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정은 사회 속 꿀과 같다. 사회를 달고 따뜻하게 만든다.
꿀은 만든 꽃마다 그 맛이 다르고 효능이 다르듯, 사회 속 가정마다 만든 정情도 느낌이 다르고 효능이 다르다.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이 사회 꼭 필요한 존재가 된다. 동양의 사상은 현존에 대한 관찰이지, 현존의 지향이 아니다. 새롭게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본래 그대로 제대로 있도록 해 얻는 것이다.
서구의 현대화가 기존의 가족이란 개념 허물고, 새롭게 하고 있다. 물론 좋자고 하는 짓이다. 하지만 자연 그 자체가 좋다는 것을 이제서야 아는 게 우리 수준이다. 무위자연无为自然이라는 도리를 유위자연有为自然으로 자연을 파괴한 뒤 안다.
가족은 자연의 생산물이다. 사람이 만들었지만, 자연 속에서 자연히 만들어진 것이다. 마치 벌이 살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꿀을 생산하듯 말이다.
물론 현대 사회 속에 가족이란 개념의 왜곡이 생기듯 시대 속에 동양사 각 장마다 왜곡이 있었다. 그런 왜곡은 모계 혈족 사회에서 씨족 사회로, 부족사회로 성장하면서 보이는 집 가 자의 변연 속에서도 나타난다. 가족에 대한 대한 가장의 절대적 권한과 소유, 가족 구성원의 가장에 대한 절대적 의존은 동양사회 제도 속에서 소위 '사회적 봉건성'으로 이어진다. 참 오랜 세월, 지금까지 서구 사회에게 욕을 먹었던 부분들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 그것은 사회 봉건성이라 이름 붙은 부위만 떼어내면 속은 또 다른 본질이 있을 수 있다. 마치 죽순처럼 딱딱하게 변질된 부분을 계속해서 벗겨내야 우리는 그 본질을 맛보게 된다.
가족이란 벌이 만든 꿀이다. 가족은 공사를 구분해 사를 대표하는 최대 단위라는 것이다. 사회 속에 '타자', 다른 가족들에 대해 나를 보호해주고, 이해해주는 최대 단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