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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现代集团与创始人郑周永17】郑周永与朴正熙的见面,改变了韩国经济的发展方向



      1967年5月的某一天,朴正熙总统召见了郑周永会长。当时,朴正熙已经在5月的大选中得到了国民的支持,成功连任总统。“京釜高速公路”事业是朴正熙总统竞选时的承诺事项,但该事业不仅遭到了在野党的强烈反对,还在预算方面遇到了意想不到的困难:当时的韩国政府还没有建设高速公路的经验,所以没有人能够算出准确的费用预算。朴正熙召见郑周永,就是为了解决这样的难题。当时,郑周永的现代建设是韩国唯一具有高速公路建设经验的建设公司。

 

朴正熙总统访问蔚山市现代造船所,正在听郑周永会长的解说。(1973.7.3)


      “郑会长,这个事业的费用大概是多少?你觉得可行吗?”朴正熙着急地问了他。“当然可行。这正是我国需要的事业。请交给我吧。”郑周永自信地回答了。
      其实,关于这两人见面的事件几乎没有留下什么资料,连见面的日期也不明,但明确的是,两人见面之后,韩国政府的“京釜高速公路建设”事业得以飞速进行。郑周永从青瓦台回来之后,立即召开了高层干部紧急会议。
      “大家一起来算一算这个工程需要多少费用才能完成。”郑周永的话一落,高层干部就有条不絮地采取了行动。韩国逾八成的国土皆为山地,加上江河也多,所以想要算出预算,现场调查是必不可少的。郑周永也亲自多次往返首尔与釜山,试图算出具体的施工费用。尽管如此,依然有许多未明的部分,比如,打通隧道的时候不幸遇上大石,施工费用就会加倍,但以当时的技术,是没法探测山丘内部的。郑周永与现代建设的高层干部考虑了一切可能,最终算出了预算——280亿韩元。

 

立于京釜高速公路中间点“秋风岭服务区”的“京釜高速公路完工纪念碑”。


      “有这么多钱就可以吗?”拿到预算案的朴正熙目瞪口呆。朴正熙与政府各层商量了折中方案,最后把预算定为300亿韩元,储备基金为30亿韩元,正式开始了“京釜高速公路”事业。1968年2月1日,不顾在野党的强烈反对,朴正熙政府举行了“京釜高速公路建设”的开工仪式。首尔源子洞的荒野上爆破了工程的第一个炸药。

      在寒冷的冬天,以挖掘冰冻的土地为始,高速公路工程开启了。如往常一样,郑周永住在工程现场旁边的野营,督促鼓励工人们。共有16个建设公司与3个工兵团部队参加了“京釜高速公路”工程,但现代建设负责的施工地段最长:首尔-乌山,105公里;大田-沃川,28公里,共为133公里,相当于整个施工地段的30%左右。也就是说,“京釜高速公路”的成败在现代建设的手上。

 

市民们参加了釜山与大邱之间的“京釜高速公路”开通仪式。(1969年)


      “京釜高速公路工程开启之后,我一天也没睡安稳。”后来郑周永是如此回顾当时的情况的。随着政府督促的强度加大,工头郑周永训斥手下的情况也变多了,连他的兄弟们也会挨骂、甚至遭打。郑周永亲自混合沥青,将水泥和沙石搅拌成混凝土。他从年轻的时候就开始做苦力活。没有人比他更熟悉工地现场了。当然,事故也不少。施工期间,77名工人遭遇事故失去了生命。由于事故,工人害怕去现场的时候,郑周永就亲自拿起铲子,到现场施工。“别让伙伴的牺牲白费。”听到郑周永的话,工人们重新拿起了铲子。

 

连接首尔与釜山的“京釜高速公路”竣工仪式现场。(1970年)

 

      经过刻苦的努力,京釜高速公路穿山越河,开始有了高速公路的样子。1970年7月7日,也就是开工第2年5个月,京釜高速公路428公里全线完工,比当初预定的3年计划早了7个月。由此,首尔与釜山之间打通了新的物流血脉,实现了“首尔-釜山1日生活圈”。
      “该高速公路是结合我国资源、我国技术以及我国国民的力量,在世界高速公路建设史上以最短的时间建成的高速公路,对于以‘祖国现代化’为目标的我们,是无比光荣的骄傲。”这是在秋风岭立下的“京釜高速公路”完工的纪念碑,是致现代建设的郑周永与劳动者的赞美词。
      其实,“京釜高速公路”最终的长度为428公里,共使用了430亿韩元,因为土地价格上涨的时间比预想还快。


笔者 淸露 图片摘自 国家记录院

 

 

 

现代集团与创始人郑周永(17)

 

 

한국 경제의 방향을 바꾼 정주영과 박정희의 만남

 

 

박정희 대통령이 정주영을 부른 것은 1967년 5월이 지난 어느 하루였다. 당시 박정희는 5월 대통령 선거에 당선돼 연임을 확정한 상태였다. 경부고속도 건설은 박정희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다. 선거와 맞물려 야당의 반대도 극심했지만, 박정희는 무엇보다 실천을 하는 데 생각지도 못한 난제에 부딪친 상태였다. 도대체 이 공사를 하는데 얼마나 돈이 들지 아무도 예측을 해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박정희가 정주영을 부른 것은 이 같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당 한국에서 장거리 고속도록 건설 경험이 있는 건설회사는 정주영의 현대건설이 유일했다.

“정 회장, 이게 얼마나 들겠소? 가능은 하겠지요?” 박정희가 조급한 듯 물었다. “당연하죠. 우리나라 꼭 필요한 사업입니다. 맡겨주세요.” 정주영이 맞받아쳤다.

사실 둘의 만남에 대한 상세한 자료가 남은 것은 없다. 날짜도 대단히 불분명한 상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둘의 만남으로 한국 정부의 경부고속도 건설 계획은 급물살을 탔다는 것이다. 정주영은 박정희를 만난 뒤 바로 주요 간부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모두들  공사가 얼마면 성공할지 계산해 봅시다.” 정주영의 말에 간부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한국의 땅은 산이 많고 강도 많았다. 철저한 현지 조사 없이 섣부르게 예산을 책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정주영 역시 직접 서울에서 부산까지 수차례 오가며 공사비를 계산했다. 여전히 불투명한 것이 많았다. 예컨대 터널을 파다 바위라도 만나면 어쩔까? 공사비가 배로 들 수도 있는 일이었다. 모두 최대한의 가능성을 고려해 계산을 짜냈다. 그렇게 나오 금액은 280억 원이었다.

“정말  돈으로 가능하단 말이요?” 금액을 받아든 박정희의 입이 딱 벌어졌다. 다시 정부와 논의를 해 절충안을 만들어 총 300억 원, 예비비 30억 원을 준비해 사업이 시작된다. 1968년 2월 1일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기공식을 연다. 서울 원자동 허허벌판에서 다이너마이트로 첫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겨울에 얼어붙은 땅을 파헤치면서 고속도로 공사가 진행됐다. 정주영은 언제나처럼 야전침대로 공사 현장을 지키며 일꾼들을 독려했다. 고속도 공사에 참여한 것은 16개 건설업체와 3개 공병단 부대였다. 현대건설이 맡은 공사구간이 가장 길었다. 서울–오산 105킬로미터, 대전–옥천 28킬로미터 등 총 133킬로미터였다. 전체 30% 가량을 현대건설이 맡았다. 말 그대로 경부고속도로의 성패는 현대건설의 손에 달린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시작되고 하루도 편히 잠을 날이 없다.” 훗날 정주영의 회고다. 정부의 독촉이 심지면서 현장반장(?) 정주영이 부하 직원들을 혼내는 일도 잦아졌다. 심지어 그 형제들까지 욕을 먹고 심할 경우 맞기도 했다. 정주영은 직접 아스팔트를 콘크리트를 치기도 했다. 젊은 시절부터 해오던 노가다. 현장을 그만큼 아는 이도 드물었다. 사고도 적지 않았다. 공사기간 무려 77명의 인부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사고가 나 일꾼들이 겁을 내면 정주영이 직접 삽을 들고 나섰다. “동료의 희생을 헛되게 만들지 마라.” 정주영의 말에 일꾼들 다시 삽을 잡곤 했다.

그의 노력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산을 뚫고 강을 건너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1970년 7월 7월 착공 2년 5개월 만에 428킬로미터 전 구간이 완공됐다. 당초 예정됐던 3년 계획에서 무려 7개월이나 앞당긴 공사였다. 이로써 서울 부산간 물류의 새로운 혈맥이 뚫렸다. 한국이 하루 생활권으로 연결된 것이다.

“이 고속도로는 우리나라 자원과 우리나라 기술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힘으로 세계 고속도로 건설 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조국 근대화의 목표를 향해 가는 우리들의 영광스러운 자랑이다.” 경부고속도로 완공과 함께 추풍령에 세워진 기념비다. 현대건설의 정주영과 그의 근로자들에게 보내는 찬사다. 사실 경부고속도로는 총 42.8킬로미터에 실제 430억 원이 소요된다. 도로 토지를 수용하는 금액이 올랐고, 물가 상승도 빨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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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드라마 막장형 늘어나며 사회 속에 여성혐오 싹 키워
동영상 홍수의 시대다. 현실을 보다 극적인 현실로 묘사하는 과거와 달리 최근 드라마는 극적인 비현실이 특징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비현실을 통해 현실의 불만을 대리 만족시켜주는 것이다. 마약이 주는 환상과 다를 게 없다. 아쉽게도 이 쾌감은 역시 극적이어서, 쉽게 중독되고 만다. 더욱 문제는 이 비현실을 현실로 착각하는 착란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이 같은 드라마의 ‘비현실’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비현실적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묘사는 현실 중국사회에 여성 혐오증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미니 드라마를 본 후, 우리 엄마는 주변에 악독한 며느리가 있다고 확신했다.” 최근 한 중국 매체는 이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비현실 드라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보도에 따르면, 허난성 난양시에 사는 리 씨는 어머니가 **《○○ 시어머니, 모두를 놀라게 하다》**라는 미니 드라마를 보고 나서 태도가 변했다고 밝혔다. 해당 드라마는 강인한 시어머니가 악독한 며느리와 맞서 싸우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이를 본 후 어머니는 “그동안 며느리가 보였던 정상적인 태도는 다 연기였고, 악독한 며느리 주변에는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