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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X-레이를 처음 찍은 중국인은?

청나라 말기 동양의 지식인들에게 서구 문명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2500년 동안 공자와 맹자만을 최고로 알았던 지식인들에게 서구의 발달한 과학기술, 기계산업, 의학, 군사무기 등은 마치 새로운 하늘이 열린 것 같았다. 

 

서구는 모든 방면에서 동양의 중심이던 청나라를 압도했다.
서구 문물은 빠르게 중국에 전파됐고 청 황실은 이런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전초기지가 됐다. 
당대 최고 권력자였던 서태후(西太后, 1836~1908)를 비롯해 황제와 대신들은 서구 문물의 '얼리 어답터' 역할을 했다.

 

 

당장 서태후만 해도 중국에서 가장 먼저 자동차를 소유했던 여성이다.
또 중국 최초의 여성 사진작가이기도 했다. 

 

청 황실의 마지막을 기록한 사진들은 대부분 서태후를 찍었거나, 그녀와 관계가 있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영혼을 가두는 일로 여겨져 많은 중국인들이 겁을 냈다.
하지만 서태후는 직접 사진 기술을 배워 주변 궁녀들은 물론 대신들의 사진을 찍어 남겼다.

이 시기 중국에 X-레이도 들어온다.
그럼 중국인 가운데 누가 처음으로 이 X-레이를 찍었을까?

사람의 겉모습을 찍는 사진기에도 두려움이 컸는데, 몸 속을 찍는 X-레이에 누가 최초로 몸을 맡겼을까?

주인공은 바로 청 말기 근대화를 위한 양무운동(洋務運動)을 추진한 정치인이자 외교관이었던 리훙장(李鸿章, 1823~1901)이다. 

 

 

리훙장은 서태후에게 자동차를 선물한 인물이기도 하다.
"어휴! 저렇게 큰 덩치의 차가 저리 빨리 움직이려면 도대체 사료는 얼마나 먹을까?"
차에 타려면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것 때문에 차 타기를 거부했던 서태후가 달리는 차를 보면서 했다는 말이다.

그럼 리훙장은 왜, 언제 X-레이를 찍었을까?
먼저 리훙장은 몸 속에 탄환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리훙장은 1895년 3월 시모노세키에서 청일전쟁의 패전국 청의 대표로 강화회담을 벌인다.
강화회담 둘째 날, 리훙장은 자객의 습격을 받아 왼쪽 눈 아래가 총에 맞는다.
놀란 일본 정부는 사력을 다해 리훙장을 치료한다.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총탄을 빼내지는 못했다.
이듬해 5월 리훙장은 러시아 니콜아이 2세 황제 대관식 참석차 출국해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를 순방한다.
리훙장이 X-레이를 처음 접한 것은 독일 방문 길에서였다. 

 

아, 뼈 모습을 보는 사진 기술이 있다니? 정말인가?
그럼 내 얼굴의 탄알도 치료가 가능할까?

 

뼈의 모습을 보고 치료한다는 말에 신기해한 리훙장은 당장 찍어보기를 희망했다.
1년 전 사건으로 아직 왼쪽 눈 아래 통증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리훙장은 자신의 왼쪽 눈 아래 총알이 어떤 상태인지 보고 싶었다. X-레이를 찍은 뒤 의사가 사진을 가져오자 리훙장은 깜짝 놀랐다.
해골처럼 드러난 얼굴 골격의 왼쪽 눈 아래 뼈에 탄알이 박혀 있는 모습이 그대로 사진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게 내 얼굴 뼈란 말이지?
정말 신기하구나, 신기해!

 

리훙장은 그렇게 자신의 안면 X-레이를 한참동안 들여다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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