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훔쳐도 되는 게 있다면? 바로 시간이다. 하늘의 시간을 잘 훔치는 법을 알면 남들이 1시간을 살 때 나는 2시간을 살 수 있다."
아니 솔직히 오래 사는 게 아니라, 시간당 성과를 배를 늘릴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현대적 용어로 시간의 효율성이다.
사실 시간과 죽음은 아직 세상 모두에게 유일하게 공평하게 분배된 것이다. 그런 시간을 훔치다니? 하늘의 시간과 개인적 시간, 공부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면 가능하다. 역사 속에 성공한 모든 사람의 공통된 특징이 바로 시간을 훔쳤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을 통해 보는 시간을 훔치는 방법은 크게 3종류다.
첫째가 바로 나폴레옹식, 흔히 아침에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찾는다는 말을 신봉하고, 자야 할 시간을 쪼개 쓰는 알뜰 형이다. 참 불쌍해 보이지만 그래도 성공률이 가장 높다. 따라서 당연히 성공한 사람들 사이에 가장 널리 쓰였다.
둘째는 보다 좀 똑똑해 보이는 방법이다. 시간을 접어 쓰는 방법이다. 일찍이 우리나라에서는 여류시인으로 명성을 날렸던 기생 황진이가 시 속에 이 방법을 전했다.
그녀의 시를 보자.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베어내어
님 오신 날 밤 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참 아름다운 시다.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을 더 늘이기 위해 외로운 밤의 시간을 모아 둔다. 그것도 춘풍 이불 아래? 이런 여인을 사랑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떤 여인을 사랑하랴. 누차 이야기했지만 시간에 대해 우리는 선인보다 못해도 한참 못하다.
눈치 빠른 이들은 눈치챘겠지만, 달 뜨는 밤들을 접어서 이불 속에 감췄다가 님이 오면 펼쳐 같이 쓰는 유일한 방법은 한 가지다. 쉽게 말해, 화장실에서 책 읽기, 지하철 타고 책 읽기 등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이다. 즉 이 일을 하는 데 쓰는 공부와 저 일을 하는 데 쓰는 공부를 겹쳐서 쓰는 방법이다.
장자에는 소를 잃은 목동과 처녀 이야기가 나온다. 처녀는 노래 부르고 놀기를 좋아했고, 목동은 책 읽기를 좋아했다. 둘의 직업은 소를 보는 것이었다. 소를 몰고 풀을 뜯기면서 처녀는 춤추고 놀았고, 목동은 책을 읽었다.
어느 날 목동은 그만 책 읽기에 빠져 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소몰이 처녀 역시 마찬가지다. 춤추고 노는 데 빠져 그만 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목동에게는 동정을 표했지만 처녀에게는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장자는 세상인심이 그렇다고 했다.
역사 속 세상인심은 변치 않는 법이다. 목동은 시간을 훔쳐 두 가지 결실을 보려 했지만 처녀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완물상지(玩物喪志;오락에 빠져 뜻을 잃었다) 한 것이다.
달 빛을 이불에 모아 두면 사랑을 얻고, 소를 잃더라도 책을 잃으면 민심을 얻는 법이다.
시간을 훔치는 데 이보다 한 수 높은 게 마지막 방법이다.
다른 사람들을 내가 원하는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사람의 시간을 내 것처럼 쓰는 방법이다. 세상에 이 정도 방법을 쓴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그래도 분명한 것은 이런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사람들을 살펴보기 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고 아끼면 충분히 자도, 놀아도 시간은 부족하지 않다.
"一生一果,足也"
한 평생 한 가지 성과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