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에 임하기에 도에 가까운 것이다.
물의 성질에 대해 가장 많이 연구해 상선약수론을 정립한 이가 바로 노자다. 후대 많은 이들이 그가 정립한 명제를 설명하는 데 그쳤는데, 어떤 설명도 노자가 말한 것 이상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어떤 설명도 그저 부족할 뿐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정리하면서 비유도 없이 간결하게 물의 성질을 설명하면서 물의 성질을 삶의 행동 지표로 삼을 것을 설파했다.
“水善利万物而不爭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 공을 다투지 않는다.”
참 간결하고 심플하다. 바로 덕을 쌓는 방법이다. "저 사람 여윳돈만 생기면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활동에 나서, 그런데 남들은 잘 몰라. 한 번도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까, 내가 우연히 그 현장을 봐서 알게 됐지." 바로 누구나 듣고 칭찬할 수밖에 없는 칭찬 중 최고의 칭찬이다. 이런 사람을 덕이 있다 하지 어떤 사람을 덕이 있다 하랴.
“處衆人之所惡, 幾於道
물은 항상 낮은 곳에 임하기 때문에 도에 가깝다.”
물은 본래 높은 곳에서 맺힌다. 그래서 땅에 떨어져, 모이고 모여 저 아래 계곡을 채우고 강을 이뤄 더 낮은 바다로 가는 것이다. 바다는 이 땅의 가장 낮은 땅이다. 물은 모이는 물이 어디서 왔는지 차별하지 않고, 낮은 곳이 얼마나 더러운 곳인지 가리지 않는다. 물은 웅덩이의 크기도 가리지 않고 하나하나 다 채우고 나서야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흐는 동안 그 성질이 변하지 않는다.
우리 동양에서는 그래서 물방울을 백성에 비유한다. 하나하나는 끊어지고, 파편화된 약한 존재지만 백성들이 마음과 마음이 모여 이어질 때 끊임없는 물의 힘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본래 치수는 고래로 동양의 최대 골칫거리였다. 그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한 이가 바로 13년 떠돌아다니며 "치수를 하느라 3번 집 앞을 지나면서도 집에 들르지 못했다"(三過不入)는 고사를 남긴 고대 우(禹) 왕이다. 그가 발견한 치수의 묘는 "물길을 터 흐르는 방향을 잡아준다"라는 것이다. 그 방법은 지금도 통용된다.
백성을 다스리는 치수, 정치(政治) 역시 마찬가지다. 물을 흐르게 이어주고, 그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어야 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물의 정치론이 바로 대표적인 사례다. 서로 다른 의견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방향을 잡아가도록 하는 게 물의 정치학인 것이다.
어찌 형체가 없는 물은 묶어서 앞에서 끌까? 뒤에서 밀까? 백성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끌 수도, 뒤에서 밀 수도 없다.
갈 길을 열어주고, 서로 다른 의견들이 서로 부딪쳐 가운데 방향을 잡아가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상선약수의 물의 정치, 자신이 없으면 안 되고, 앞서 이끌어야만 되는 양 생각하는 이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