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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하는 방법은? 꿈을 꾸라. 세상에 없는 것을 그려내라.

혁신을 넘은 창조적인 사업가 이병철

‘이병철은 화가다. 하얀 도화지에 연필 하나로 세상을 그려낸다.’ 호암 이병철의 생을 연구하다 얻는 생각이다. 이병철은 창조자다. 요즘 많은 이들이 혁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혁신가 기존에 것을 새롭게 바꾸는 데 그친다. 반면 창조자는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게 다르다. 이병철은 그런 창조적인 사업가였다.

하얀 도화지 위에 하나씩 그림을 그렸다. 그가 화가 이상인 것은 화가의 그림은 그림에 머물지만, 이병철이 그린 그림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은 청사진이었고, 현실에서 구현됐다.

그가 그려낸 것들은 세상에 가장 돈을 잘 버는 기업으로 살아남았다.

한국이라는 가난한 나라의 조그만 마을의 기업에서, 한국 제일의 기업으로, 이어 아시아를 넘어 미국의 기업들과 당당히 세계 1,2위를 다투는 기업이 됐다.

왜 이병철이었을까? 그 수많은 한국인 가운데 왜 하필 그였을까? 이병철은 무엇이 달라서 가능했을까?

울산비료공장 건설에는 그 비밀의 일단이 숨어있다. 한국 울산비료공장은 한국에서 공장을 지어 ‘세계 최대’라는 말이 처음 나온 곳이다. 본래 이승만 대통령시절 이병철이 기획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4.19 혁명이 났고, 곧 5.16 혁명이 났다. 이병철은 자연스럽게 비료공장은 자신과 인연이 없나 보다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잊었나 싶었을 때 5.16 군사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이병철을 찾았다. 비료공장의 계획의 재실행을 당부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집요했다. 이병철을 두고두고 설득했다.

결국 이병철이 다시 비료공장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하지만 상황은 이승만 정권 시절보다 나아진 게 별로 없었다. 공장을 지을 땅은 있지만, 기술도 돈도 없었다.

이승만 정권보다 굳이 나아진 게 있다면 박정희 대통령이란 인물이었다. 정말 절실히 나라의 발전을 원했고, 정부 차원에서 이병철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종합적인 면에서 이병철의 계획을 충족하기에 모든 것이 부족했다. 이병철은 당시 33만t의 비료 공장 건설을 계획했다.

이는 세계적인 수요를 보고 짠 계획이다. 그러나 미국이 우선 반대를 했고, 일본 역시 반대를 했다. 당시 아시아 개발은 이 두 나라가 결정을 하던 상황이었다. 미국은 돈, 일본엔 기술이 있었다.

사실 이정도면 웬만한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포기했을 것이다. 애초부터 ‘손 안대고 코풀려는 격’이라며 계획의 황당함을 지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병철은 달랐다.

앞서 말했듯 그는 백지의 도화지에 꿈을 그리는 창조자였다. 현실 속의 분명한 수요를 봤고, 자원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알았다.

본래 창조라는 게 그런지 모른다. 그래서 일반인과 이병철이 달랐는지 모른다.

그렇게 이병철의 비료공장 계획은 시작됐다. 미국의 반대는 박정희까지 나서 설득을 했다. 겨우 미국의 반대를 무마했지만, 장벽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요소비료 33만t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요소를 1000t, 암모니아를 600t을 생산할 수 있어야 했다. 요소 생산 특허는 일본에, 암모니아 600t의 생산 특허는 영국이 가지고 있었다.

이병철이 일본을 설득한 방법은 참 교묘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듯도 한데 아시아에서는 정말 잘 먹혀들어가는 방법이었다.

일본 재계 유력인사들을 찾아가 부탁을 한 것이다. 비료공장 건설을 위해 잘 모르는 비료업계를 찾아 간 것이 아니라 미쓰비시 등의 당시 일본 재계 유력인사들을 만나 한국의 계획을 전했다. 이미 이병철은 공장 건설을 위해서 미국, 서독, 일본에게 견적서를 받아본 상태였다. 미국은 6500만 달러, 서독은 6000만 달러를 요구했다.

일본이 가장 저렴한 5000만 달러를 요구했다. 5000만 달러라고 적은 돈은 아니었다. 특히 전후 일본의 사정을 볼 때 5000만 달러 사업은 적은 규모의 사업이 아니었다. 이병철은 이 같은 사실을 일본 재계 인사들에게 알리고 지원을 부탁한 것이다.

이 사실이 일본에 알려지자 당연히 비료업계가 들고 일어났다. 한국에 세계 최대의 공장이 건설된다면 원가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비료 업계 대표가 이병철을 찾아가, “한국에 항상 최저가로 비료를 공급하겠다. 그러니 공장 건설 계획을 철회해 달라”고 부탁을 해왔을 정도다. 당시 일본 비료업계는 그리 큰 규모가 아니었다. 10만t 안팎의 생산시설을 갖춘 곳이 대규모 공장으로 구분됐다. 기계도 낙후된 상황이었다. 일본 정부나 재계 입장에서는 “일본이 지원하지 않아도 한국은 한다. 대규모 공장 건설 사업은 일본이 맡는 게 이득”이라는 판단을 하게 됐다.

어찌 보면 ‘이이제이’의 묘수를 이병철이 둔 것이다. 일본 스스로 협력이 가장 득임을 깨닫고 이병철을 지원하게 만든 것이다.

일본 재계가 나서 한국과 우호 증진을 위해 차관과 공장 건설 지원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이병철의 울산비료공장은 다시 한발 더 진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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