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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星集团的始点——湖岩李秉喆(10)

노비 해방의 훈훈한 기억 

 

‘사업을 하자.’ 이병철의 결심은 이렇게 오랜 방황 끝에 온 것이다. 이병철은 사업에 대단한 성공을 해 오늘의 ‘삼성그룹’을 만들었다. 훗날 이병철은 자서전에서 돌이켜보면 “그 성공이 바로 오랜 방황 때문”이라고 회고한다. 방황은 시간의 낭비가 아니라 새로운 전진을 위한 동력이 된다는 의미다. 참 범인으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논리다. 

 

사업을 하기로 한 순간 이병철은 이미 남다른 생각, 남다른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 이병철을 이렇게 남다르게 만들었을까? 앞서 이병철의 남다른 면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이병철은 절대 자질이 남다른 이가 아니었다. 이병철의 표현을 빌면, “너무 일반적이었다”고 스스로의 자질을 평했다. 그럼 무엇이 이병철을 비범하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바로 스스로가 스스로의 인생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병철은 하고 싶은 것을 찾아하고, 하면 열심히 했다. 초등학교 서울유학, 초등학교 중퇴와 중학교 속성과정 이수, 역시 중퇴하고 선택한 일본 유학 길을 택한다.  

 

일반적 시각에서 보면, 이병철은 뭐든 중도이폐한 것일 수 있다. 사실 이병철을 이해하고 나면 다른 것이 있음을 알게 된다. 중도 하차가 아니라, 스스로 만족해 그만 둔 것이다. 그리고 한국, 당시 조선에서의 도박으로 보낸 허송세월… 이병철은 운명처럼 조금씩 비범해지는 길을 가고 있었다. 

이병철은 그래서 훗날 조선에서의 허송세월도 가치가 있었다고 평하는 것이다. 물론 말이 허송세월이지 이병철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것은 아니다. 이병철의 자서전에는 스스로가 자부하는 한 가지 일을 고백하고 있다. 바로 노예 해방이다. 

 

한국에서 노비해방은 1894년 국가 차원에서 폐지된다. 그러나 수백 년을 내려오던 노비 제도가 어찌 그리 쉽게 하루 아침에 없어질까? 특히 오랜 노비 생활에 스스로 판단하기를 그만 둔 많은 이들은 스스로 노비로 남기를 청했다. 최소한 주인 집에 있으면 굶어 죽는 일은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병철의 집에도 5가구 30여 명의 노비가 있었다. 이병철은 자서전에 “와세다 유학 시절부터 노비를 두는 것은 인도에 어긋날 뿐 아니라 사회 발전에도 큰 장애가 된다고 생각했다”고 적고 있다. 한국에 돌아온 이병철은 가족의 눈치를 보면서 이들 노비를 해방시킬 기회만 엿봤다.  

어느 날 이병철이 부친에게 조심스럽게 노비 해방을 건의했고, 부친은 선뜻 이병철의 청을 들어주기로 한다. 얼마나 부친이 선뜻 답을 했는지, 이병철 스스로가 놀랐을 정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노비)에게 자유를 주면 어떨까요? 하고 조심스럽게 선친에게 말씀드렸다.

 

선친은 뜻밖으로 쾌락(快诺)하여 주었다. 오히려 내가 크게 놀랐다.” 이병철의 고백이다. 

그러나 그냥 해방해 집에서 나가라고 하니, 노비 누구도 선뜻 나가지 않았다. 주인 집에 빈손으로 나가서야 앞으로 살 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이병철은 고심 끝에 약간의 돈과 양식 그리고 토지를 나눠 주면서 “이것으로 우리 집과의 주종 관계의 인연을 끝는다. 자유롭게 살라”고 하며 노비를 해방한다. 

 

일이 알려지자, 집안에서 이병철에게 “장하다”는 칭찬과 함께 “가산을 탕진했다”, “쓸모 없는 짓을 했다”는 비난도 빗발쳤다.  

 

이병철은 이에 대해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것 같다. 색으로 친다면 회색일 수밖에 없었던 낭인시대의 나에게는 이것이 단 한 가지 흐뭇한 추억이다”고 적고 있다. 이병철은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와세다 대학 시절 한동안 탐독한 톨스토이의 작품에서 받은 영향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병철 집안에서 풀려난 노비들은 멀리 황해도에 가 출신을 감추고 살기도 하고, 이병철 집 인근에서 받은 땅을 가꿔 농사를 짓기도 했다. 훗날 일부 집안은 자녀 교육을 잘 시켜, 좋은 대학에 보낸 뒤 다시 삼성그룹에 취업을 시키기도 했다.  

“모두(노비들) 자립하여 자녀를 대학에 보내기도 했다. 실력으로 훗날 삼성에 들어온 이들도 있지만, 일부러 만나보는 일은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서 한 결심이 사업이다. 그럼 이병철은 과연 무슨 사업을 어떻게 골랐을까?

기자=청로, 사진출처=삼성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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