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 튀며 살 활(活) 자는 언제부터 쓰였을까? 비교적 오래된 사례가 노자의 도덕경이다. 노자는 죽일 살(殺)의 반대의 뜻으로 살 활 자를 쓰고 있다. 감히 하지 않는 데 용기를 내는 이가 살 것이라고 했다.”
“勇于敢則殺, 勇于不敢則活
yǒng yú gǎn zé shā , yǒng yú bú gǎn zé huó”
'감히 하는 것' 보다 용감하면 죽을 것이고, '감히 아무 것도 못하는 것'보다 용감하면 살 것이다.
노자 도덕경 73장에 나오는 말이다. 于는 ~ 하는 데 있어서 또는 ~하는 것 보다 등의 뜻이다. 쉽게 말해 '용감'하면 죽기 쉽상이고, '용무감'하면 산다는 의미다.
용감과 부용감이 아니라 용감과 용부감이라는 데 주의할 필요가 있다. 먼저 용감을 보자 용감은 흔히 쓰듯 겁 없이 나선다는 뜻이다. 그럼 용부감이란 무엇일까? 부용감은 용감하지 않다는 의미다. 겁쟁이라는 말이다. 용부감은 이와 다르다. 부감하는 용기가 있다는 뜻이다. 겁쟁이라는 의미와 달리 감히 하지 않는 용기를 낸다는 의미다.
참 묘한 말이다. 절로 무릎을 치게 한다. 본래 감히 하는 것보다 감히 하지 않는 게 더 어려운 법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모험을 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인생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순간 모험을 피한다. 그냥 안전을 택한다. 위험의 대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진정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순간 모험을 피하지 않는다. 과감하게 나선다. 그 것이 용감이다. 헤겔은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은 노예가 되길 원치 않는다. 모두가 어쩔 수 없어 노예가 된다. 오직 죽어도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이들 가운데 살아 남은 자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고 말한 것이다.
용감은 한 두차례 성공을 가져올 수 있다. 인생의 도박에서 성공하면 삶의 모든 것이 달라진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된다.
그러나 이런 성공의 단맛을 본 이들이 쉽게 빠지는 것이 용감한 도전을 되풀이 한다는 것이다. 삶에서 도박의 결과는 냉혹하다. 반드시 실패에 직면한다.
진정한 용기는 여기서 발휘된다. 굴할 줄 하는 용기다. 자신을 굽혀 감히 하지 않고 참는 용기다.
대부분 사람들은 삶에서 꼭 필요한 도박을 할 용기도, 자기를 굽혀 참을 용기도 없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위험의 확률이 낮은 엉뚱한 모험은 되풀이 해서 즐긴다.
노자는 말한다.
“부감(不敢)의 용기를 지닌 자여,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