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한자 명상 - 제대로 안다는 것에 대하여, 너를 알 지(智)



 

안다는 게 무엇인가?

 

하나의 사물을 아는 방법은

본래

두 가지다.

하나는 밖에서 그 경계를 아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안에서 그 경계를 아는 것이다.

경계의 선은

분명 하나지만,

둘의 인식 방식은

극과 극이다.

 

안다는 건 그런 것이다.

안에서

밖에서

모두 아는 게

진정

아는 것이다.

 

안다는 뜻의 한자도

두 가지다.

하나가 지(知)요,

다른 하나가

지(智)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지(知)는

‘알다’, ‘깨닫다’, ‘들어서 알다’ 등의 뜻이다.

 

반면

지(智)는

‘슬기롭다’, ‘사물의 도리를 알다’, ‘꾀’, ‘모략’ 등의 뜻이다.

 

마치

지(知)는 형이하학적이며

지(智)는 형이상학적으로

들린다.

 

또 그렇게만 보기에,

묘하게 지(智)에는

모략, 꾀라는 부정적인 의미도 담겨있다.

 

한자에서

지(智)가 지(知)보다 오래된 글자다.

 

지(智)는 갑골자가 있지만, 지(知)는 없다.

지(知)

후대인 청동기 금문에서 등장한다.

 

묘하게 복잡한 글자가

단순한 자보다

더 먼저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지(智)와 지(知)가 한 글자라 본다.

 

금문에 등장하는 지(知)는

화살 시(矢)과 말하는 입 구(口)의

조합이다.

 

갑골자 지(智)의 자형은

좀 복잡하다.

일부 글자는 화살이 아니라

꺽쇠 기호 아래

큰 대(大)가 아이에게 말을 하는

형태도 있다.

어른이 아이에게 뭔가를 알려주는 모습이다.

 

 

일단 두 글자 모두

화살, 사냥의 비법,

혹은 뭔가 중요한 것을

후계자에게

전하는 것이다.

 

화살은 한자가 만들어져

활용되던 당시

사냥의, 공격의 최고의 무기였다.

그 화살에 대해

사냥의, 공격의 이야기를 하는 게,

삶과 부귀, 권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바로

안다는 뜻이 지(智) 혹은 지(知)였던 것이다.

 

금문 초기만 해도

지(知)와 지(智)는

같이 쓰였다.

 

많은 학자들은 한동안

지(知)가 지(智)는 혼용돼 쓰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고전에서

글쓰기는 좀 복잡한 모습이다.

지(知)와 지(智)는

같기고 하고 다르기도 하다.

 

같고도 다른 것은

결국 다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智)와 지(知)는 분명 다르다.

 

초기 같이 쓰였는지

몰라도

이후 빠르게 서로 구분돼

쓰이기도 했던 듯 싶다.

 

애매하지만

비슷한 시기 다르게도 같게도 쓰여

지금도

같은 뜻인지, 다른 뜻인지

혼란스러운 게

지(知)와 지(智)다.

 

지(知)와 지(智)가

같은 뜻이고

같은 뜻으로 읽어서

문제가 없다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지(知)와 지(智)가

차이가 있고

같은 뜻으로 읽어서

문제가 있다면

문제다. 둘의 차이를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지(智)는 화살을 아이에게 말해주는 모습이다.

화살 시(矢)와

입 구(口)와

아들 자(子)가 동시에 등장한다.

 

일부의 경우

입 구(口)보다는

책(冊)로 기호를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지(智)는 아이에게 화살에 대해

책에 나온 사실을

전해주는 게 된다.

 

종합적으로 볼 때,

지(知)는 그 의미가

보다 은밀해 보이며

지(智)는 그 의미가

보다 드러나 보인다.

 

지(智)는 보다 객관적 앎의

의미가 있어 보이고

지(知)는 보다 주관적 앎의

의미가 있어 보인다.

 

노자 도덕경에 힌트가 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지(知)와 지(智)를 달리 썼다.

 

“知人者智,自知者明。”

(지인자지, 자지자명)

“남을 아는 것을 지(智:지혜롭다)라 하며, 스스로 아는 자를 명(明:현명하다)이라 한다.”

 

이 문장에서

지(知)와 지(智)가

같다면

문장의 뜻이 우습게 된다.

 

이 문장에 따르면,

지(智)는 그냥 지(知)가 아니다.

다른 것을 아는 게 아니라

사람 인(人)을 아는 걸

지(智)라 했다.

 

반면 지(知)는 사람도 지(知) 할 수 있으며,

자기 자(自)도 지(知) 할 수 있는 것이다.

 

지인(知人)과 자지(自知)

의 단어에서

우린 지(智)와 지(知)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지(智)란 인(人)을 지(知)하지만,

자기 자(自)는 지(知)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知)는 지(智)와 이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知)는 지인(知人)과 자지(自知)가 있으며,

전자를 지(智)라 하고

후자를 명(明)이라 하는 것이다.

 

자지(自知)는 스스로 아는 것,

자아를 향한 앎이다. 바로 밝게 되는 길이다.

 

반면, 지인(知人)은 그 앎이 남을,

타자를 향하는 것이며

바로 지(智)인 것이다.

 

내 주변을 알아

나를 아는 게 지혜의 지요,

내 속의 나를 알아

나와 그 경계를 아는 게

스스로 아는 것, ‘밝음’인 것이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 백가지 위험에도

위태롭지 않은 것이다.

 

적만 알면

때론 한없이

교만하고

적만 알면

때론 한없이

스스로가 작아만 진다.

 

스스로 아는 게 밝은 것은

내가 나를 알고

다시 남을 아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인’(知人)할 것인가,

‘자지’(自知)할 것인가

무엇이 더 나은 앎인지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사회

더보기
"급식체는 언어의 자연스런 변화" VS "사자성어도 말할 수 있다"
최근 중국에서 한 영상이 화제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영상은 소위 ‘급식체’를 쓰는 어린이들이 옛 사자성어로 풀어서 말하는 것이었다. 영상은 초등학생 주인공이 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包的’라고 말하지 않지만, ‘志在必得’, ‘万无一失’, ‘稳操胜券’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老铁’라고 말하지 않지만, ‘莫逆之交’, ‘情同手足’, ‘肝胆相照’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绝绝子’라고 말하지 않지만, ‘无与伦比’, ‘叹为观止’라고 말할 수 있다…” ‘包的’는 승리의 비전을 갖다는 의미의 중국식 급식체이고 지재필득(志在必得)은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의미의 성어다. 만무일실(万无一失)을 실패한 일이 없다는 뜻이고 온조승권(稳操胜券)은 승리를 확신한다는 의미다. 모두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뜻하는 말이다. 초등학생이 급식체를 쓰지 말고, 고전의 사자성어를 다시 쓰자고 역설하는 내용인 것이다. 논란은 이 영상이 지나치게 교육적이라는 데 있다.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초등학생의 태도에 공감을 표시하고 옛 것을 되살리자는 취지에 공감했지만, 역시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자연스럽지 않은 억지로 만든 영상이라고 폄훼했다. 평파이 등 중국 매체들에

문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