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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펑의 장례식에 숨겨진 비밀들

 

리펑의 장례식이 최근 중국에서 거행됐다.

중국 전 언론이 그의 추도식에 대해 보도했다. 중화권 매체들 역시 리펑 장례식에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

사실 중국에서 한 지도자의 장례식은 당대 권력의 지형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사례다.

대표적인 사례가 과거 1972년 천이의 장례식 모습이다.

당시는 문화대혁명의 끝무렵이었다. 천이는 본래 중국 공산당의 골간이다.

1901년 쓰촨四川 출신으로 1919년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다.

공산당에 투신해 1955년 원수 칭호를 받았고 군사위 부주석까지 지냈다.

본래 마오쩌둥의 동지였지만, 문화대혁명 발생이후 달라진다.

문화대혁명시기 ‘2월 역류’라 불리는 사건이 있다.

천이 등 군 원로들이 문화대혁명에 반대한 사건이다. 사실 마오쩌둥에 반대했다기보다 사인방과 린뱌오의 발호에 반대한 사건이다.

천이는 이후 유배돼 암으로 고통을 받다 숨진다.

마오쩌둥이 천이를 달리 생각하게 된 것은 천이가 전쟁터의 동지이기도 했지만, 그가 반대했던 린뱌오가 결국 마오쩌둥을 배신하고 혁명을 시도했다는 점 때문이다.

린뱌오의 시도는 사전에 들통이 났고, 린뱌오 본인은 소련으로 망명하려다 가족과 함께 탔던 비행기가 추락해 죽고 만다.

천이 등 2월 역류의 원로들이 결국 옳았던 것이다. 마오쩌둥은 자연히 그 원로들에 대한 평가를 조금씩 달리하게 된다.

그런 천이가 암으로 숨진다. 그의 장례식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정가 권력지도를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천이의 죽음이 감성에 빠진 마오쩌둥이 갑자기 천이 장례식에 나타난다.

저우언라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장례식의 격을 높였다. 유배됐던 인물이지만 마치 모든 게 사면된 듯 장례를 치른 것이다. 주위에 마오쩌둥의 상가 방문을 알렸고, 마오쩌둥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공산당 지도부들이 장례식에 참여를 했다.

그리고 저우언라이는 천이 장례식을 통해 덩샤오핑에 대해 마오쩌둥이 언급하도록 유도한다. 마오쩌둥이 “덩샤오핑은 다른 우파와 다르다”고 평한다. 과거 대장정 시절 쭌이회의에서 마오쩌둥을 극적으로 지지했던 덩샤오핑의 공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저우언라이는 장례식에 참석했던 모든 지도부에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덩샤오핑이 돌아온다.”

이게 중국 장례식의 특징이다. 리펑의 장례식은 근래 중국에 없었던 지도부의 장례식이다. 이번 리펑의 장례식에서 놓치면 안되는 특징이 후진타오의 불참이다. 과연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리펑은 소위 말하는 천안문 사태의 주범으로 꼽힌다. 천안문 군대 투입을 적극 주도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의 집안은 각종 부정부패로 중국내 재벌로 꼽힌다.

리펑 장례식 이후 퍼진 소문은 그 집안에 쌓인 금은보화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과거 천이의 사례를 볼 때 시진핑 시대 리펑의 장례식 이후 무슨 변화가 있을까? 중국 정치 이야기가 재미있는 게 이런 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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