,mǎidān ! 웨이터, 여기 계산할게요. 等等,还有……(指着吃剩的饭菜) Děngděng ,háiyǒu ……(zhǐzhe chī shèngde fàncài ) 잠시만요, 그리고… ...(남은 음식을 가리키며) 我要和他们一起回家。 Wǒ yào hé tāmen yīqǐ huíjiā . 이것들이랑 같이 집에 갈게요. 哈哈哈,我知道了,您是要剩菜打包吧! Hāhāhā ,wǒ zhīdào le ,nín shì yào shèng cài dǎbāo ba ! 하하하, 알겠습니다. 남은 음식 싸가시겠단 말이죠! 是的,是的! Shìde ,shìde ! 맞아요, 맞아. * “남은 음식은 포장해주세요” 라는 표현은 “打包”라고 한다. 服务员 fúwùyuán 종업원. 웨이터 剩 shèng 남다. 남기다. 饭菜 fàncài 밥과 반찬. 식사 打包 dǎbāo (종이·천 등으로) 포장하다. 싸다. 一起 yìqǐ 같이. 더불어. 함께 回家 huíjiā 집으로 돌아가다. 귀가하다. 귀성하다.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하고, 남자는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건다." (士为知己者死,女为悦己者容:사위지기자사, 여위열기자용) 페미니스트가 보면 뭐라 한 마디 할 수도 있겠다. 남녀유별의 전통적 관념에서 한 대비일 뿐이다. 중국의 전국책에 나오는 말이다. 전통적 관념에서 생은 그 종류가 정해져 있다. 사는 선비로서, 자신의 의지를 다지고 실현하는 생을 사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국책의 일구(一句), 저 한마디는 그런 선비가 생을 대면하는 자세를 말한다. 같은 전국책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나온다. 제나라의 이야기를 담은 제책(齊策)편에 실린 제나라를 강국으로 만든 재상 전영(田婴)의 고사다. 전영에게는 제모변이라는 식객이 있었다. 그는 독특하게 주변의 모두가 싫어하는 성격을 가졌다. 묘하게 오직 전영만 그가 재주가 있다고 믿고 아꼈다. 전영이 그를 아끼자 주변의 온갖 사람들이 전영에게 제모변의 험담을 했다. 전영의 편애에 식객 중 일부가 떠날 정도였다. 심지어 전영의 아들인 맹상군마저도 제모변에 대해 험담을 했다. 전영은 크게 노하여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을 다 없애고 우리 집이 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제모변을 싫어하는 자들에 대해 나
百里奚,五羊皮, bǎi lǐ xī ,wǔ yáng pí , 忆别时,烹伏雌,炊扊扅, yì bié shí ,pēng fú cí ,chuī yǎn yí , 今日富贵忘我为? jīn rì fù guì wàng wǒ wéi?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대부 백리해(百里奚)의 고사와 연관된 시다. 그는 본래 우나라 사람인데 누구에게도 천거받지 못하자 가족과 고국을 등지고 타국으로 떠난다. 이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국 진(秦)나라 목공에 의해 발탁돼 진의 부국강병을 일궈낸다. 진 목공이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 있던 백리해를 오고양피(五羖羊皮, 검은 양 다섯 마리의 가죽)을 주고 데려왔다고 해서 '오양피(五羊皮)'의 별호를 얻었다. 시는 단번에 귀족 백리해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음은 그의 별명을 부른다. "오양피야!" 자연히 시를 들은 백리해와 그 주변 인물들의 관심을 끈다. 그 다음 묻는다. "우리 작별할 때 기억나는가?" 노래가 이어진다. "내가 암닭을 푹 삶아줬지. (너무 가난해 불을 피울 장작조차 없어) 문짝을 뜯어내 요리를 한거야. 그런데 당신 이제 부귀하게 됐다고 어찌 나를 잊었는가?" 시를 듣던 백리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것은 우나라를 떠
老师,我们下午一起去游泳怎么样? Lǎoshī,wǒmen xiàwǔ yīqǐ qù yóuyǒng zěnmeyàng? 선생님, 오후에 같이 수영하러 가실래요? 你说什么? Nǐ shuō shénme? 방금 뭐라고 했니? 我说……(通话忽然中断) Wǒ shuō ……(tōnghuà hūrán zhōngduàn) 제가… …(통화가 잠시 중단) 唉!我的手机电池死了! Ài wǒ de shǒujī diànchí sǐ le ! 앗! 내 핸드폰 배터리가 죽어버렸네! *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 꺼졌을 때는“手机没电了” 핸드폰이 갑자기 먹통일 때는 “手机死机了”라는 표현을 쓴다. 游泳 yóuyǒng 수영하다. 헤엄치다. 通话 tōnghuà 통화하다. 忽然 hūrán 갑자기. 홀연. 별안간. 돌연. 中断 zhōngduàn 중단하다. 중단되다. 끊다. 끊기다. 电池 diànchí 전지.
세상일은 선후가 있고, 본말이 있다. 모든 게 순서가 있어 그 순서를 다르게 하면 같은 구성이라도 다른 결과가 나온다. 선은 선이요, 후는 후다. 본은 본이요, 말은 말이라는 의미다. 본말이 뒤집히면 ‘바늘 허리에 실 매어 쓰는’ 꼴이 된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여도 옷을 꿰맬 수 없듯 어떤 일이든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 총명하다는 이들이 저지르는 실수가 바로 이런 실수다. 전국책 제책편에는 ‘해대어’라는 고사가 나온다. 제나라 왕에 의해 설(薛) 땅의 제후가 된 전영(田嬰)이 성곽을 높이 쌓아 지역 방비도 강화하고 자신의 위상도 높이려 했다. 곧 많은 지역민들이 반대를 했다. 전영의 계획으로 백성들의 고통이 가중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제후 전영은 이 같은 충언을 듣지 않았다. 부하에게 “객들을 더 이상 들여보내지 말라”고 명했다. 그러자 제나라의 한 사람이 찾아왔다. “내 딱 세 글자로 한마디만 할 터이니 제후를 만나도록 해주시오.” 그렇게 전영을 만난 이가 자신의 약속처럼 소리를 쳤다. "해海, 대어大魚!" 그러고는 다시 나가 버렸다. 놀란 전영이 소리쳤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가? 이것보다 더 할 말이 있을 텐데." 그때서야 객이 말
径万里兮度沙漠,为君将兮奋匈奴。 jìng wàn lǐ xī dù shā mò ,wéi jun1 jiāng xī fèn xiōng nú 。 路穷绝兮矢刃摧,士众灭兮名已隤。 lù qióng jué xī shǐ rèn cuī ,shì zhòng miè xī míng yǐ tuí 。 老母已死,虽欲报恩将安归? lǎo mǔ yǐ sǐ ,suī yù bào ēn jiāng ān guī ? 아, 돌아보니 만리 길, 사막을 건넜구나. 큰 칼 차고, 흉노를 쫓아온 이 길 갈수록 흉한데 활은 떨어지고, 죽어 이름도 못남긴 병사들이여. 고향 늙은 어미마저 그대들 곁으로, 아 어디로 가야 은혜를 갚을까? 이국만리 타향 전쟁터에서 받아든 어머니의 사망 소식, 어찌 이런 비통함이 있으랴. 바로 한나라 장수 이릉(李陵 BC134 ~ BC74)이 남긴 시 별가(别歌)다. 이릉은 한 무제의 명을 받고 흉노 토벌에 나섰다가 적의 작전에 휘말려 악전고투 끝에 포로가 되고 만다. 아쉽게도 이 패배가 이릉에게는 진정한 불행의 시작이었다. 누군가 한 무제에게 이릉이 변절해 흉노군을 훈련시키고 있다고 모함을 해 분노한 한 무제가 이릉의 가족 모두를 몰살시켰다. 이 때 이릉은 한나라에 대한 충성을 굽히지
직위는 권한과 책임으로 만들어진다. 간단히 말해 직위란 주어진 권한으로 일을 해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과장이 대리 일을 하면 쉽다. 상무가 부장의 일을 해도 쉽다. 사장이 전무, 상무의 일을 하면 더 쉽다. 이유는 권한은 크고 책임이 작기 때문이다. 간단히 부장이 대리 역을 한다면 월급이 과한 것이다. 한 부장이 대리 2,3명의 일을 한다고 해도 4,5명까지의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4,5명인 대리 전원이 자신의 일을 제대로 못하게 하는 효과만 가져온다. ‘상명하복’(上命下服: 위의 지시를 밑은 따른다)의 기율을 준수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게 ‘상침하권’(위가 아래의 권한을 침해한다)의 잘못을 방지하는 것이다. 반대로 상부의 권한은 함부로 위임이 되면 안 된다. 권한의 위임은 쉽지만 조직이 그 위임에 적응하고 나면 쉽게 회수가 되지 않는 탓이다. 특히 한 조직의 리더는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서 권한을 위임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하지만 아쉽게도 권한은 위임되지만 책임은 위임되지 않는다. 책임이 따르지 않는 권한은 그것이 크건 작건 월권이 된다. 월권이 난무하면 조직은 필망한다. 전국책에는 이런 우화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