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병철은 협상의 달인이었다. 그는 협상을 해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어냈다. 한국 정부는 물론 일본, 독일 등 외국 정부의 지원도 이병철은 협상을 통해 이끌어냈다. 사실 한국에서는 ‘고 이병철 회장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가?’를 놓고 단순히 “정경유착을 통해서”라고 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는 큰 오해다. 무엇보다 정경유착 부분만 봐도 각 시대마다 이병철 보다 더 정권에, 권력에 유착된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모두가 현재의 삼성보다 성공하지 못했다. 사실 정경유착이라는 게 그렇다. 한국같은 민주 사회에서 10년 이상을 가는 권력은 없다. 이승만, 박정희가 장기 집권을 했지만 어느 누구도 50년을 넘지는 못했다. 그러니 정경유착은 반드시 말로가 비참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 전 정권과 유착을 했던 이들이 새로 정권을 잡은 이들의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병철은 시대를 넘어 매 정권마다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승만 정권은 결국 당대 이 땅에 있던 은행 5곳의 지분을 이병철의 삼성에 넘겼다. 이어 4.19 혁명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몰려 탄압을 받았지만, 이병철은 당당했다. 당시 하늘의 새도 떨어뜨
“모든 게 미국이 자초한 일이다. 우리는 끝까지 싸운다.” 중국 공산당의 대외 목소리로 꼽히는 환추스바오가 6일 사설을 통해 이 같이 주장했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에 대한 중국의 첫 입장이다. 미중 무역전이 본격적인 장기화 국면에 돌입하고 있다. 미중 양국은 상하이 담판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9월 1일부터 3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협상은 잠시 중단된 상태다. 중국은 미국 농산물 수입 중단으로 맞섰고, 이어 5일에는 환율이 ‘포치’(破七;1달러당 7위안이 넘는 환율을 의미) 현상까지 나타나도록 했다. 당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포치’ 현상에 대해 “무역전쟁으로 인해 위안화 가치에 대한 하방 압력이 커진 탓”이라는 변을 내놓았었다. 하지만 시장에서 중국이 위안화 가치 하락을 묵인, 혹은 자의적으로 유도했다고 보고 있다. 환율인상을 통해 미국의 관세 압력을 줄이려 한다는 것이다. 위안화로 가격이 정해져 있는 중국 수출품은 미국에서 달러로 계산이 돼 수출단가가 떨어진다. 결국 떨어진 가격에 매겨지는 관세 역시 줄어드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5일자 중문판 사설을 통해 “중국의
‘이병철은 화가다. 하얀 도화지에 연필 하나로 세상을 그려낸다.’ 호암 이병철의 생을 연구하다 얻는 생각이다. 이병철은 창조자다. 요즘 많은 이들이 혁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혁신가 기존에 것을 새롭게 바꾸는 데 그친다. 반면 창조자는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게 다르다. 이병철은 그런 창조적인 사업가였다. 하얀 도화지 위에 하나씩 그림을 그렸다. 그가 화가 이상인 것은 화가의 그림은 그림에 머물지만, 이병철이 그린 그림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은 청사진이었고, 현실에서 구현됐다. 그가 그려낸 것들은 세상에 가장 돈을 잘 버는 기업으로 살아남았다. 한국이라는 가난한 나라의 조그만 마을의 기업에서, 한국 제일의 기업으로, 이어 아시아를 넘어 미국의 기업들과 당당히 세계 1,2위를 다투는 기업이 됐다. 왜 이병철이었을까? 그 수많은 한국인 가운데 왜 하필 그였을까? 이병철은 무엇이 달라서 가능했을까? 울산비료공장 건설에는 그 비밀의 일단이 숨어있다. 한국 울산비료공장은 한국에서 공장을 지어 ‘세계 최대’라는 말이 처음 나온 곳이다. 본래 이승만 대통령시절 이병철이 기획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4.19 혁명이 났고, 곧 5.16 혁명이 났
리펑의 장례식이 최근 중국에서 거행됐다. 중국 전 언론이 그의 추도식에 대해 보도했다. 중화권 매체들 역시 리펑 장례식에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 사실 중국에서 한 지도자의 장례식은 당대 권력의 지형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사례다. 대표적인 사례가 과거 1972년 천이의 장례식 모습이다. 당시는 문화대혁명의 끝무렵이었다. 천이는 본래 중국 공산당의 골간이다. 1901년 쓰촨四川 출신으로 1919년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다. 공산당에 투신해 1955년 원수 칭호를 받았고 군사위 부주석까지 지냈다. 본래 마오쩌둥의 동지였지만, 문화대혁명 발생이후 달라진다. 문화대혁명시기 ‘2월 역류’라 불리는 사건이 있다. 천이 등 군 원로들이 문화대혁명에 반대한 사건이다. 사실 마오쩌둥에 반대했다기보다 사인방과 린뱌오의 발호에 반대한 사건이다. 천이는 이후 유배돼 암으로 고통을 받다 숨진다. 마오쩌둥이 천이를 달리 생각하게 된 것은 천이가 전쟁터의 동지이기도 했지만, 그가 반대했던 린뱌오가 결국 마오쩌둥을 배신하고 혁명을 시도했다는 점 때문이다. 린뱌오의 시도는 사전에 들통이 났고, 린뱌오 본인은 소련으로 망명하려다 가족과 함께 탔던 비행기가 추락해 죽고 만다. 천이 등 2월 역
“图难于其易,为大与其细” “tú nán yú qí yì ,wéi dà yǔ qí xì ” 노자 "쉬운 일을 할때 어려운 일을 도모하고, 작은 일을 하며 큰 일을 도모하라." 성공의 비결이다. 성공 경영의 비기다. 경영이 잘 될 때 어려움에 대비하고, 작은 일을 하면서 큰 일을 하는 포석을깔아놓아라 하는 것이다. 역시 곱씹어볼 수록 좋다. 물론 다른 많은 이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한 방향이다. 유비무환, 평소에 방비를 해두라고 했지, 노자처럼 이렇게 구체적인 경영 비법을 도출해 내지 못했다. 노자의 비기는 단순한 성공에만 그치지 않는다. 장구하는 방법이 들어 있어 더욱 좋다. 크고 작음의 변환 속에 그에 대처하는 경영자의 최고의 처신법이다.
‘이병철은 화가다. 하얀 도화지에 연필 하나로 세상을 그려낸다. 처음엔 눈에 보이는 세상이지만, 점차 자신의 상상 속에만 있는 것을 그려낸다.’ 호암 이병철의 생을 연구하다 얻는 생각이다. 이병철은 창조자다. 요즘 많은 이들이 혁신을 이야기하지만, 혁신가는 기업을 유지시키는데 그치지만, 창조자는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들어 낸다. 이병철은 그런 사업가였다. 하얀 도화지 위에 하나씩 그림을 그렸다. 그가 화가 이상이 되는 순간은 화가의 그림은 그림에 머물지만, 이병철이 그린 그림은 현실에서 살아 움직인다는 점이다. 그가 그려낸 것들은 세상에 가장 돈을 잘버는 기업으로 살아 남았다. 처음 한국이라는 가난한 나라의 조그만 마을의 기업에서, 한국 제일의 기업으로, 이어 아시아를 넘어 미국의 기업들과 당당히 세계 1,2위를 다투는 기업이 됐다. 어떻게 이병철은 그럴 수 있었을까? 그의 생애 많은 사례가 있지만 울산비료공장 건설은 가장 대표적인 예다. 한국 울산비료공장은 한국이 공장을 지어 세계 최대라는 말이 처음 나온 곳이다. 본래 이승만 대통령시절 이병철이 기획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4.19 혁명이 났고, 곧 5.16 혁명이 났다. 이병철은 자연스럽게 비료공장은
“과거를 들추면 어떻게 해” 신선 앞에서 도마뱀이 울고 있는데, 개구리가 다가와 같이 울기 시작했다. 신선이 궁금해서 물으니 적폐청산에 나선 용왕 때문이었다. 도마뱀이 울면서 말했다. “어제 용왕께서 말하셨어요. 꼬리 달린 놈들이 문제라고, 내일 모두 데려다 사형에 처하라고 하셨어요. 전 이제 죽어요. 흑흑” 중국어로 꼬리를 尾巴 wěi‧ba라 한다. 신선이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개구리에게 물었다. “아니 개구리는 꼬리도 없는데 왜 울지?” 개구리가 울음을 그치지 않고 울었다. “아니 제가 어릴 때는 올챙이잖아요. 그 때는 꼬리가 있어서. 만약 용왕이 그 것까지 들추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돼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治人事天,莫诺啬” “zhì rén shì tiān ,mò nuò sè ” 노자 "아끼는 게최고다"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의 뜻을 받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노자는 이 질문에 엉뚱하게"아끼는게 최고"라고 답한다. 그럼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게 무엇일까? 나라를 다스르고, 기업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노자는 그 일에절약만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한 것이다. 참 요즘 마구 돈을 '살포'하고 있는 문 모 대통령이 들었으면 한다.
“量力而知攻, 善攻者,料众以攻众 liàng lì ér zhī gōng , shàn gōng zhě ,liào zhòng yǐ gōng zhòng “ 管子。霸言 “싸워 이길 줄 아는 이는 힘을 헤아려 공격할 줄 아는 이다. 내 군황을 알고, 적군 공격한다.” 국난이 눈 앞에 있다. 우방이었던 일본의 돌연한 경제보복 조치는 우리에게 실망과 상처를 준다. 청와대는 일본쯤은 문제없다는 태도로 강경하다. 작금 천하에 일본을 우리처럼 무시하는 나라는 없다. 일본의 국력은 우리보다 크고, 일본의 외교 역량은 우리가 범접하기 힘들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정확히 이긴다. 관자는 공격에 있어 내 힘을 잘 평가한 뒤 공격할 주 아는 이가 이길 줄 아는 이라 했다. 방어 역시 다르지 않다. 우리의 힘에 맞춰 맞서 싸울지 물러서 지킬지 판단할 수 있다. 어설프게 맞서 싸워 전사를 하면 다음 기회가 없다. 물러서 지키며 이길 기회를 노리는 것은 손자의 필승 전략이다. 이기려 기다릴 줄 아는 이가 반드시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