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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现代集团与创始人郑周永18】为南北会谈而牺牲


       京釜高速公路的建设,不仅是韩国经济发展的新转折点,更是现代建设生存发展的转折点。京釜高速公路成功建设之后,重建韩国的工程大部分都落入了现代建设的手中。可见,朴正熙总统对郑周永会长的信任度之高。
       有件证明朴正熙对郑周永高度信任的轶事,就是连接首尔与文山的“统一路工程”事件。“统一路工程”于京釜高速公路完工第二年的1971年10月开工动土,仅用了40多天就完成了40公里的公路工程,是足以登上吉尼斯纪录的突击施工工程。但很少有人知道,这里其实有郑周永为国家做的牺牲。

 

郑周永会长在上班路上。郑周永会长以其勇往直前的推进力,只用了40多天就修成了统一路。


       1971年的某一天,朴正熙首次提及了“统一路”工程。朴正熙叫来郑周永,与郑周永一起坐车奔向文山。由于两人之间已经有了类似朋友的私人关系,大家对两人经常私底下见面这种事已经习惯了,就算跑到文山也不足为奇。但这一日,郑周永有不一样的感觉,朴正熙没有理由带郑周永到文山地区。虽然朴正熙的故乡是越过三八线的朝鲜,但这也无法解释他的突发行动。郑周永想,这里一定有什么其他原因。不出所料,到文山地区时,朴正熙低声开口了。“Imja(喂)。”这是朴正熙独特的语言习惯,相当于是“喂”或“你”,不是尊称也不是粗话,是更加亲密地叫人的一种方言。“Imja(喂),我想在首尔与板门店之间开通四车道公路,如果是Imja(你),能在12月5日之前完工吗?”

 

朴正熙总统出席京仁高速公路与统一路之间的开通仪式,正在剪彩。


       这是什么意思?首尔与板门店之间的距离超过40公里,若想要12月5日之前完工,那么一天至少要铺下1公里以上的公路,这是很困难的事情。但郑周永听出了这句话的深层含义,就是朴正熙想要郑周永全权负责这项工程,让他的希望成真。当时,车里还有政府建设部门的太完善长官,不管是太长官还是郑周永,都没有问“需要在12月5日之前完工的理由”。
       为什么是12月5日呢?“统一路”完工后报纸上刊登的新闻详细解释了其中的内情。当时,朴正熙与朝鲜政府有会谈日程,朝鲜政府第二副首相朴成哲将会经由板门店访韩,但当时板门店与首尔之间只有沙石路,朴正熙不想让朝鲜官员有“韩国的经济基础尚落后”的印象。但其实,当时的韩国经济确实落后于朝鲜。日治时期,重工业都集中在资源相对丰富的朝鲜地区,韩国地区则以农业为主。解放之后,又在朝鲜战争中遭受了无情的毁坏,整个韩国于50年代、60年代陷入了绝对贫困的状态。朴正熙上台之后,韩国经济虽然高速发展,但朝鲜仍然认为韩国很落后。在这样的情形下,朴正熙不想被朝鲜官员轻视,是情理之中的事情。郑周永摸透了朴正熙总统这样的想法,立即破土动工了。当然,参加“统一路”工程的建筑公司并不只有现代建设,还有三扶土建、东亚建设、大林产业三个建筑公司。

 

 


统一路的施工现场。现代建设负责整个统一路工程中最难施工的高阳郡曲陵川到碧蹄桥的区间,共9.5公里。


       现代建设负责的是从高阳郡曲陵川到碧蹄桥的区间,共为9.5公里,也是施起工来最艰难的地段。工程的完工日期已定,是12月5日,没法更改。因此,就像参加100米赛跑一样,“统一路”工程匆忙地开工了。


笔者 淸露 图片摘自 国家记录院

现代集团与创始人郑周永(18)

 

남북 회담을 위한 희생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현대건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경부고속도로의 성공적 건설과 함께 한국 재건의 과제는 대부분 현대건설의 손에 떨어지게 됐다. 그만큼 박정희 대통령의 정주영 회장에 대한 신뢰는 대단한 것이었다.

박정희의  같은 신뢰를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다. 바로 서울과 문산을 연결하는 통일로 공사건이다. 경부고속도로를 완공하고 다음해인 1971년 10월 착공해 불과 40여일만에 40킬로미터의 도로 공사를 모두 마무리했다. 아마 기네스북에 올려도 됐다 싶을 정도의 성공적인 공기 단축이었다.

여기에는 정주영의 국가를 위한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박정희가 처음 통일로 공사를 언급한 것은 1971년 어느 날이었다. 정주영을 부른 박정희는 자신의 전용차에 정주영을 태우고 문산 쪽으로 차를 달렸다. 사실 이 때쯤 둘의 친분은 이미 사적인 교우관계라 할 정도 가까웠다. 누구도 둘이 자주 만나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정주영은 달랐다. 뭔가 낌새가 이상했던 것이다. 특히 문산 쪽으로 박정희가 정주영을 데려갈 이유가 별로 없었다. 물론 정주영의 고향이 38선 이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을 달리던 차 안에서 박정희가 특유의 쫘 깔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임자” 박정희 고향 구미의 독특한 버릇이다. 존칭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말도 아니었다. 그저 이보시게 정도를 좀 더 친근하게 한 말이었다. “임자, 서울에서 판문점까지 4차선 도로를 내려고 하는데, 임자라면 오는 12월 5일까지 끝낼 수 있을까?”

이게 무슨 소리인가? 40킬로미터가 넘는 공사를 그 날까지 끝내려 하루 최소 1킬로 이상 도로를 깔아야 했다. 그러나 정주영은 이 말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공사를 맡아 해달라는 의미였다. “왜 하필 그 날까지냐”고 질문할 필요도 없었다. 그 차안에는 당시 건설부 장관이었던 태완선(太完善) 장관도 타고 있었다.

사실 12월 5일이라 못을 박은 이유는 나중에 신문을 통해 설명이 됐다. 당시 박정희는 북한과 회담을 하기로 한 상태였다. 이미 북의 박성철(朴成哲) 제2부수상 일행이 판문점을 통해 오기로 돼 있었다. 박정희는 북의 일행이 도로도 제대로 깔리지 않은 문산을 거쳐 서울로 오는 것을 오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사실  때만해도 남한의 경제는 북한에 못미쳤다. 일제시대 공업은 대부분 북에 집중돼 있었고, 남한 농업 위주였다. 그나마 한국전쟁으로 대부분 땅이 황폐해지면서 완전히 빈민국으로 전락한 게 1950년, 60년대 남한의 상황이었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이래 한국의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북에서는 “너희들이 해봐야”하며 무시하던 상황이었다. 그런 북에 얕잡아 보이기 싫었던 게 박정희의 생각이었다. 결국 박정희의 의도대로 긴급하게 공사가 시작됐다. 물론 현대건설 혼자가 아니었다. 삼부토건, 동아건설, 대림산업 등 다른 3개 업체들이 참여했다.

현대건설이 맡은 구간은 고양군 곡릉천에서 벽제교 구간을 포함한 9.5키로미터 구간이었다. 가장 공사가 까다로운 구간이었다. 12월 5일 이전이라 준공일 잡아놓고 하는 공사였다. 마치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공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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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드라마 막장형 늘어나며 사회 속에 여성혐오 싹 키워
동영상 홍수의 시대다. 현실을 보다 극적인 현실로 묘사하는 과거와 달리 최근 드라마는 극적인 비현실이 특징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비현실을 통해 현실의 불만을 대리 만족시켜주는 것이다. 마약이 주는 환상과 다를 게 없다. 아쉽게도 이 쾌감은 역시 극적이어서, 쉽게 중독되고 만다. 더욱 문제는 이 비현실을 현실로 착각하는 착란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이 같은 드라마의 ‘비현실’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비현실적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묘사는 현실 중국사회에 여성 혐오증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미니 드라마를 본 후, 우리 엄마는 주변에 악독한 며느리가 있다고 확신했다.” 최근 한 중국 매체는 이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비현실 드라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보도에 따르면, 허난성 난양시에 사는 리 씨는 어머니가 **《○○ 시어머니, 모두를 놀라게 하다》**라는 미니 드라마를 보고 나서 태도가 변했다고 밝혔다. 해당 드라마는 강인한 시어머니가 악독한 며느리와 맞서 싸우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이를 본 후 어머니는 “그동안 며느리가 보였던 정상적인 태도는 다 연기였고, 악독한 며느리 주변에는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