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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답은 시간

전쟁의 경우의 수를 아는 것을 '지피지기'(知彼知己)라고 하고, 지지 않는 법을 고안하는 게 '백전불태'(白戰不殆)다. 가장 경제적 승리는 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손자가 "지피지기"(知彼知己; 적을 알고 나를 알면)면 "백전불태"(白戰不殆;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 하지 '백전백승'이라 말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백 번 싸워 다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백 번 싸워 다 지지 않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기는 것보다 지지 않는 게 더 쉽다. 또 지지 않고 버티면 반드시 승리한다.
손자는 그 것을 위해 승리가 아니라 내가 들고 있는 카드가 패일 경우만 대책을 강구한다. 그것도 우리 카드가 패이면서 적의 카드가 승일 경우, 전쟁은 반드시 패하는 데 이때 대책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손자의 답은 바로 역(易)이다. 시간이다. 손자는 무조건 지키며 시간을 끌어야 한다고 답을 내놓는다. 보통 우리 카드가 패인 경우 공격을 받는 쪽이 우리다. 패의 카드를 들고 승의 카드를 든 적을 공격하는 바보는 없다.

 


손자는 이때 지킬 수만 있다면 하늘의 시간은 반드시 방어하는 쪽의 편이라고 지적한다. 만리타향 원정 길이 먹을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노래 부르며 가는 소풍 길이 아니다. 항상 근본적으로 불리한 쪽은 고향을 떠난 쪽이다. 먼저 불안해하는 쪽도 고향을 떠난 쪽이다. 

 

주역처럼 승과 패의 카드 변화 순서도 승에서 패로 패에서 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지금 내 카드가 패일 경우 당장의 답은 없다. 현재 층위에서 답은 없다. 오직 패배일 뿐이다. 조급해서 성을 지키지 않고 버리고 도망가거나 나가서 결사항쟁을 한다면 그 결과는 역시 패다. 돌이키지 못할 패여서 항복보다 못하다. 

 

그러나 시간의 층위를 달리하면 답이 생긴다. 현재 답이 없는 모든 문제의 답은 오직 시간이다. 시간이 약인 게 맞는 것이다. 그래서 선인들은 사람의 일이 하늘에 달렸다고 했다. 선인들이 하늘의 공간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시간을 이야기 한 것이다. 

 

현재 답이 없는 모든 문제의 답은 오직 시간이다.

 

하늘의 때가 맞아야 하고, 땅의 여건이 이를 받쳐 줘야 한다. 인간사 모든 문제는 실은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견디느냐, 못 견디느냐'의 문제다. 어떤 고통도 잊을 수 있어 참을 수 있다면 어떤 문제도 실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모든 일에 "당장 답을 찾아내라"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일인가? 당장 찾아야 한다면 답은 오직 하나뿐이다. 패배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본다면 다르다. 지금은 가장 나쁜 카드, 패배의 카드를 들었기 때문에 당신은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 승리는 이기려 한 것이 아니라 지키려 했기 때문에 얻는 것이다.

 

그래서 주역에 띠풀 뽑는 일의 뜻이 밖에 있다 한 것이다. 그럼 일이 띠풀 뽑듯 절로 이뤄지는 것이다. 拔芧征吉 志在外也(발서정길 지재외야; 띠풀을 뽑듯이 나아감이 길한 것은 뜻이 밖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버릴 때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拔芧征吉 志在外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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