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갖추면 누가 봐도 좋다.
그게 현(賢)이다.
집안도 좋고,
타고난 재능도 좋고,
말 그대로
금수저가 바로
‘현’(賢)이다.
역사 이래
모두가
그래서 ‘현’하기를 좋아한다.
갑골자 현은
글자가 만들어지는
그 순간부터
그렇게
좋은 뜻이었다.
노예, 손재주, 재물
모두를 갖춘 게
현이다.
갑골자 현에는
아직 재물은 없었다.
신하 신(臣)에
또 우(又)만 있었다.
여기서 우는
‘장악’, ‘관장’(管掌)하다는
뜻으로 풀리고 있다.
그래서
신하를 관장하는 인사 업무
혹은
손의 뜻을 강조해
‘재능’이란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신하와 재능을 갖춘
뜻을 ‘현’으로 보기도 한다.
훗날 금문에 와서
재물을 뜻하는
조개 패(貝)가 붙었다.
관리(官吏)를 뜻하는
현에 재물이
붙은 것은 참 묘하다.
돌이켜보면,
고래(古來)로 동서양에서
나랏일을 하는
관리는 부자였다.
왜 그럴까?
똑똑한 건 인정하는 데,
그래도 왜
관리가 부자인지는
역사적 의문이다.
고래로 동서양
어느 시대이든
관리의 녹봉이
부자가 될 정도로
많은 적이 드물기 때문이다.
다시 그래서
참 묘한 게
현이란 글자다.
모두가 현과 같은 관리를
싫어하지만,
모두가 현과 같은 상태를
좋아만 한다.
유일하게 현을 싫어했던 이가 있다.
바로 노자다.
노자는 현(賢)을 싫어했다.
‘지혜롭다’는
현명(賢明)마저 싫어했다.
현명은 말 그대로
가진 게 많은 것을
드러낸다는 의미다.
노자의 심기를 건드린 게 바로
이 점이다.
가진 것을 드러내는 게
과시하는 걸
싫어하고 가볍게 봤다.
드러낸다는 것,
과시한다는 건
다른 것을
가볍게 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또 드러낸다는 것,
과시한다는 건
감출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하고
정말 소중한 것은
자랑하고 싶어도
자랑하지 못하고
드러내고 싶어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노자가 좋아했던
이런 글자가 있다.
도덕경에 나오는 ‘현명’(賢明)에 상대어(相對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