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삶의 시작, 고통의 삶과 죽음 모두가 졸이다.

우리는 모두 졸(卒), 시작과 고통, 예정된 죽음이다.

 

"죽음과 삶은 하나다."

한자 졸,卒의 가르침이다. 

 

한자 (卒)은 묘하다.

삶과 죽음. 그 두 개의 뜻이 함께 있다. 먼저 삶의 의미다. 졸은 사회 한 계층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가장 평범한 사람들, 삶이 고달픈 이들이다.

 

선배 사(士)의 아래가 바로 졸(卒)이다. 군에서 사병을 의미했고, 옛날 농사를 지며 군역을 담당했던 계층을 의미했다.

오늘로 치면 평민이다. 우리 모두가 평민인 오늘날, 우리는 모두가 졸(卒)이다.

 

그 옛날 한자 졸은 그런 이들을 가리켰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옛날 졸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는 오늘날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졸은 갑골자에 등장하는 오래된 한자다.

하지만 자형은 분명히 전해지는 데 그 의미를 짐작하기는 어렵다. 모양이 묘하다.

다음은 죽음이다. 졸은 죽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한 글자가 삶과 죽음의 두 가지 의미를 가진 채 쓰인다. 역시 묘한 한자다.

 

한자의 자형에 그 비밀이 있다 싶다. 앞서 이야기 했듯 갑골 문자에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글자가 바로 졸이다.

졸의 모양은 보듯 그 뜻을 짐작하기 어렵다. 갑골자를 연구한 많은 이들이 졸의 의미를 해석하려 매달렸다.

 

두 가지 해석이 유력하다.

우선 농사 행위의 하나로 보는 해석이다. 땅을 뒤집는 기구를 본 딴 상형자라는 설이다. 땅을 뒤집어 농사를 짓는 것 모양이라는 해석이다.

앞에서 언급한 농사를 짓는 계층을 의미한다는 것과 연관된다. 졸은 고대 중국에서 이들 농민으로 꾸며진 군사 조직을 의미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해석은 옷매무세라는 설이다. 옷을 짜입는 모습이라는 주장이다. 옛 중국에서는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이 제한됐다.

천을 짜는 일이 쉽지 않았던 때문이다. 천이 귀하니, 천으로 짜는 옷을 입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정 수준으로 사는 평민이어야 가능했다.

상형자 졸(卒)은 그래서 만들다는 의미의 작(作)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졸은 시작의 작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한 것이다.

옷을 입는 또 다른 경우는 죽음 뒤였다. 고대 중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옷을 입히고 꿰맸다. 죽어서야 비로소 옷을 입었다.

귀족은 죽음 뒤에 옷을 입고, 그 가슴에 옥을 매달았다.

 

졸은 결국 시작이요, 삶이요, 죽음이라는 3가지 의미가 다 있는 것이다. 묘한 글자다. 하지만 그래서 지극히 평범한 글자다.

세상을 사는 우리 모두가 겪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태어나면서 그 고통이 시작되고 힘들게 사는 것이고 그러다 죽는 것이다.

졸은 우리의 글자이고, 사람의 글자다.


사회

더보기
"급식체는 언어의 자연스런 변화" VS "사자성어도 말할 수 있다"
최근 중국에서 한 영상이 화제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영상은 소위 ‘급식체’를 쓰는 어린이들이 옛 사자성어로 풀어서 말하는 것이었다. 영상은 초등학생 주인공이 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包的’라고 말하지 않지만, ‘志在必得’, ‘万无一失’, ‘稳操胜券’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老铁’라고 말하지 않지만, ‘莫逆之交’, ‘情同手足’, ‘肝胆相照’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绝绝子’라고 말하지 않지만, ‘无与伦比’, ‘叹为观止’라고 말할 수 있다…” ‘包的’는 승리의 비전을 갖다는 의미의 중국식 급식체이고 지재필득(志在必得)은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의미의 성어다. 만무일실(万无一失)을 실패한 일이 없다는 뜻이고 온조승권(稳操胜券)은 승리를 확신한다는 의미다. 모두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뜻하는 말이다. 초등학생이 급식체를 쓰지 말고, 고전의 사자성어를 다시 쓰자고 역설하는 내용인 것이다. 논란은 이 영상이 지나치게 교육적이라는 데 있다.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초등학생의 태도에 공감을 표시하고 옛 것을 되살리자는 취지에 공감했지만, 역시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자연스럽지 않은 억지로 만든 영상이라고 폄훼했다. 평파이 등 중국 매체들에

문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