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랄 걸 바래라.” 한자로 주어진 이상을 꿈꾸는 것을 기유(觊觎)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참 거시기하다. 시각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에서 대표적으로 이 기유가 나온다. 주는 사람 입장에서 “바랄 걸 바랄 일”인데,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받을 것을 바라는 것”일 수 있다. 또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옛날 중국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마님이 있었다. 대략 10명의 시녀들을 데리고 살았는데, 얼마나 인색한지 시녀들에게 밥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시녀들을 항상 고픈 배를 안고 일을 해야겠다. 하루는 맏언니 격인 시녀가 꾀를 냈다. 퍼포먼스를 해서 자신들이 얼마나 충성을 하며, 얼마나 배고픈지를 알리자고 했다. 그래서 하루는 시녀들이 아침에 서북쪽 하늘을 보고 일렬로 입을 벌리고 섰다. 마님이 그 것을 보고 물었다. “아니 무슨 일인가?” 맏언니 시녀가 답했다. “안녕하십니까? 마님. 다른 게 아니고 옛속담에 ‘서북풍을 먹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희가 서북풍을 마시는 법을 연습 중입니다. 그래서 배가 부를 수 있다면 밥을 축내지 않고 얼마나 좋겠습니까?” 중국 속담에 ‘서북풍을 먹다’는 말은 가난이 찌들었다
악덕 기업주에 속는 건 그의 말 때문만이 아니다. 그가 가진 재산, 휘황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고 희한한 게 너무 뻔한 일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속는다는 것이다. 마치 속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처럼 엉뚱한 사람의 말을 그대로 듣고, 그대로 따른다. 사실 그 말이 맞다. 속기로 마음먹은 탓이다. 모두가 나쁜 사람이라고 욕을 해도 믿고 따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가 가진 재산, 배경의 휘황함에 취한 탓이다. 옛날 악덕 자린고비가 있었다. 먼 길을 가는 준비를 하며 잔뜩 배부르게 식사를 했다. 남은 음식을 노비에게 주는 데 반만 그 것도 아까워 반만 먹도록 했다. 노비가 울며 사정했다. “아니 먼 길을 가는 데 배가 고프면 어떻게 마차를 끌겠습니까. 좀만 더 먹게 해주세요.” 악덕 자린고비가 나무 쇄기와 밧줄을 주면서 말했다. “아 걱정 말게.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배고플 일이 없네.” 결국 그렇게 노비는 고픈 배를 안고 길을 나서야 했다. 악덕 자린고비가 말했다. “그런데 자네 길을 가다 배고프면 ‘배고프다’하지 말고, ‘배가 아프다’하게.” 노비가 “왜 그러시냐? 물었다. 자린고비가 말하길: “아 다른 게 아니라, 그래도
많은 정책, 계획의 실패는 본연의 목적을 잃어버린 데서 나오기 일쑤다. 많은 이들이 단기적 목표에 얽매여 목적을 달성했지만 실패하는 오류에 빠진 곤한다. 가끔 옛 이야기들이 이런 오류를 일깨워주는 경종 역할을 한다. 옛날 한 자리고비 영감이 바지가 다 헤어져 새로 만들어야 하는 데 아무리 생각해도 옷감이 너무도 아까웠다. 그렇다고 입던 바지를 입자니, 이미 너덜너덜해져 바지라고 할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감춰야 할 곳도 제대로 감추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래도 이거 너무 아까운데 …’ 하루 웬종일 고민에 빠진 것을 본 이웃집 재봉사가 꾀를 냈다. “영감 그럼 내 계획을 한 번 믿어보시려우? 바지가 옷감이 많이 드는 것은 다리 두 개를 다 넣어야 하는 다리통이 두 개이기 때문이지요. 그걸 하나로 하면 옷감을 반은 절약하는 셈인데, 어쩌요? 해볼실려우?” 이야기를 들을 자린고비 영감이 무릎을 치며 좋아라 했다. “아이고 옷감만 아낀다면야! 어서 해주시게” 그렇게 재봉사는 옷감을 반만 들인 바지를 만들어 납품을 했다. 새 바지를 받은 자린고비 영감은 한시라도 빨리 새옷을 입고 나가 자랑하고 싶었다. 새 바지를 입고 나가려고 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조금만 걸어도
‘궁즉통’(窮卽通)이란 궁한 데로 쓰는 거다. 어쩔 수 없이 나온 방법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짧게는 변통(變通)이라고 한다. 다만 상황이 달라지면 ‘궁즉통’의 방식은 불통(不通), 즉 통하지 않는 방식이 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통하면 안되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여기 짧은 이야기는 임시방편의 도리를 모르면 나오는 우둔한 사례를 보여준다. 짧고 가볍지만 주는 경고는 무겁고 무겁다. 옛날 중국에 한 마을에 자린고비 양반이 살았다. 어느 날 하루 이 양반이 긴 의자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이 양반은 긴 의자를 만들면서 나무를 사 쓰는 게 너무 아까웠다. 옆에서 그 고민을 듣던 목수가 ‘궁즉통’ 묘안을 내놨다. “영감, 이 긴 의자를 한 쪽에만 다리를 만들고 나머지는 식당 벽에 기대어 놓고 쓰면 됩니다. 그럼 의자 다리를 만드는 나무를 아낄 수 있지요.” 이야기를 들은 양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좋은 생각이네, 그럼 빨리 만들어 주시게.” 그리고 의자가 만들어지자 양반은 목수를 칭찬하며 나무의자를 보고 감탄했다. “오 아주 좋아. 나무도 줄이고 의자도 쓰고, 아 좋네!” 그리고 얼마 뒤 양반의 집안에 행사가 열렸다. 양반은 최근 만든 의자를 자랑하고 싶어
허례와 허식 그리고 실속은 그릇과 음식의 관계와 같다. 그릇이 예쁘고 아름답다고 음식이 나쁘면, 나쁜 것이듯 겉치레가 아무리 화려해도 실속이 없으면 나쁜 것이 된다. 옛날 중국에 한 자린고비 양반이 있었다. 이 양반은 지역에서 가장 예쁘고 훌륭한 잔치그릇을 가지고 있었다. 그릇에는 매 그릇마다 담을 음식들이 채색된 그림으로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림들이 얼마나 생생한지 마치 실제 음식처럼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이 자린고비 양반은 매번 이 잔치 때마다 이 그릇을 이용해 득을 봤다. 사실 그 득이란 게 별개 아니다. 잔치를 하면서 그릇만 내놓고 실제 음식을 내놓지 않은 것이다. 하루는 한 손님에 물었다. “아니 어찌 음식이 없습니까? 뭘 먹어야 하나요?” 그러자 자린고비 양반이 답했다. “아니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지 않소. 보기 좋은 음식이 그득한 데 보기만 해도 배부른 게 아니요. ㅎㅎ” 어이 없어 하는 손님을 뒤로하고 자린고비 영감이 웃으며 돌아섰다.
우리는 많은 경우 계산을 했는데, 어리석은 답을 얻곤 한다. 삶의 계산은 일차원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방면의 고른 고려가 더해져야 하는데, 보통의 경우 우린 하나만 알고 계산을 한다. 자연히 항상 어리석은 결론이 나온다. 옛날 중국에 돈만 많은 어리석은 노인이 있었다. 돈을 쌓아두고, 그 많은 농사와 밭을 혼자서 했다. 친구들이 조언하길; “여보게 노비를 고용하시게 그러면 더 많은 농사를 짓고, 밭을 할 것 아닌가? 자네는 쉴수도 있고.” 했다. 하지만 이 노인이 답하길; “아니 고용을 하면 일하는지 하지 않는지 감독을 해야지. 그러면서 밥도 주고, 옷도 주고, 숙소도 마련해줘야 할 것 아닌가. 수지가 맞지를 않아. 수지가...” 그 말을 들은 한 젊은이가 노인을 골려 주려 제안을 했다. “그럼 노인장, 우리 집에 어려서 도사의 술법을 얻어 밥을 먹지 않고 일만 잘하는 농노가 있는데, 데려다 쓰면 어떠시오? 내 노인장이 원하면 빌려 주리다.” 자리고비 노인이 놀라며 되물었다. “아니 그럼 밥을 안 먹고 어찌 산다는 말이요.” 젊은이가 답하길; “어려서 도인에게 도술을 배워 바람을 먹고 방귀만 뀐다오.” 그러자 노인이 한 참 생각을 한 뒤 답했다. “아
옛날 중국에 두 자리고비 양반이 이웃하며 사이 좋게 살았다. 어느 여름날 한 자리고비가 옆 마을 자리고비 양반 집에 놀러갔다. 하인이 차를 들고 들어왔는데, 옷이 없어 기와장 두 장을 묶어서 허리에 걸쳐 앞뒤 민망한 곳만 가린 채였다. 집 주인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아니, 내가 손님이 있으면 제대로 의관을 갖추라 했거늘, 이게 체면 안 서게 무슨 짓이냐!” 놀란 하인이 급히 나갔다. 잠시 뒤 들어온 하인은 여전히 옷을 벗은 알몸이었다. 다만 기왓장 두 장 대신 이번에 큰 뽕 잎 두장을 끈으로 엮어 역시 앞 뒤 민망한 곳만을 가린 채였다. 주인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차를 권하자, 놀러온 자린고비가 말했다. “아니. 주인장 보니까 낭비가 심하시오” 주인이 되물었다. “무슨 말이시오? 내가 어찌 낭비가 심하단 말이오?” 객이 답했다. “어찌 하인이 겨울옷 여름옷을 구분해 입는다는 말이요. 내 그 것만 봐도 주인장이 얼마나 낭비가 심한 줄 알겠오.” 그러자 집 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이 양반아, 내 어찌 그런 도리를 모르겠어. 내 저 놈을 지난 여름에 거둬들였는데, 당시 조건이 먹는 건 자기가 어찌 알아서 해결할테니, 옷만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오. 그
삶의 여유는 '농'에서 나온다. 어렵고 힘들 때 불평이나 욕을 하는 게 아니라, 가볍게 농담을 던질 때 우리의 삶은 여유롭고, 풍요로워 진다. 최소한 옛날에는 그랬다. 힘들고 어려울 때 직접적이지 않게 애둘러 말했다. "이 놈의 세상, 의료개혁 같네. 뜻 대로 되는 게 없어!" 중국에서는 음력 7월 7일 칠석에는 고마운 사람을 찾아 식사를 대접하는 풍습이 있다. 옛날 중국 한 마을에 자린고비로 유명한 이가 살았다. 이 자리고비는 그래도 자녀 교육에는 돈을 써 주변에 유명한 학자를 물색해 아들의 스승으로 삼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칠석이 됐다. 온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불러 식사 대접을 했다. 스승도 이 자린고비가 불러주길 기다렸다. 그런데 웬걸? 이 자린고비는 칠석이 다가 와도 요지부동, 스승을 부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스승이 참지 못해 학생을 불러 넌즈시 물었다. "아버님이 식사는 언제 하자고 아무 말씀도 없으셨나?" 그제야 스승의 마음을 알아챈 학생이 아버지를 찾아 말했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 자린고비가 "허허"하고 웃으며 답했다. " 아니, 내가 깜박 실수를 했구나. 밥은 한 번 먹어야 하는 데 이미 칠석은 늦었고 오는 음력 8월 15일 중추절에
중국 자린고비 이야기다. 자린고비는 구두쇠를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옛날 중국의 한 마을에 소문난 구두쇠가 있었다. 어느날 이 구두쇠가 옆 마을에 있는 구두쇠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감탄한다. '내가 아낀다고 하는게 정말 하찮은 것이구나. 그 선생의 찾아 뵙고, 사부로 모셔 아끼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이리 결심한 구두쇠가 옆마을 구두쇠 선생을 사부로 모시기로 하고 찾아간다. 각종 예물을 준비했는데, 종이로 각종 과일을 그리고, 빈 술병에 물을 채워 사부에게 드리는 선물이라 준비했다. 하지만 찾아간 당일 아쉽게도 소문난 구두쇠 선생이 출타를 하고 없었다. 대신 사모가 있어, 구두쇠는 사모에게 온갖 예를 갖춰 인사를 하고 예물을 바쳤다. 그러자 사모 역시 종이로 그린 접시에 종이로 그린 과일과 과자를 얹어 내놓으며 말했다. "과일과 과자 좀 드시고 가시죠" 그 것을 본 구두쇠가 '역시 사모는 남다르군' 하고 감탄하고 돌아갔다. 얼마 뒤 그 유명한 구두쇠 선생이 집에 돌아왔다. 사모는 낮에 찾아온 구두쇠 이야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 했다. 내심 '대접은 잘했지요'라고 생각하며 구두쇠 사부의 칭찬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웬걸. 칭찬 대신 떨어진 것은 '호
옛날 부가가치 생산이 극히 적었던 시절, 돈을 버는 방법은 간단했다. "버는 것보다 적게 써라. " 본래 과거 농사일은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농사를 져서 수확하는 것으로, 투여되는 자본이 극히 적었다. 노동력이 대부분이었다. 간단히 그렇게 걷어들인 곡물을 시장에 내놔 돈을 얻으면 그 돈에서 생활비로 쓰고 남는 게 축적되는 자본이었다. 그러니 아껴쓰면 쓸수록 부자가 됐다. 이에 옛날 중국 유머에는 자린고비에 대한 일화가 많다. 읽다보면, '뭘 이렇게 까지' 하는 생각도 들지만,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는 이들의 서민들의 마음이 담겨져 있어 아련할 때가 많다. 옛날 중국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부자가 둘이 있었다. 둘 다 술을 좋아했는데, 워낙 자린고비들이어서 술을 마시는 데 돈을 쓸 수가 없었다. 이 두 부자는 고심 끝에 이들만의 독특한 '음주법'을 만들었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재미있었는지, 두 부자의 음주법은 동네를 넘어 이웃마을까지 전해졌을 정도다. 그럼 그 음주법은 뭘까? 술을 젓가락으로 마시는 방법이다. 술 한 잔을 놓고 젓가락으로 떠서 마시는 것이다. 젓가락을 너무 많이 적셔도 안된다. 적당한 깊이만 젓가락을 술에 적셔서 마시는 게 이들의 독특한 음주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